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스님 일대기 ‘25+10=X’ 신지견 작가 인터뷰

3·1독립만세 전후 근현대사
올곧은 신념 변절 않았던
백용성 스님의 삶 재조명

신지견 작가는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의 기원을 우리 역사에서 찾고, 가장 냉철한 시선과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손에 꼽히는 문장가다. 용성스님을 소설로 재현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손놀림은 능수능란하다. 옛 스님을 주제로 한 불교소설이 이렇게 흥미롭고 생기발랄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다. 지난 5일 조계사 앞에서 신지견 작가를 만났다

“글 좀 쓴다는 놈들은 전부 다 성적이 이 몬양이여.” 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소설가 황순원은 대학면접 보겠다고 까무잡잡한 얼굴로 앞에 앉은 전라도 화순 촌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래봬도 광주서 제일 큰 백일장 장원을 먹고 전남일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난 사람인지라, 스물 청년은 내심 우쭐했다.

경희대 국문학과 64학번. 대학에 들어와선 영문과 친구들과 동인을 만들어 자나깨나 글만 써댔다. 2학년 때 ‘오산댁’이란 꽁트로 경희문화상을 거머쥐고 학보에 연재까지 했다. 제자들 글봐주는 걸 그다지 환대 않았던 당시 경희대 교수인 황순원 작가는 1966년 소설 ‘일월’로 삼일문학상을 타고, 한 언론인터뷰에서 차세대 유망주를 묻는 질문에 ‘화순 촌놈’을 꼽았다.

대학 졸업하고 7년여가 흐른 어느날, 너무나 소설을 쓰고 싶지만 도무지 소설이 써지지 않는 긴 방황끝에 세 편의 글을 싸 짊어지고 황 교수를 찾아갔다. 한번은 4시간동안 작품평을 듣고 다음번엔 함께 앉아 있던 오두막이 캄캄해지도록 하루 반나절 소설에 관해, 그리고 문학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빨간 사인펜으로 여백없이 곳곳에 교열을 봐준 세 편의 글은 현재 경기도 양평 황순원문학관에 보관돼 있다.

소설가 신지견. 10여년 전 해남 대흥사에서 직접 먹고 자면서 대하소설 <서산> 전 10권을 탄생시킨 작가다. 서산대사의 삶과 사상을 다룬 <서산>은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의 기원을 우리 역사에서 찾는가하면, 오늘의 현실을 역사의 거울에 제대로 투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의상대사와 화엄경을 소설화한 <꽃들은 하나로 핀다>도 불교문학의 한 획을 그은 명작이다.

그가 지난 1여년간 불교신문에 연재한 ‘범종소리 우주를 깨운다’는 백용성(1864~1940) 스님의 삶과 자취를 그린 소설이다. 허구인물 등 소설적 요소가 녹아 있지만, 용성스님의 다큐멘터리라 할만큼 당시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배경이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묘사돼 있다. “3·1 독립만세 사건 전후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고,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가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재발견하기 위해 집필한 것입니다. 3·1 독립만세 사건의 주축인물로 세수를 다할 때까지 올곧은 신념을 변절하지 않았던 백용성 스님의 삶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재조명했다고 할까요?”

용성스님에 관한 소설인데 <25+10=X>라는 제목부터가 생소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o)은 언어로 설명하기 매우 어려워요. 굳이 설명하자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인데, 우리의 시각은 있는 것은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은 없는 것으로 인지됩니다. 물질의 기본구조는 어떤 힘의 작용으로 눈부신 변화가 발생한다고 과학은 말하는데, 이것이 자연의 실재라면 불교는 자연의 실재를 영(o, 空)으로 상징화했다고 여겨집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o, 空)의 사상을 바늘귀만큼 눈치 챌 틈을 보여준 것이 이 소설의 제목입니다.”

조선 말 왕실은 척신들과 부패한 관료들의 농단으로 법과 제도가 바로 서 있지 않았다. 손쓸 수 없는 문란과 무능의 적폐에 빠져 있었다. 소설은 무능한 왕실을 일본이 정한론으로 한국을 병탄하기까지 과정, 그리고 식민지로 만들어 한민족이 일본의 노예로 전락된 배경이 깔려 있다. “1904년에서 1910년까지 한국은 남이 눈 똥에 주저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 꼴이 됐으나 권력 암투 외에 아무 대책이 없었어요. 1910년 일본에 의한 병탄이 이뤄지면서 조선이란 나라는 셔터를 내리고 일본식민지 시대로 들어가잖아요.”

