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북한불교 톺아보기

2007년부터 연등달기 이어져

 

지난 2008년 8월 평양 광법사에서 만난 주지 스님과 부전 스님의 모습.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이 꽤 정겹다.

오늘날 북한불교의 모습은 1980년대 초기의 한국불교와 흡사하다. 평양 등 대도시 일부 사찰과 지방의 중점사찰은 대규모로 복원됐거나 현대 건축으로 변모됐다. 북한지역 전역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찰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관리되고 깨끗이 정비된 상태이다. 그러나 불교의식과 신행생활은 1970년대 한국불교 형태와 아주 비슷하다. 각 사찰별 신도조직이나 불교행사, 사찰방문 등은 개별집체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시기에 행해지는 의식과 의례를 비롯해 사용하는 불기와 불교용품 등은 고전적인 종교형태를 이루고 있다. 즉 한국 불교 사찰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일성 주석은 살아생전 118번이나 묘향산 보현사와 평양 광법사 등을 둘러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애동안 69회에 걸쳐 평북 심원사, 강원도 석왕사, 평양 용화사 등 불교유적지를 직접 찾았다. 이 기록은 평양의 인민대학습당 안쪽벽면에 걸린 현황판에 소개돼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002년 6월1일 함경남도 고원군의 양천사를 방문해 ‘우리나라 최고의 자랑’이라 말한 바 있다.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재까지 불교유적지를 현지지도 했다는 공식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국가 관리의 사찰들>

북한에서는 매년 4월과 11월 한 달간씩 ‘문화유적 애호월간’으로 정해 지역주민들이 사찰 등을 비롯한 유적지 주변을 청소 및 보수하는 시간을 갖는다. 문화유적‧유물에 대한 사회 담당제도인 셈이다. 그 법률적 기초는 김일성 주석이 1985년 7월11일을 기해 교시한 ‘주석명령 제35호’인 “문화유적 보존관리 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포고문에 의해서다. 이를 바탕으로 제정된 문화유물보존법(1994년)이 북한의 민족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항구적 지침이다.

그 후 2015년 6월10일 개정 발효된 민족유산보호법은 민족유산의 발굴과 수집, 평가와 등록, 관리와 이용, 복원, 민족유산보호 사업에 대한 지도통제 등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이 법령 제4조에는 “주체성의 원칙과 역사주의 원칙, 과학성의 원칙은 민족유산을 보호하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일관성 있게 견지하여야 할 것을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국가는 민족유산 보호와 관련하여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인민의 지향과 요구, 민족적 풍습과 감정 정서에 맞게 풀어나가며 민족유산들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과학기술적으로 발굴 복원하고 보존 관리하도록 한다”고 명시돼있다.

北 모든사찰, 국가에서 관리
사찰 개·보수 등 정비도 직접
사찰문화재 특히 관심 드러내
현존 사찰 71~75개소 예상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에서도 국가 문화유산, 민족유산의 발굴과 등록, 보호와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근거를 2012년 신년공동 사설에서 제시한 ‘사회주의 문명국건설’에서 꼽을 수 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10월30일 보도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현재 민족유산보호 사업을 책임지고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중앙지도기관인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의 역할과 권능을 강조하고 특히 남측 및 해외동포들과 '민족문화유산과 관련한 학술교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2015년 11월에 찍은 개성 관음사 요사채 전경.

2016년 7월22일 방송에서는 “민족유산보호지도국과 각지 해당 단위들에서 각도에 있는 역사박물관들과 같이 전국 모든 문화유적들에 대한 유지관리의 개선 및 보수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는데 이를 통해 문화유산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북한사찰의 관리와 보수는 최종적으로 문화유물보존총국(우리나라의 문화재청)에 의한 정책적인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2013년 11월부터 역사유적을 관리하는 중앙기관으로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이 처음 등장했다. 내각 산하의 문화유물보존지도국이 그 명칭을 새로 바꾼 것이다.

내외신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묘향산 보현사는 북한 삼보(三寶)사찰의 위용을 갖춘 대표적인 절이다. 불법승 즉,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묘향산 용주봉 사리탑과 해인사판 인쇄본인 재조대장경 등을 봉안하고 있는 팔만대장경보존고가 있다. 또한 해방이후 법천, 법룡선사에 이어 청운당 최형민 선사에 이르기까지 현재 약 2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며, 1000여 명의 재가신도들이 신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흔히 불렀던 ‘금강산 승려(金剛山人)’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그 전통과 법맥은 내금강의 표훈사와 정양사, 보덕암, 마하연 등 현존사찰과 북한불교도들에 의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금강산 옛 4대 사찰이던 유점사, 장안사, 신계사가 한국전쟁 때 소실됐지만 신계사는 2007년 10월15일에 남북공동 협력사업으로 다시 복원됐다.

