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법은 ‘상락아정’이다

부처님 마음은 우리 모든 삶에서 
한순간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이 
단견ㆍ상견 뛰어넘는 자리에 있어

‘머물러 집착할 곳이 없는 데 머무는 마음’은 ‘머무는 곳’이 있어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중생들을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 마음자리를 부득이하게 언어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이 ‘머물 곳이 없는 것조차 없는 마음’은 발붙일 곳이 있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 텅 빈 부처님의 마음, 공성(空性)을 드러내는 말인데, 이 마음은 우리에게 늘 언제나 그대로 상주하는 것이라고 대주스님은 말합니다.

원문 번역: 문) 부처님 마음은 좌선할 때만 쓰는 것입니까, 아니면 움직일 때도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답) 부처님 마음을 쓴다고 말한 것은 오직 앉아서 쓰는 것만 말하지 않는다. 오가며 앉고 눕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부처님 마음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늘 쓰고 있는 것, 이를 일러 ‘늘 언제나 그대로 상주하는 마음’이라 한다.

강설: 부처님의 마음은 늘 고요하고 편안하며 행복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찾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 좌선 수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 마음은 조용히 앉아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부처님의 마음은 좌선할 때만 쓰는 것입니까, 아니면 움직일 때도 쓸 수 있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니,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대주스님은 부처님의 마음은 우리 생활 속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늘 언제나 그대로 상주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늘 상주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반열반경>에서 말하는 상(常)·락(樂)·아(我)·정(淨)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중도의 법을 부처님 성품이라 하니, 부처님의 성품은 상·락·아·정이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언급하는 상·락·아·정은 부처님의 마음에서 드러나는 네 가지 공덕을 말합니다. 그 공덕을 설명하자면, 상(常)은, 부처님의 마음이 불생불멸이니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도 아니어서 ‘늘 언제나 그대로 있는 마음(常住)’이라는 것입니다. 락(樂)은, 시비분별에서 오는 집착이 다 사라진 텅 빈 마음은 집착에서 따라오는 생사의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아 언제나 즐겁다는 것이니, 온갖 번뇌가 사라진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 그 자체가 영원한 즐거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我)는 불생불멸의 부처님 마음으로 ‘참나’를 삼는 것입니다. ‘참나’라고 말하면 자칫 ‘나’라는 어떤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참나’는 텅 빈 충만 그 법으로서 내 몸을 삼는다는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같은 뜻입니다. 정(淨)은, 어떤 번뇌로도 오염된 적이 없이 늘 그대로 상주하고 있는 부처님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마음은 오가며 앉고 눕는 모든 삶속에서 한순간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이 단견과 상견을 뛰어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망상으로 일으킨 시비분별에 휩싸여 집착하고 있는 중생만 모르고 있을 뿐이니, <승만경>에서도 이를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흐름이 무상하다고 집착하는 것은 단견(斷見)이니 바른 견해가 아니며, 열반이 영원하다고 집착하는 것도 상견(常見)이니 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망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견해를 내는 것인데, 망상이 사라진 여래께서는 텅 빈 각성(覺性)에서 드러나는 상·락·아·정의 네 가지 공덕을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불교신문3402호/2018년6월23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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