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불국토] <11> 고뇌와 고통을 소멸하다, 약사불화

약왕보살 12대원 세워 부처돼
온갖 재앙으로부터 중생구제
전시대적 전국가적으로 신앙

손에 약그릇 든 모습으로 표현
일광월광보살, 십이신장 협시

동쪽으로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불국토를 지나야 있는 유리광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위해 열두 가지 큰 대원을 발하신 부처님, 그분은 바로 약사여래이다. 약사(藥師), 즉 약으로 병을 고쳐주는 의사처럼 온갖 병고(病苦)와 재난에서 중생을 구제해주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藥師十二大願)을 세웠다고 한다. 약사12대원은 ①중생을 모두 약사여래처럼 되게 하려는 것 ②깨닫지 못한 중생을 모두 깨우치려는 것 ③중생이 바라는 것을 얻게 하려는 것 ④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대승교(大乘敎)에 들어오게 하려는 것 ⑤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한 업(業)을 지어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게 하려는 것 ⑥모든 불구자로 하여금 모든 기관을 완전하게 갖게 하려는 것 ⑦모든 중생의 병을 없애게 하려는 것 ⑧모든 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남자가 되게 하려는 것 ⑨모두 올바른 견해를 갖게 하려는 것 ⑩나쁜 왕이나 도적 등의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 ⑪기갈 든 중생에게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려는 것 ⑫의복이 부족한 중생에게 훌륭한 옷을 가지게 하려는 것 등이라고 한다. 약사여래는 바로 이 12대원을 세운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다.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나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사람,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사람들도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며 발원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다.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이 보다 구체화된 것은 달마굽타가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을 번역한 616년 이후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다. 약사신앙은 그야말로 전시대적인, 전국가적인 신앙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650년경을 전후하여 약사여래신앙이 전래되어 약사여래는 석가모니, 아미타, 미륵과 함께 4대 부처신앙으로 성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조각과 불화 등으로 조성되었다. 

약사여래는 약사전에 주불로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석가여래, 아미타여래와 함께 삼불(三佛)로 봉안되기도 한다. 약사전에 들어가면 중앙의 불단 위에는 약사여래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뒤에 약사여래 불화가 걸려있다. 주존인 약사불은 손에 약호(藥壺) 또는 약기(藥器)를 들고 있다. 약사여래의 성격이 중생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사여래는 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모든 약사여래가 손에 약호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약사여래가 약그릇을 들기 시작한 것은 <약사여래염송의궤>라는 경전이 8세기 초에 번역되면서 부터이다. 또한 약사여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및 12대원을 상징하는 약사십이신장(藥師十二神將)을 주요 협시로 하고 있다. 

약사여래불화의 형식은 다양하다. 약사여래를 단독상으로 묘사한 약사독존도(藥師獨尊圖), 약사여래와 좌우 협시인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그린 약사삼존도(藥師三尊圖), 약사여래와 십이신장을 그린 약사십이신장도, 약사여래와 보살 및 약사십이신장, 기타 성중을 묘사한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 유리광세계를 묘사한 약사정토변상도(藥師淨土變相圖) 등이 있다. 

약사독존도는 약사불을 단독으로 그린 것으로, 남아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고려시대의 작품인 일본 이시바지(石馬寺) 소장 약사독존도는 오른손은 가슴 부근으로 올려 첫째, 셋째 손가락을 마주잡고, 왼손에는 약호로 보이는 지물을 들고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약사불을 그렸다. 일본 만쇼지(萬松寺) 소장 약사독존도 역시 왼손에 투명하게 묘사된 발과 같은 것을 들고 6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약사불이다. 약사삼존도는 약사불과 협시보살인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그린 것이다. 고려시대의 약사삼존도(개인 소장)는 8각 대좌 위에 당당하게 앉은 약사불과 좌우에 선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그렸는데,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약기를 든 본존과 연봉 위에 일광과 월광을 둔 두 보살의 형태는 14세기 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약사십이신장도는 약사삼존과 약사십이신장을 함께 그린 것이다. 일본 치샤쿠인(智積院) 소장 약사십이신장도와 일본 개인 소장 약사십이신장도, 미국 보스턴미술관소장 약사십이신장도 등은 약호를 들고 있는 약사여래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12명의 신장이 좌우에서 시립한 형식을 취했다. 여기에 표현된 약사십이신장은 <약사경>을 신봉하는 사람을 지키는 신장으로, 십이야차신장(十二夜叉神將), 십이야차대장(十二夜叉大將)이라고도 한다. 십이신장의 명칭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현장스님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에는 궁비라·벌절라·미기라·안뎌라·알니라·산뎌라·인다라·파이라·마호라·진달라·초두라·비갈라로 기록되어 있다. 형상은 대개 칼이나 창을 든 신장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목아박물관소장의 12신장도는 12신장만을 따로 그리고 각각의 명칭을 적어놓아 12신장의 도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약사불회도는 약사전에 후불화로 봉안되는 불화로서, 약사불화 중 가장 널리 조성되었고 가장 많이 남아있다.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약사불을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그 주위에 6보살 또는 8보살, 10보살과 십대제자, 약사십이신장 등이 둘러싼 군도 형식이다. 10보살이 표현되는 경우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외에 문수보살·관음보살·대세지보살·보단화보살·무진의보살·약왕보살·약상보살·미륵보살 등 약사 팔대보살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약사정토변상도는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유리광정토를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중국 돈황석굴에는 당나라 때의 약사여래정토도가 여러 점 남아있어 약사여래의 장엄한 유리광정토세계를 잘 보여준다. 

현존하는 약사여래도 가운데에는 16세기의 작품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이 시기에 조성된 약사여래도는 대부분 왕실과 관련 있다. 그중 상당수는 문정왕후의 발원에 의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모후로, 보우대사와 함께 적극적으로 숭불정책을 시행했다. 문정왕후는 불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불상과 불화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1565년 경기도 양주 회암사의 중창을 기념하여 개최한 무차대회 때는 무려 400폭이나 되는 불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에 문정왕후의 발원에 의해 제작된 400점의 불화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 약사불을 각각 순금화 50점, 채화 50점 등 100점씩 그린 것인데, 현재는 6점만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약사여래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약사삼존도를 비롯해서 4점이 남아있으며, 금니를 사용하여 간단하게 선묘 위주로 그려낸 것으로 조선 전기 왕실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400점의 불화마다 아들인 명종대왕의 건강을 기원하고 후사에 대한 기원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때, 문정왕후가 가장 절실하게 기원한 것은 약사여래가 아니었을까. 미국 보스턴미술관소장 약사여래신장도 또한 16세기 중엽 왕실에서 발원, 제작하였다. 불보살의 둥근 얼굴과 작은 이목구비, 뾰족한 육계, 붉은 대의로 오른쪽 어깨를 넓게 감싼 착의법(着衣法), 3단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대좌 등은 1562년 보우대사(普雨大師)가 발원한 청평사 지장시왕도 및 1565년 문정왕후가 발원한 400탱과 흡사하며, 고려불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정교한 금니의 문양과 섬세한 필선에서 왕실불화로서의 품격을 엿볼 수 있다. 

약호를 든 채 인자한 모습으로 중생들을 응시하는 약사여래. 이것은 바로 우리의 근원적인 바람이 부처님으로 화현한 것이 아닐까.

[불교신문3401호/2018년6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