북한 스님들은 붉은색 홍가사(紅袈裟)를 입고 있어 붉은 승려로 불린다. 평양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 소속으로 현지사찰에 각기 파송되는 형식으로 전국 71개소<표1>의 사찰에서 수행하면서 관리와 보수·운영을 하고 있다. 기독교 가톨릭 천도교 등 종교시설이 평양시에만 있는 것과 달리 사찰은 북한 전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또한 1970~80년대 모습과 풍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모든 사찰은 종단 총무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불련 산하의 사찰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직접 관장하는 게 특징이다.

사회주의 체제 속 재탄생한
조불련, 북의 유일 불교 종단
대회적인 불교교류 적극 나서

2016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평양의 법운암 칠성각, 평안북도 태천의 양화사 천왕문‧명부전‧봉축전, 황해남도 송월암, 신천 자혜사 승방, 황해북도 속명사 요사채, 함경북도 쌍계사 수황루 등 21개소”가 개‧보수되었으며, 민족유산보호지도국과 각지 해당 단위에서 각도에 있는 역사박물관들과 역사교양 마당을 조직하는 사업, 전국 모든 문화유적들에 대한 유지관리의 개선 및 보수 등을 정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라는 내용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3월 보도한 “민족유산보호지도국이 북한주재 독일대사관의 협조를 받아 개성시 관음사를 크게 보수하였고, 2015년에도 개성 안화사를 보수했다”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평양 광법사 부처님오신날 봉축등을 단 모습. (출처: 2007.5.24<통일정토> 2007년 7월호)

<북한 유일의 종단, 조불련중앙위원회>

분단 이후 새롭게 형성된 북한불교는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조불련)가 단일조직의 유일한 불교종단이다. 조불련 등 북한의 종교단체는 종교정책을 총괄하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제6국의 지도를 받으며 조국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6국 관할로 돼 있다.

해방이후 북한지역에는 1945년 11월26일 창립한 북조선불교도총연맹과 북조선불교연합회가 활동하다가 그해 12월26일 평양 용화사에서 조불련 중앙위원회로 통합 출범했다. 전쟁기간에 활동을 중단했던 조불련은 1955년부터 중앙조직을 정비하고 각 시․도위원회를 조직화하는 등 지금은 북한불교를 대표하고 있다. 1967년부터 북한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견제 내지 탄압이 매우 높았던 상황으로 볼 때 조불련의 출발은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종교적인 계보에 의해서라기보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과 북한의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재탄생한 종교조직으로 볼 수 있다. 조불련의 조직체계와 강령(종헌·종법), 교구와 사찰운영 등에서 남한의 제종단들과 차이가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2008년 8월 묘향산 보현사 모습.

1980년대 말부터 북한에는 보현사 만세루, 광법사, 정릉사 등 사찰 복구와 복원을 비롯해 불학원(佛學院)에 의한 승려교육(1989년), 조불련 전국신도회 출범(2003년), 전국신도회 청년위원회 발족(2016년) 등 내부조직의 강화 그리고 대외적인 종교문화교류에도 적극 나섰다. 1991년 10월 미국 LA에서 ‘남북해외불교도 조국통일기원 합동법회’를 처음 개최하는 등 국제교류를 추진하면서 북한 내에서도 불교명절 행사 등 종교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조불련의 70년 역사에서 1989년 7월1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은 새로운 출발의 단초를 제공하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종교계와 더불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제6대 조불련 위원장으로 선출된 지성당 강수린 위원장은 조선적십자사회 중앙위원장을 겸직하는 등 북한 최고위직 인사의 불교계 진출로까지 확대됐다.

<스님의 출가부터 교육은?>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대사라 불러진 청허 휴정스님은 1604년(선조37) 정월 23일 보현사의 산내암자인 금강암에서 마지막 설법을 하고 입적했다. 대사는 사후에도 전남 해남 대흥사에 가사와 발우를, 내금강산 백화암 등에 유품을 두루 분산시켜 숭유억불 정책으로 말미암은 전국 사찰과 스님들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뜻을 남겼다. 또 대사는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를 통해 수행자의 격조와 품위를 가르쳤다.

북한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학림(鶴林) 박태화 위원장(2005년 입적)과 대강백으로 알려진 법등(法燈) 홍화두 고문(1993년 입적)은 전통 법맥을 이은 북한의 고승, 지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들은 묘향산 보현사를 출가 사찰로 오늘날 300여명 조불련 승려들의 최고 스승(恩師)으로 꼽힌다.

