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기와 후기양식 잇는 가교역할

 

▶ 곡성 태안사 만력9년명 범종

유려한 연당초문 부조 돋보여
과학적이고 과장된 용뉴장식 
보살입상 생략된 점도 특이

보물 1349호 곡성 태안사 만력9년명 범종은 조선 1581년에 조성됐다. 총고 101cm, 지름 66cm 크기며,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과장된 얼굴 등 해학적인 모습의 용뉴(아래사진)가 인상적이다.

태안사종은 용뉴가 머리를 앞으로 쳐든 한 마리의 단룡(單龍)이며 굴곡진 가는 목 뒤로 붙은 굵은 음통은 상부가 약간 절단된 모습이다. 용뉴는 양발을 천판에 올려놓고 4개의 발톱으로 천판을 누르고 있으며 천판 외연에는 여의두형의 입상연판문대가 돌출되었다. 이와 연결되는 상대에는 방형의 중판(重瓣) 연화문을 연속 시문하고 각 연판마다 빗살문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다시 상대 아래로 원권 안에 ‘옴’자 범자문을 연속으로 시문한 범자문대(梵字文帶)를 주회시켰다. 그 아래로는 방형의 연곽대를 두어 당초문을 시문하고 중앙에 원형 무늬를 첨가한 국화 모양의 화문 위에 약간 솟아오른 연꽃 봉우리를 9개씩 장식하였다. 특히 종신 중단쯤에는 연주문대의 원형 테두리로 두른 당좌를 4곳에 배치하였는데, 작은 자방 주위에 연꽃을 두르고 그 주위에 잎맥이 표시된 넓은 잎으로 장식되어 조선시대 범종의 당좌 중에서도 섬세함이 단연 뛰어나다. 당좌 바로 아래로 종구(鐘口)에서 한참 위로 올라온 부분에 넓은 폭을 지닌 굵은 줄로 구획을 둔 하대를 두르고 있다. 이 하대에는 연꽃과 줄기가 이어진 유려한 형태의 연당초문(蓮唐草文)을 도드라지게 부조하였다. 이러한 하대는 갑사 동종(1584년)에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신에 새겨진 명문을 다음과 같다. 

“천순원년육월일대종주위파(天順元年六月日大鍾鑄爲破) 우만력구년사월일대종개주차(又萬歷九年四月日大鍾改鑄次) 금사백여근입주(金四百余斤入鑄) 공양주 인헌(供養主 印軒) 화사 혜은(化士 惠) 시주 성곡비구(施主 性谷比丘) 시주 ▨기보체(施主 乘車記保) 대종대시주수찬비구(大鍾大施主守撰比丘) 공양대시 위황범(恭養大施 黃凡) 양주각각결원수희시주(兩主各各結願修喜施主) 동성정각(同成正覺)” 

명문에는 제작일시와 중량, 당시의 공양주, 화주 및 시주자 인명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마지막에 기록된 정각(正覺)이란 인명은 제작자로 보이는데, 속성 없이 이름만 기록한 것이나 법명에 가까운 구성으로 볼 때 17세기에 본격적인 활약을 하게 되는 승려 장인으로 추정된다. 한편 명문의 첫머리에 보이는 천순원년(天順元年, 1457)에 깨진 대종을 만력9년(萬曆九年)인 1581년에 400여 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하였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종의 제작시기를 1457년으로 볼 소지도 있지만 종의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개주 당시인 1581년에 제작된 범종으로 판단된다. 태안사종은 용뉴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조선 전기 범종과 달리 약간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과장된 얼굴 등 해학적인 모습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용뉴이 과장된 표현은 이후 조선 후기 범종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어 그러한 시작을 알려주는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종에는 종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되는 보살입상이 생략된 점도 특이하다. 승려 장인으로 보이는 제작자는 전통형을 따른 범종을 제작하면서도 다양한 양식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2002년에 보물 1349호로 지정되었다.

