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고시촌의 부처님오신날

마음충전소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고시생들에게 힐링의 시간과 성취감을 전하기 위해 ‘레고 붓다’ 만들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레고 붓다’ 만들기 행사에 참여한 고시생들이 레고로 부처님 형상을 만드는 모습.

자비명상 지난 1월부터
노량진에 마음충전소 열고
수험생활에 지친 청춘 위로

걱정, 불안 잠시 내려놓고
레고로 부처님 형상 만들며
고시 합격에 대한 꿈 키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유독 기념일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며 추억 쌓기에 분주하다. 하지만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가정의 달은 유독 힘든 달이다. 합격을 목표로 하루하루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긴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2주 앞둔 지난 8일 서울 노량진 고시촌을 찾았다.

‘합격’이라는 목표,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목표를 향해 365일 칸막이로 막혀있는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밥은 먹었냐?’, ‘밥 잘 챙겨 먹어라’는 애정 어린 관심과 따뜻한 말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고시 공부로 지치고 힘든 노량진 청춘들을 위한 공간인 마음충전소는 그렇게 출발했다.

사단법인 자비명상(대표 마가스님)이 고시촌 청년들을 위해 마음충전소의 문을 연 것은 지난 1월, 마가스님이 한 불자로부터 가슴 아픈 말은 들고 난 후부터다. ‘고시 공부를 하던 아들이 자살했는데 스님들은 무얼 했느냐’는 질책에 마가스님은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웃종교에서는 고시생들을 위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등 이미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시생들을 위한 불교의 역할을 고민하던 마가스님은 “공부하다 방전된 청년들의 마음을 충전해주자”는 취지로 노량진 고시촌에 마음충전소를 열었다. 자비명상 대표 마가스님과 마음충전소 소장 등명스님이 이곳에서 다양한 힐링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특히 마음충전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 청년들의 밥상이다. 마음충전소는 매주 화요일 청년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고시촌 주변 상점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싶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직접 밥 한 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설 명절을 앞두고 떡국을, 지난 4월에는 주먹밥을 고시생들을 전하며 온정을 나누기도 했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 고시생들에게 마음충전소가 제공하는 따뜻한 밥 한 끼는 큰 위로가 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송연주(26세) 씨는 “밥 먹으러 오라”는 등명스님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마음충전소와 인연을 맺게 됐고 마음충전소 1호 팬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힘들 때마다 마음충전소를 찾아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등명스님의 말을 듣고 처음 마음충전소에 가보게 됐어요. 그동안 불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음충전소에서 불교를 접하게 됐어요. 스님과 차담도 하고 밥도 먹고 충분히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노량진에 온지 1년이 됐는데 꼭 시험에 합격해서 마음충전소에 합격 후기를 남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날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고시생들과 함께 하는 ‘레고 붓다’ 만들기 행사였다. 블록 장난감 레고를 활용해 부처님을 만들며 고시생들에게 힐링의 시간과 성취감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당신은 이 지구별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응원 현수막과 레고로 만든 아기부처님과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등이 고시생들을 맞이했다.

마가스님은 “젊은 친구들이 불교와 사찰에 다가오기 어렵다”며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살려 레고로 부처님 형상을 만들며 합격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레고 붓다’ 만들기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레고로 부처님 만들어 보고 가세요.”, “마음충전소에 보관해도 되고 마음에 들면 집에 가지고 가셔도 됩니다.” 봉사자들의 외침에 급하게 길을 지나치던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다. 한동안 지켜보며 주저하던 학생들도 하나, 둘 부스로 모여 들었다. 마가스님과 등명스님, 봉사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고시생들은 레고 블록을 가지고 부처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한 부처님을 만들기 위해 고시생들은 레고 블록을 이리저리 맞추며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민제(28세) 씨는 담담하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가장 힘들 때요? 아무래도 혼자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언제 합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큽니다. 공부하다가 답답할 때면 마음충전소를 찾아가는데 반갑게 맞아주셔서 든든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땀 흘려 공부하는 만큼 모두들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비명상 대표 마가스님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고종현 씨의 합격을 기원하는 모습.
고시생들이 만든 레고 붓다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레고 붓다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시생들은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만들었다. 부처님을 만드는 손길에는 합격을 염원하는 간절함도 담겼다. 고시생들은 자신이 만든 레고 붓다에 직접 발원을 적었다. 

부처님오신날 불자들의 발원이 적힌 연등처럼 이 순간 고시생들에게는 레고 붓다가 곧 연등이었다. 각자 준비하는 시험은 달랐지만 발원은 ‘합격 발원’ 하나였다. 완성된 레고 붓다는 마음충전소에 1년간 보관한 뒤 레고 붓다를 만든 고시생들이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찾아가도록 할 계획이다. 1년간 마음충전소를 밝힐 연등이 될 레고 붓다는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고종현(27세) 씨는 “대불련 활동을 하면서 불교를 접했다. 공부하다가 힘이 들 때면 108배를 하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며 “소망한다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 합격과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김병일(24세) 씨도 “레고로 부처님을 만들며 자신에 대해 돌아보며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며 “성취감도 들고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마음충전소장 등명스님은 “노량진 청년들은 공부해서 꿈을 이뤄야하는 상황이다. 목표를 향해 공부해가면서 성과가 나질 않아 지치는 경우가 많은데 레고로 부처님을 만들며 할 수 있다는 자존감과 성취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고시생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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