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 위해 나툰 아미타불

안동 연미사 마애여래입상

보물 115호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은 공식명칭보다 제비원 석불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천동에는 제비원 연미사(燕尾寺)가 있는데, 이곳에 독특한 양식의 마애불이 있다. 자연적으로 놓인 바위 위에 부처님 몸을 조각하고, 그 위에 불두를 따로 올려놓았다. 전체 높이가 12.38m에 달하는 마애대불이다.

연미사 석불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진다. 나그네들이 머물던 객사 제비원에서 일하던 연이라는 사람이 마음씀씀이가 넓고 염불수행을 열심히 했다. 이웃마을에는 연이를 좋아하던 청년이 있었다.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어 염라대왕을 만났는데 인색한 부모 밑에 자라며 생전에 지은 복이 없어 연이의 공덕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왔다. 연이에게 저승서 겪은 일을 전하며 재물로 갚으니, 연이는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을 사찰불사에 후원했다. 법당이 완공될 무렵 기와를 덮던 와공이 떨어졌는데 그 혼이 제비가 돼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연비사(燕飛寺) 연미사라 불렸다는 것이다. 연이가 세상을 떠날 때 커다란 바위가 갈라지면서 지금의 석불이 생겼다고 한다.

13m에 육박하는 마애불입상은 한 눈에 보기도 어렵다. 불상 앞에도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어 뒤로 물러날 공간이 적기 때문이다. 사찰을 내려와 공원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불두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불상은 연화대좌를 밟고 서 있다. 큰 바위 위에 불두가 올려있는데 뒷부분은 많이 깨진 상태다. 소발에 육계가 둥그렇고 높다. 머리 뒷부분은 손상이 커 상투를 틀어 얹은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목구비는 크고 뚜렷하다. 눈썹은 반달형이며 눈두덩이가 두꺼워 보이게 조각했다.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크고 뚜렷하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코가 유난히 우뚝하다. 아랫입술이 두툼하고 선명하게 조각돼 있으며 붉은 색이 칠해져 있다. 불두와 바위가 연결된 부분이 매끄럽지 않은데, 임진왜란 때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불두를 칼로 내리치면서, 바위로 피가 흘러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불두 아래 자연석 위에는 부처님의 몸이 새겨져 있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졌으며 양쪽 어깨에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U’자형 주름이 잡혀 있다. 안 쪽에는 굵은 띠가 있는 내의가 보인다. 오른쪽 가슴 아래쪽으로는 법의 자락을 한 쪽으로 모아 주름이 잘게 잡혀 있다. 허리부터 다리 아래까지 반원에 가까운 주름이 새겨져 있다.

수인은 비교적 선명하다. 오른손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중지와 약지를 구부려 엄지와 닿은 모습이다. 왼손은 가슴 위로 올렸는데, 역시 엄지와 중지, 약지가 닿은 모습이다. 아미타구품인 가운데 중품중생인을 취한 것으로 보이나, 지역에서는 미륵불로 알려져 왔다.

제비원 석불과 비슷한 양식으로 보물 93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있다. 높이 17.4m에 달하는 용미리 불상도 역시 바위 위에 불두를 나란히 올린 이불병립상이다. 논산 계룡산마애불입상도 있다. 윤천근 안동대 교수가 ‘한국의 바위에 새긴 부처 형상의 역사적 변천과 안동 이천동의 바위에 새긴 부처에 대한 미학적 고찰’ 논문에서 “인체균형이 무시되면서까지 거대화하고 추상화한다는 것은 고려 초기에 나타나는 조형상 특징”으로 정리했다. 황수영 박사는 제비원 석불을 11세기 조성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불교신문3304호/2018년6월27일자]

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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