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원로의원 무산스님의 영결식이 5월30일 제3교구본사 신흥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사진은 진제 종정예하가 사부대중을 향해 법어를 설하는 모습. 

30일 설악 무산대종사 영결식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적멸을 위하여, 무산스님).”

조계종 대종사이자 시인으로, 신흥사와 백담사를 중심으로 선원을 재건하는 등 선풍진작에 평생을 바친 원로의원 무산스님의 영결식이 오늘(5월30일) 오전10시 제3교구본사 신흥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명종 5타로 시작된 이날 영결식은 영결법요, 행장소개, 추도입정, 생전 육성법문,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조시, 헌시, 조가, 헌화, 문도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신흥사에 경내에는 일찍부터 영결식에 함께하려는 수 천 여 명의 사람들로 넘쳐났다. 설악당 무산스님을 청하는 의식인 영결법요가 봉행되는 동안 불자들도 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특히 무산스님의 생전 영상법문이 설악산 자락에 울려퍼지자 사부대중은 영결식장 곳곳에서 ‘큰스님’을 기억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진제 종정예하는 법어를 통해 “무산대종사께서 남기신 팔십칠의 성상(星霜)은 선과 교의 구분이 없고, 세간과 출세간에 걸림이 없던 이 시대 선지식의 발자취였다”며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동진출가 해 치열한 정진으로 선과 교, 종무를 두루 섭렵하시고, 오직 본분 수행과 후학불사와 불교문화쇄신을 평생의 원력으로 매진했다”고 설했다.

진제 종정예하는 “산중을 지혜와 덕망으로 원융화합을 이루어 내고, 설악의 불교문화를 부처님 정법으로써 세계 문화로 발전전승하고 전법포교로 회향하셨다”며 “이는 모든 종도들의 귀감이 되니 실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이셨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이 영결사를 낭독하고 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도 영결사를 통해 애도했다.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은 “비록 적멸의 깊은 곳에서 해탈의 안락을 누리고 계시더라도 무생의 한 소식을 보이십시오. 여기 모인 대중은 평소 소탈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이끌어주시던 그 진용(眞容)과 법음(法音)을 뵙고 들을 수 없어 슬픔에 잠겼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스님이 남긴 선시는 돈오뇌성(頓悟雷聲)이었고, 우리 문학사에 이렇게 큰 울림은 없었다. 구절마다 담긴 선지는 우리 가슴을 울리고 일언일구마다 아름다움을 풀어내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 영혼을 후려치는 주장자이기도 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뇌성(雷聲) 같았다”며 “이제는 생멸 없는 세계에서 해탈의 자유를 누리시고, 오고감이 없는 대자재력(大自在力)으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중생을 깨우치소서”라고 말했다.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추도사를 낭독한 직후 무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합장 반배하는 모습.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무산스님이 몸소 보여준 지혜와 탁마의 길을 따라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스님께서는 29년 전 낙산사에서 정진하던 중 크게 깨달아 ‘천경만론(千經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라고 읊으셨다. 이런 오도의 기개로 산문을 일으켰고 종문을 든든히 했다”며 “‘절집과 대장경에 법이 있지 않고 거리 노숙자와 대장장이, 염장이들에게 법을 찾으라’ 했던 스님 법문은 두고두고 수행자들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종단 현실과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더욱 대종사님의 지혜가 절실할 것”이라며 “사바세계를 떠나셨지만 변함없이 용기를 주실 것으로 믿고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과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을 함께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의연하고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피력했다.

각계각층에서 원로의원 무산스님 원적 애도
“한평생 남녀노소 빈부귀천 분별하지 않은
중생의 친구…천진무구한 법안 사무치게 그립다”

원로의원 무산스님의 영결식에 함께하기 위해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는 신흥사 전경. 

