순간순간 온전한 삶…대장부의 힘

무념은 삿된 생각이 없는 것이니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에 이르면
‘나’도 시비분별 ‘경계’도 사라져

무심도인이 걸림 없이 어떤 세상 인연에도 집착하지 않고 따라 갈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헛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탈속한 수행자의 삶이란 뜬구름 같은 허망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시비 속에서 보되 본 바가 없고 들어도 들은 바가 없는 사람이야말로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에서 뻗어 나오는 지혜광명으로 살아가는 부처님입니다.

원문번역: 문) 깨달음으로 가는 돈오는 무엇을 ‘으뜸(宗)’으로 삼고 무엇을 ‘참뜻(旨)’으로 삼으며, 무엇을 ‘바탕(體)’으로 삼고 무엇을 그 ‘쓰임새(用)’로 삼습니까? 답) 돈오는 망념이 없는 무념을 ‘으뜸’으로 삼고 허망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참뜻’으로 삼으며, 맑고 깨끗한 것을 ‘바탕’으로 삼고 지혜를 ‘쓰임새’로 삼는다. 문) 무념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말씀에서 어떤 생각이 없는 것을 무념이라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 무념이란 ‘삿된 생각(邪念)’이 없는 것이지 ‘바른 생각(正念)’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강설: 돈오(頓悟)는 중생의 번뇌를 없애 부처님 마음을 단숨에 깨닫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명을 끊고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종지로 삼아야 하고, 그 바탕과 쓰임새는 어떤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대주스님은 답하기를 망념이 없는 ‘무념’을 으뜸으로 삼고, 무념 그 자리에서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참뜻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지 바른 생각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육조스님도 <육조단경>에서 “선지식들이여, 나의 법문은 예로부터 먼저 무념(無念)을 으뜸으로 삼고 무상(無相)을 그 바탕으로 삼으며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삼는다”라고 말합니다. 

육조스님은 마음속에 헛된 생각이 없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합니다. 온갖 경계에 대한 집착을 떠났기에 자기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 아상(我相)이 끊어진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에서 올바른 생각이 바로 나오는 것이므로 육조스님은 ‘무념’을 수행의 으뜸으로 삼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경계에서 자기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에서 욕심을 부려 또 다시 삿된 견해를 일으키니 온갖 티끌 망념이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상’이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로 들어가면 ‘나’도 시비분별 하는 ‘경계’도 함께 사라집니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는 보고 집착할 수 있는 어떤 대상 경계도 있을 수 없겠지요. 경계를 보되 집착하는 어떤 모습도 없는 마음, 이것을 무상(無相)이라고 합니다. 바깥 온갖 모습에 대한 집착을 떠나야만 그 성품의 바탕이 맑고 깨끗해지니, 이 때문에 ‘무상’으로 그 바탕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걱정할 일이 없고, 현재의 일도 찰나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므로 집착할 일이 없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미리 애써 걱정하여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경계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아야 얽매이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순간순간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대장부의 힘입니다. 이 때문에 얽매이는 마음이 없는 ‘무주’를 근본으로 삼습니다.

헛된 생각 없는 마음 ‘무념’이라 말하지만

이 마음엔 어떤 모습 없으므로 ‘무상’이며

모습 없어 집착할 곳 없으므로 ‘무주’이니

이들 모두 다 똑같은 부처님의 마음자리.

[불교신문3378호/2018년3월24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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