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상 협시보살 보기드믄 예

보경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사진=문화재청

포항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년)에 창건했다. <보경사사적기>에 따르면 불교가 전해질 때 경전과 불상 외에 보경(寶鏡)을 싣고 왔다고 한다. 보경을 묻고 절을 세운 것은 진평왕 때다. 깊은 연못을 매우고 거울을 그 가운데 두고 법당을 세우고 불상을 봉안한 게 지금의 금당,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에 봉안된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결가부좌를 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다. 불상은 흙으로 만든 뒤 여러 겹의 천으로 쌓은 후 도금됐다. 결가부좌 한 비로자나불은 높이 134.0㎝이다. 좌우협시한 명문이 남아 있지 않지만 비로자나불을 협시하는 문수, 보현보살로 추정된다. 비로자나불상의 좌측의 문수보살은 182.0㎝ 크기의 입상이며, 오른쪽에는 184.5㎝ 크기의 보현보살이 서 있다.

본존인 비로자나불은 둥근 얼굴로, 머리카락은 소라모양의 나발이며, 육계가 비교적 크게 표현돼 있다. 육계 위에는 계주가 놓였다. 눈동자는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눈매는 끝이 살짝 올라간 모습으로 눈썹 사이에 백호가 있다. 두 손은 가슴 아래쪽으로 모아 지권인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싼 모습이다.

법의는 두껍게 표현됐다.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오는 내의를 입고 양쪽 어깨에 대의를 걸쳐 입었는데 어깨 주름을 다르게 표현했다. 왼쪽 어깨는 옷깃이 삼각형으로 넓게 돼 있는 반면 오른쪽 어깨는 옷깃을 살짝 접힌 상태에서 배까지 흘러내리다가 둥글게 접힌 형상이다. 배 부분에는 옷주름을 사선으로 처리했고, 팔과 소매끝부분에 주름을 깊게 해 법의 두께를 실감나게 했다. 좌우 협시보살은 역시 본존불처럼 동그란 얼굴로, 머리는 하나로 묶어 정수리 부분에서 높이 올려져 있다. 두 보살상은 잘록한 허리에 배를 내민 모습으로 좌우대칭이 되게 서 있다. 목과 손목에 영락장식을 하고 있으며 양쪽 어깨에 천의를 두르고 매듭으로 묶은 모습이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는 ‘고려초기 보경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의 일고찰’에서 “(보경사 비로자자나불상) 형식이나 양식적 특징들은 외견상 통일신라시대 유행한 불좌상 형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내원사 소장 석남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흡사하다고 했다. 또 “옷주름에서 느껴지는 정돈되면서 장식성이 가미된 수법이나 사선과 곡선위주의 선각을 선호함으로써 나타나는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는 예천 청룡사, 청도 운문사 석조불상 등에서 느껴지는 고려적인 미감”이라고 봤다.

보경사 삼존불은 지난 2월에야 비로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514호로 지정됐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시대 10∼1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경사 삼존불이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고려시대 비로자나삼존불상이 여러 점 전해지는데, 입상의 문수보현보살이 협시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번 보수를 거치면서 두껍게 도금되고 카슈칠이 돼 있어 원래 모습이 가려져 있어 안타깝다.

[불교신문3387호/2018년4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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