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전통 잇는 새로운 양식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사진=문화재청

보물 1634호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대승사 극락보전에 삼존불로 봉안돼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14세기 고려시대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양쪽을 협시한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은 목조로 조선시대 후기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대승사 아미타불상은 높이 87.5cm, 무릎 폭 63cm 크기다. 머리는 나발로 육계가 머리 위로 완만하게 올라가 있으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모두 표현돼 있다. 이마는 넓지 않고 미간에는 백호가 있다. 눈은 반개한 상태며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있다. 양쪽 볼살을 도톰하게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양쪽 어깨는 아래쪽으로 쳐진 형태로 법의를 걸치고 있다. 옷 주름은 간소화돼 양쪽 어깨에 세로로 굵게 4~5개 정도로 표현돼 있다. 가슴과 복부 사이에는 ‘ㅅ’자 모양을 새겨 근육을 표현한 듯하다. 그 아래로 내의 자락이 보이는데, 수평의 내의자락 밑으로는 매듭이 묶여 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 중 엄지와 약지를 마주한 하품하생인이다. 오른손은 가슴께로 올려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고 있으며, 손바닥에는 우물 정(井)자로 손금이 그려져 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았는데, 오른쪽 발 아래쪽으로는 왼쪽 소매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삼각형 모양으로 표현됐다.

대승사 불상이 조명 받게 된 것은 조계종이 사찰문화재일제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X선 촬영을 진행하면서다. 불두부분에서 다라니와 향낭 등 직물류 6건26점이 수습됐다. 불상 육계부분에서 인출시기가 명확한 ‘아미타삼존다라니’가 확인됐다. ‘대덕오년오월이십일(大德五年五月二十日) 궁궐도감녹사별장정승세(宮闕都監綠事別將丁承說) 인출(印出)’이란 기록을 통해 1301년 궁궐도감 별장 정승설이 인출했음이 확인됐다. 또 1292년(충렬왕 18)에 승재색에서 개판한 ‘일체여래심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도 복장에서 수습됐다. 복장유물을 토대로 불상이 이르면 1301년 조성됐다고 추정된다.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에서 대승사 불상 복장에서 나온 다라니와 내용 및 형태가 같고 인출시기와 발원자가 동일한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다라니에 주목했다. “온양민속박물관 복장 가운데 대승사 금동아미타불좌상 복장에서 발견된 1292년 승재색에서 개판된 금강계만다라도 들어 있고 유사한 필체의 묵서와 전적들이 보인다”는 최 교수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복장물이 대승사 상에 납입됐던 복장으로 확신했다. 창녕군부인 장 씨와 법영스님 외에 광산김씨, 안동김씨, 문화유씨, 철원최씨 등 발원자들에 대해서도 “대몽항쟁 기간 이래 안동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다”며 “등신대에 가까운 금동상을 조성했다는 것은 발원자들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 유력가문이 수도 개경에서 주조하여 옮겨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개성박물관에 있던 것으로 알려진 왕실 원찰 민천사 금동아미타불좌상과 개성 상도면 출토 금동불두, 대승사 금동여래좌상을 토대로 “13세기 불상의 전통을 이은 당시 가장 일반적인 불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해 주목된다. 

[불교신문3411호/2018년7월25일자]

어현경 기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