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틀 때가 지나도 나오지 않는 
늙은 감나무를 베어내려 하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딱 달라붙어 
전기톱 소리에도 꼼짝하지 않아 

혹, 이 개구리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아저씨를 막아섰는데. 며칠 후… 

작년 늦가을 언니는 교외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이사했다. 울안에 감이 주렁주렁 달린 집에서 사는 것을 꿈꾸던 언니는 아름드리 감나무가 벚나무, 향나무와 어우러진 마당을 보자 한눈에 반해 덜컥 계약을 하고만 것이다. 

이사한 전원주택에서 눈꽃 사진, 봄꽃 사진을 찍어 보내더니 감꽃이 아름답게 피었다며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그러면서 하마터면 그 감꽃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진지한 목소리로 전해 주었다. 

“벚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고 나무마다 새순이 돋는데 감나무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야. 늙은 감나무가 지난겨울 추위에 그만 명이 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싹이 나올 때가 지나도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늙은 감나무를 없애고 옆에 새로 한 그루 사다 심기로 한 거지. 그날 농원 아저씨를 불러 전기톱으로 감나무를 베어내려고 하는데, 줄기 움푹 파인 곳에 나무 개구리 한 마리가 딱 달라붙어 있는 거야. 옆에서 전기톱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작동 연습을 하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그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혹, 이 개구리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래서 나무 밑동에 전기톱을 갖다 대려는 아저씨를 막아섰지. 며칠 후 감나무 가지 여기저기서 잎이 돋아나고 새순도 길게 뻗어 나무가 제법 무성해지더니 작은 등처럼 노란 불을 켜놓은 감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어. 고 작은 개구리가 늙은 감나무를 살려냈어.”

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인도의 칩코 운동이 떠올랐다. 힌두어로 ‘나무를 껴안는다’라는 뜻의 ‘칩코 안돌란’은 벌목 반대 비폭력 운동의 이름이다. 1973년 3월23일 갠지스 평야지방에 위치한 테니스 라켓 제조회사에서 라켓 재료로 쓸 호두나무와 물푸레나무를 벌목하기 위해 산간마을 고페쉬왈로로 인부들을 보냈다. 이 나무들은 산림청에 의해 고페쉬왈 마을 사람들에게는 손도 못 대게하고 대기업에는 벌목을 허용하면서 사건의 불씨가 되었다. 일거리가 없는 가난한 산간지방 고페쉬왈 마을 남자들은 모두 평원지방으로 일하러 나가야 했다. 여성들만 남은 마을에서 여성이 주동이 되어 벌목대상으로 표시가 된 나무들을 감싸 안고 “나무를 베려면 나의 등에 도끼질을 하라”고 소리치며 시위를 벌여 끝내 벌목을 저지시켰다. 이를 계기로 칩코 안돌란(Chipco Andolan) 운동이 탄생했다. 

나무 개구리가 껴안아 살린 감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감도 열릴 것이다. 나무 개구리가 정말 언니에게 어떤 말을 전하려 했을까마는 감나무에 붙어있는 그 조그만 개구리를 보고 감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기다려준 언니의 행동이 무척 존경스럽다. 아무의 눈에서나 보이지 않고 눈에 보여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을 일이므로. 

나는 “모든 사물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글을 책상 앞에 지침서처럼 붙여놓고 이행하려고 애를 쓴다. 나무 개구리 이야기는 내가 지침서를 잘 이행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눈으로는 보지만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때로는 선입견으로만 보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만으로 읽어내 타자에게 상처를 준 일은 또 얼마일까. 미물이든 영장이든 모두 가치 있는 목숨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대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감나무에 감꽃이 피면 나무 개구리가 생각날 것이다. 나무 개구리는 그 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아마 감꽃을 피운 감나무를 어디선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행동을 알아준 언니에게 고마워하며 말이다. 늙은 감나무에서 잠이 깬 작은 나무 개구리를 내년 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불교신문3401호/2018년6월20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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