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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기사승인 2018.06.01  14: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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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시인 무산스님이 남긴 작품들

조계종 원로의원 무산스님.

우리나라의 현대시조
지평 넓힌 ‘시조시인’

다양한 문학상 휩쓸며
주옥같은 작품 남겨…

날카롭고 섬세한 직관
‘무애도인’ 선심 돋보여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 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무산스님의 시 ‘내가 죽어 보는 날’)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스님. 지난 1968년 <시조문학>에 ‘봄’과 ‘관음기(觀音記)’로 등단한 이래 우리나라 현대시조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인으로 필명인 ‘오현스님’, ‘조오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산스님은 오래 전 발표한 시 ‘내가 죽어 보는 날’을 통해 “삶과 죽음이 원래 하나인데 굳이 경계를 나누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분별심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러 현대불교사의 큰 족적을 남기고 시의 세계로 홀연히 떠났다. 스님은 1979년 첫 시조집 <심우도>를 시작으로 <산에 사는 날에>(2000년), <만악가타집>(2002년), <절간이야기>(2003년)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면서 현대시조문학상(1992년), 남명문학상(1995년), 가람문학상(1996년), 한국문학상(2005년), 정지용문학상(2007년), 공초문학상(2008년), 이승휴문화상(2016년) 등 문학상을 휩쓸었다.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는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여든 해를 보내고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이 가운데 최근 무산스님의 입적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SNS를 통해 언급하기도 했던 시집 <아득한 성자>가 눈에 띈다.

2007년 제1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기념 시집으로 당시 “참으로 좋은 말은 입이 없어야 할 수 있고, 참으로 좋은 말은 귀가 없어야 들을 수 있다”며 “불가의 ‘목격전수(目擊傳授)’라는 말처럼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은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인사를 하자”는 스님의 남다른 수상소감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시 ‘아득한 성자’와 ‘아지랑이’ 등은 순간에서 영원을 보고 영원에서 순간을 읽어내는 깨침을 날카롭고 섬세한 직관으로 보여 주고 있어 의미가 깊다.

“비슬산 굽잇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밝고 가면 운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2008년 출간된 <비슬산 가는 길>에는 산의 풍경에 대한 다양한 시편들과 절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대구 유가사에 무산스님의 시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2012년 발표한 시집 <적멸을 위하여>에서는 시조시인 무산스님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님의 모든 시집과 시조집을 한데 모아 엮은 것으로 설악산 산감으로 평생을 지내온 무애도인의 선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무산스님이 신경림 시인과 10일 동안 세상살이의 이런저런 일곱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산문집 <열흘간의 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 즉 사랑을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스님은 이런 생각을 '집착'이라고 하면서 사랑을 자꾸 허무한 것으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군요.”(신경림 시인) “연애지상주의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면 모든 것이 변해 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대상도 변하고 나도 변해 가는 것입니다. 한때 목숨을 걸고 사랑했다 해도 지켜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무산스님)

두 시인은 여행, 사랑, 환경, 욕망, 통일, 전쟁, 문학 등 거대한 담론을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간다. 스님은 불교적 관점에서, 신 시인은 시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생각은 하나로 모아진다. 담담하게 오가는 평이한 대화 속에서는 깊은 불교의 세계에서 사랑, 환경, 통일, 전쟁 등 철학과 사유가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밖에도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현대인들을 전하는 따뜻한 지혜를 담은 명상에세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불교우화를 모은 경전 <백유경>에 실린 98가지 이야기를 스님이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곁들인 산문집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스님의 심오한 불교적 깨달음과 무위자연을 노래한 200여 편의 시를 묶고 그림을 더한 시화집 <내 삶은 헛걸음>, 지난 4월 출간된 최근작으로 스님의 선시와 평소 인연을 맺은 문인들이 글을 보탠 <무산 오현 선시>도 종교를 초월해 현대를 살고 있는 대중이 한 번 쯤 읽어 봐야할 필독서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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