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지금도

물빛이다

물빛으로 어디에

어리어 있고

내가 그 물밑을 들여다보면

헌 영혼(靈魂) 하나가

가고 있다

그대의 무릎이 물에 잠긴

옆으로, 구겨진 수면(水面) 위에 나뭇잎같이

-김영태 시 ‘호수근처(湖水近處)’에서

그대는 어리어 있다. 물의 수면에도, 나의 가슴에도. 그대는 물빛으로 어리어 있다. 물 아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대의 영혼이 수면 아래를, 나의 가슴 속을 움직여가는 것이 보인다. 마치 물 위에 떠서 가는 나뭇잎같이.

김영태 시인은 이 맑고 어슴푸레하고 은은하고 미묘한 빛깔에 그리운 사람, 한 영혼의 이미지를 능하고 익숙하게 담아낸다. 그는 시 ‘녹차(綠茶)’에서 “푸른 풀로 만든/ 물 위에 한 사람이 지나가는 차(茶)/ 하얀 정강이가 잡힐 듯/ 웃고 있는/ 울고 있지만/ 지금은 없어진 꽃”이라고 썼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모하는 일은 누군가를 가슴 속에 들이고 앉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우리 내부(內部)에 있는, 우리 마음의 수면 아래에 있는 그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불교신문3410호/2018년7월21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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