이와 함께 불교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사를 통해 원로의원 무산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중앙종회의장 원행스님은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기백에서 당신이 성취한 무아와 하심의 깊이를 읽어야 할 것”이라며 “특히 만해스님의 민족애를 본받기 위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의 설립과 만해마을 건립은 중생제도의 정점에 서있다. 만해가 그랬듯, 큰스님도 시대의 분열과 혼란을 부수는 선구자였다”고 회상했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은 선원 수좌들을 대표해 “오늘 큰스님의 털과 뿔이 세상을 덮었으니 큰스님의 행화(行化)는 광명이 됐다”며 “천방지축이며 허장성세로 살아온 어리석은 저희 납자들은 큰스님 광명 속에 일념만년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스님도 “한 평생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분별하지 않고 선인이든 악인이든 대자대비의 무애행을 펼쳐 중생의 친구가 되고자 하셨던 천진무구한 대종사님의 법안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며 “시처인(時處人)을 초월해 자유자재하셨던 대종사님의 자비행이 그대로 오도송이요 열반송이 되어 우주법계에 아름다운 연꽃으로 다시 만개되길 기원한다”고 발원했다.

이기흥 중앙신도회장은 “큰스님께서 한 자, 한 자, 글로써 남겨주신 가르침을 명심하고 스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보살행의 발자취를 후대에 올곧게 전하며, 종단 외호단체로써 더욱 정진하는 불자로서 본연의 목적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전 용대리 이장 정래옥 씨가 조사를 하고 있다. 

전 용대리 이장 정래옥 씨도 “용대리 전체 주민들은 갑작스런 큰스님의 비보를 접하고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며 “큰스님께서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백담사에 계시며 우리 용대리 주민들에게 덕과 올바름을 가르쳐 주셨다. 마을에서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장학금을 주시고, 노인 복지에도 늘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저희들은 용대리 어느 곳을 가나 큰스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를 돌아보며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새기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상좌 득우스님의 조시, 원로시인 이근배 씨의 헌시, 신흥사·낙산사 연합합창단의 조가, 종단 및 각계대표, 신도대표 등의 헌화 등이 이어졌다.

신흥사 주지 우송스님을 비롯한 대중 스님들이 기도하는 모습. 

끝으로 문도 대표로 마근스님과 집행위원장 우송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참석한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날 영결식 직후 무산대종사의 법구는 신흥사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고성 건봉사 연화대로 이운됐다.

장의행렬은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 삼신불번, 오방불번, 십이불번, 법성게, 만장, 위패, 영정, 법주,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 순으로 이동했다.

원로의원 무산스님에 대한 추모의 마음은 불교전통 다비의식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거화하자 사부대중은 나무아미타불을 합송하며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설악당 무산대종사 추모일정은 6월1일 오전10시 신흥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6월8일 오전10시 백담사(2재), 6월15일 오전10시 낙산사(3재), 6월22일 오전10시 만해마을(4재), 6월29일 오전10시 진전사(5재), 7월6일 오전10시 건봉사(6재), 7월13일 오전10시 신흥사(7재)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은 지난 5월26일 오후5시11분 주석처인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승납 62년, 세납 87세. 스님은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온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이라는 열반송(涅槃頌)을 남겼다. 무산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957년 직지사에서 성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 신흥사 주지,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을 역임했으며, 종단 최고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속명이자 필명인 ‘오현스님’으로도 잘 알려진 시조 시인으로, 한글 선시의 개척자로 꼽힌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만해대상, 만해축전을 개최하는 등 포교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쌓았다.

종단 원로 스님들이 헌화를 하고 합장하는 모습. 
영결식 직후 무산대종사의 법구는 신흥사에서 약 한 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고성 건봉사 연화대로 이운됐다. 장의행렬은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 삼신불번, 오방불번, 십이불번, 법성게, 만장, 위패, 영정, 법주,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 순으로 이동했다. 사진 신재호 기자
평생 도반으로 함께한 정휴스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다비식에 참석한 원로의원 성우스님.
거화의식을 하고 있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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