이러한 시대에 백용성 스님의 역할이 시작된다. 신 작가는 “수행자로서 퍽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으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광복운동에 투신했다”며 용성스님을 이야기했다. “3·1 독립만세 불교계 대표 백용성 선사는 열여섯에 출가한 수행자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승군에 패한 역사적 교훈을 갖고 있는 일본은 대처육식의 승려들을 앞세우고 들어와 조선 임제종 종통의 선기를 흩트려 놓는데 중점을 두었지요. 이 시기에 용성선사는 스님들의 봉기를 주도했고, 불교정화와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용성스님은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윤봉길 불자를 김구 선생에게 보내 거사를 진행시켰고 중국으로 가서 장제스와 마오쩌둥에게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고 무장투쟁까지 준비했습니다.”

25+10=X 신지견 지음 / 불교신문사

소설로 재현했지만 사실성 多 오늘 현실 역사의 거울에 투사
역사 속에 굳어 있는 용성스님 인간적 향기 뿜고 우리 곁으로

소설은 이같은 일련의 거사 속에서 용성스님의 인간적 매력은 물론, 요샛말로 훈남이나 상남자의 기품까지 발산시킨다. 다시 살아나 우리 곁에 온 스님으로 맑고 곧은 기운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그동안 용성스님과 연관된 다양한 논문이나 학술전집에서는 만나기 힘든 정겨운 감정들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흥미롭다. 물론 용성스님이 초인적인 힘과 노력으로 수많은 한문경전을 한글화했던 역경불사, 대중불교 일번지 대각사상 포교, 함양 백운산 화과원서 백장청규 실현, 어린이 찬불가 일요학교 설립 등 수많은 포교업적도 소설에선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행장을 그대로 따라 적어내려가면 ‘평전’이나 ‘전기’로 전락하게 되기에 작가는 이번 소설 집필이 쉽지 않았다고 재차 말한다.

“조선말, 대한제국, 일본식민지 통치의 근현대의 자료들이 널려있는 현실 위에 보편타당성 있는 거짓말을 만들어낸다는 게 매우 벅찬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보다 과감하게 펜을 세우려 했으나 불교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기에는 필자의 역량에 한계가 보였지요. 허허.” 소설은 문장이란 말이 있다. 신선한 맛이 사라진 단어나 문체상의 사어(死語)가 비교적 많은 불교용어를 톡톡 튀는 감각적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가슴에 불꽃처럼 튀고 있지만 그것이 벅찬 숙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소설 구석구석 잊을만하면 입에 착착 감기는 우리말이 속속 등장하고 듣도보도 못한 방언섞인 옛 속담들이 맛깔스럽게 끼어들어 글맛을 기분좋게 살려준다. 대중소설처럼 번잡한 표현을 쓸수도 없는데다, 수행이 고도화된 인물이 주인공이기에 격에 맞는 표현이 따라야 했다는 작가의 걱정은 오히려 불교소설이란 장르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 화두를 던진 셈이다.

이제 칠십이 훌쩍 넘어선 노작가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소설이 뻣뻣하면 무신 재미여?”, “용성전집에 다 들어있는데 소설에 그걸 다 재탕하면 무신 재미여?”, “문장 읽는 맛도 없으면 무신 재미여?”…. 그는 우리에게 그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우리말사전 영어사전을 끼고서 소설을 쓰고, 역사소설 하나 쓰는데 손이 닳도록 역사책을 뒤적인다. “아, 이제야 비로소 소설이라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디,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이 막바지네요. 그래도 죽기 전까지는 계속 소설을 써볼라요….”

소설로 용성스님을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
“성숙된 역사의식만이 분열 아닌 통합”

“지금 우리는 역사의 망각 속에 사는 기분이다.” 용성스님을 소설로 재현한 신지견 작가가 소설을 끝내고 작가의 말을 이렇게 시작했다. “불과 100년 전, 이를테면 1918년을 전후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현대사에 반영하려는 뼈아픈 통찰이 없어 보인다”고 일갈했다.

이번 소설은 그래서인지 “역사란 기록된 과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듯 하다. “우리 민족은 일본 식민지정책 그리고 해방 후에도 부당한 권력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습니다. 자기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억압에 저항한 개인들이 우리 현대사에는 수없이 많죠.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부당한 권력에 협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일본 식민지시대에 경험했고 역사 속에 그 잔재가 고스란히 스며있지요. 용성스님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번 소설도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의 사고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꿈속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작가는 “친일, 독재, 군부독재가 남긴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채 과거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사례는 역사 교과서 개편 때마다 역력히 드러냈다”며 “이미 민족주의라는 말도 국가주의 희미해져버린 이 시대에 한편의 소설이 길을 찾는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2016년 소설 <서산>으로 제29회 경희문학상을 수상한 신 작가는 “성숙된 역사의식은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시킨데 있다는 점이 과거에 대한 현재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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