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4, 짝수 부정하게 여기는 
동아시아 문화 관습 영향 받아
불교의식 예법도 홀수로 배치
이런 배경 감안해서 변화 줘야 

절에 들어와 발우를 처음 받았을 때 이상한 점이 있었다. 5개가 찬합처럼 포개져 있는 발우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의 일종이다. 그런데 지도하는 스님의 말씀이, ‘4개만 쓰고 1개는 사용을 안 하니 빼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럼 처음부터 4개를 한 세트로 하지, 왜 5개를 만들어서 하나를 버린단 말인가?’라고 의아하게 여겼다. 

발우가 4개라는 주장은 최근 율원에서 처음 제기됐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직후 2주째 무역상이었던 제위와 파리가 공양한다.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는 최초 공양이다. 부처님은 성도(成道) 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인근 니련선하에 당신의 발우를 띄워 버린다. 깨닫지 못하면 더 이상 밥 먹을 일도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깨닫고 난 뒤 부처님께는 발우가 없었다. 공양물은 있는데, 이를 받을 그릇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사천왕이 나타나 각기 하나의 발우를 올렸고, 부처님께서는 이 4개의 발우를 겹쳐놓고 신통으로 포개 하나로 만드셨다. 이 율장의 기록을 율원에서는 4개의 발우로 해석해 주장한 것이다.

그럼 5개짜리 발우는 무엇인가? 사실 이건 4라는 숫자를 터부시하는 동아시아의 문화전통과 관련 있다. 숫자 사(四)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 때문에 4를 피하는 문화가 동아시아에 존재한다. 오늘날 병원에 4층이나 4동이 없는 것도 이러한 문화가 미친 결과다. 불교의 사홍서원도 마찬가지다. 전통식으로 할 때 ‘중생무변서원도’에서 반 배, ‘번뇌무진서원단’에서 반배한 뒤 ‘법문무량서원학’에서 반 배를 건너뛰고, ‘불도무상서원성’에서 반배한다. 이렇게 총 세 번의 인사로 마친다. 즉 4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형에는 또 홀수를 신성시 여기는 문화가 서려있다. 불보살님을 모실 때 1, 3, 5, 7 홀수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 혹은 좌우 보처로 문수나 관세음보살을 모시거나 대적광전에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석가모니부처님 등 두 분의 부처님과 보살을 모시거나 해인사 대적광전 처럼 7분의 불보살을 모신다. 이처럼 불보살을 봉안하거나 절을 올릴 때, 혹은 진언을 할 때도 모두 홀수다. 탑의 층수도 마찬가지다. 사찰에서는 108이나 500 또는 3,000처럼 큰 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홀수가 기본이다. 이 모두 4를 터부시하는 문화와 홀수를 선호하는 문화가 결합한 결과다. 그리하여 사홍서원마저 세 번 예를 올리는 방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잘 모르면서 현대에 들어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난다. 사홍서원을 노래로 만들면서 4번 인사하는 방식으로 변형됐다. 전통 예법에서 짝수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법이다. 제사나 조문할 때 재배(再拜)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국왕의 사당인 종묘에서는 4배를 한다. 이런 점에서 4번 인사하는 현대식 사홍서원은 문제가 있다.

숫자 4에 대한 금기와 홀수 선호는 발우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전통에서 5개의 발우를 사용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5개 발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 ‘백률사’ 조의 ‘관세음보살님께 금과 은 각 50냥으로 된 5벌의 그릇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675)한 직후인 693년에도 발우는 5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이라고 반드시 묵수(墨守)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꾸기 위해서는 ‘왜 그랬을까?’에 대한 타당한 검토가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이런 점이 못내 아쉽다.

[불교신문3400호/2018년6월16일자] 

자현스님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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