불학원 등 체계화된 승가교육
선덕부터 대선사까지 5품계
비구니는 문중도 품계도 없어

종교계를 대표하는 조선종교인협의회(KCR)가 1991년도 밝힌 바에 의하면 종교인의 수는 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2%이다. 그 중 천도교 42%, 불교와 개신교 27.9%, 천주교가 2.2% 정도이다. 71개소의 전국 사찰에서 매시기마다 열리는 행사에 회당 인원 300~500명이 참가한다.

북한 불교계는 해방 이전의 일제 31본산제 문중이 없어지고 분단 이후에 조불련의 등장으로부터 형성된 문중이다. 북한에서 스님이 되려면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거나 각급 교육기관과 각 기관에서 간부로 활동을 한 사람 중에서 불학원과 지방순회 강습소에서 불교교육을 이수해야 가능하다.

불학원의 입학자격은 고등중학교 이상의 학력을 소지하고 각 도와 시, 군, 노동자구에 속한 지역사찰과 연관이 있거나 조불련의 도·시·군 위원회에서 추천을 하면 중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선발하는 과정이다. 예비승려(교역자)가 교육을 이수하고 조불련의 등록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법계자격고시위원회가 주관하는 자격심사를 거친 다음, 비로소 조불련의 임원 내지 사찰의 주지 등 승려 자격으로 활동할 수 있다.

2015년 11월 개성박물관 성균관 전경 모습.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주최하고 법계자격고시위원회가 주관하는 ‘법계자격고시’는 부정기적이지만 통상적으로 4년마다 열린다. 교단의 법계는 1965년 삼수갑산 중흥사에 4년 학제의 불학원이 공식 설립되면서 품수됐다. 1991년 평양 대성산 광법사가 총본산으로 건립되고 이듬해 불학원이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불학원의 승려교육 시행과 함께 법계고시위원회 설치도 체계화됐다.

북한 승려의 법계는 선덕-중덕-대덕-선사-대선사의 5품계로 나눠져 있다. 법계자격고시 내용은 서류 자격심사, 염불습의, 경전해석, 역사 및 불교교리 이해 정도 등과 개인적인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대한 기여도 등을 평가에 포함하고 있다.

선덕과 중덕의 법계 자격의 기준은 연령 25세 이상 남자, 대학졸업자, 불학원 수료자, 승납 10~15년, 3~5년의 안거(선사 5~8년)를 이수한 사람에 한해 부여한다. 여기에 개인의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기여한 것을 바탕으로 선덕과 중덕의 법계를 품수한다. 대덕의 경우는 일정한 자격기준에 이르면 법계 응시자격을 부여 받는다. 선사와 대선사의 경우는 중덕과 대덕 법계의 품계를 받은 자에 한해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선사의 경우 법계 자격에 해당된 자와 불교발전과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로 심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대선사의 경우는 우선 도덕과 윤리적으로 덕망을 얻은 추천 대상자를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선정하고 국가와 불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에 대해 법계자격고시를 거치지 않고서 품계를 받을 수 있다.

전임 유영선 조불련 위원장과 2012년 11월 조불련 제6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강수린 위원장은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선사의 법계로 위원장에 선출된 경우이다. 그러나 승려 법계와 불교문중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장점과 다르게 아직 북한불교계에는 비구니, 사미와 사미니의 품계가 없고 비구니 스님들의 문중도 형성되지 않고 있다.

2007년부터 연등달기 이어져

<북녘의 부처님오신날>

분단 이후 북한에서 개최된 최초의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는 1988년 5월5일 묘향산 보현사에서 봉행된 ‘석탄절(釋誕節) 기념법회’이다. 국제적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1989년 5월 내금강산 표훈사를 비롯해 묘향산 보현사, 평양 용화사 등지에서 열린 불탄절 법회와 봉축 탑돌이다. 그로부터 열반절, 성도절 기념법회를 해마다 열고 이외에도 3.1절 그리고 6.15 및 8.15 등 매 시기마다 기념법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들 법회에는 랩(Rap)풍의 내용이 들어가는 북한식 염불과 함께 찬불가를 부른다. 2001년 4월 금강산 신계사에서 ‘민족화합을 위한 연등달기’ 시행과 2007년 5월 평양 광법사에서 남북공동사업으로 봉축등(奉祝燈) 달기를 추진한 다음부터 북녘의 사찰에서도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봉축 연등을 달아 천년 가람을 장엄하고 있다.

초파일 기념법회 꾸준히 봉행
2007년부터 연등달기 이어져

일찍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평양에 9개의 사찰을 건립했으며, 고려의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불교를 통해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 명나라 사신 당고(唐皐)는 1521년 조선을 다녀간 후에 “이제 부벽루에 왔다가 이 산마루에 오르니 흥이 그지없네”라고 노래하였다. 지금 평양에도 모란이 다시 피는 봄은 왔건만 비단 물결이 굽이치는 금수산과 수세기를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봄 경치는 통일조국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말이 없다.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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