▶계룡산 갑사 동종

고려 후기 전통양식 계승하며
중국종 따르는 외래양식 도입
빽빽이 새긴 시주자 명단 눈길

보물 478호 계룡산 갑사 종은 조선 1584년에 조성됐다. 높이 128.5cm, 구경 91.2cm 크기로, 중국종을 따른 외래적인 요소와 전통형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계룡산 갑사 범종각에 걸려 있는 종으로 총고 128cm에 이른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종 가운데 가장 큰 크기이다. 종신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퍼진 원추형을 이루고 있음이 독특하다. 정상부에는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두 마리 쌍용으로 구성된 용뉴가 배치되었고 음통이 표현되지 않은 점은 앞 시기부터 내려온 중국 종 양식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천판 바깥쪽 상대 위로는 구름 모양의 입상연판문대가 낮게 표현되어 있어 고려 후기까지 계승된 한국 전통형 범종의 양식을 계승한 점이 파악된다. 이를 통해 갑사 동종은 중국종을 따른 외래적인 요소와 전통형도 일부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격히 구분하면 혼합형 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혼합형 종은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범종에서 가장 널리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이란 점에서 갑사 종은 이 양식의 선구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몸체로 연결되어 서로 마주 본 쌍룡의 용뉴는 과장된 얼굴과 발쪽에서 솟은 갈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모습이지만 세부의 조각은 정교한 편이다. 

상대는 2단으로 구성되어 상단에는 사각형으로 된 두 겹의 연판문과 하단에는 원권의 범자문을 둥글게 돌아가며 시문하였다. 이 범자문은 봉선사종(1469)에 처음 등장했던 6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에서 36자로 이루어진 광명진언 전체를 전부 표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대 아래의 방형 연곽대에는 가는 선으로 당초문을 시문하였으며 연곽 내부에는 연판 위에 낮게 돌출된 연꽃봉우리가 9개씩 장식되었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몸을 옆으로 돌린 채 머리를 깎은 스님 모습의 입상이 1구씩 도합 4곳에 부조되었다. 이러한 승형 입상은 늘씬한 신체에 걸쳐진 굴곡진 천의와 화려한 영략이 표현되었다. 

특히 왼손에 연꽃을 받들고 오른손으로는 석장(錫杖)을 잡은 모습으로 미루어 지장보살(地藏菩薩·사진)을 입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연곽 아래마다 1개씩 도합 4개의 당좌를 배치하였는데, 이중의 원권으로 둘러진 당좌의 아래 부분에 구름무늬를 장식하여 마치 구름이 당좌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의장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구름문 당좌는 조금 일찍 제작된 안정사종(安靜寺鐘, 1580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더욱이 안정사종의 외형과 크기(총고 115cm) 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어 이 종의 제작자는 안정사종의 양식을 충분히 섭렵하여 반영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다만 지장보살상을 새롭게 추가한 것은 갑사 종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이후 이러한 지장보살상의 모습은 다른 범종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종구에서 약간 위로 올라온 종신 하단부에는 하대를 두어 연꽃과 측면으로 표현된 연꽃을 번갈아 가며 배치한 뒤 그 사이를 굴곡진 연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한편 이 종의 연곽과 보살입상 사이의 한쪽 여백면에는 ‘시유만력십일년칠월위시북도이적○난대기인이독절하삼도사찰대종진취납(時維萬曆十一年七月爲始北道夷狄○亂大起因以獨折下三道寺刹大鐘盡取納) 국병기화포주포의시이○무인개탄왈불소대찰사조모위(國兵器火砲鑄鋪矣是以○無人皆嘆曰不小大刹寺朝暮爲) 주상축수처특유무안즉권갑신하사월일공산동계룡산갑사대종신주성철팔(主上祝壽處特有無顔卽勸甲申夏巳月日公山東鷄龍山岬寺大鐘新鑄成鐵八) 천근만세류전(千斤萬世流傳) 동철대시주(銅大施主) 시유만력십일년칠월---(時維萬曆十一年七月---)’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갑사 종의 지장보살상.

그 내용은 ‘조선 선조(宣祖) 16년(1583년)에 북도(北道)의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서 하삼도(下三道) 각 절의 종을 모아 우리나라 군사들의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곳 갑사는 국왕의 성수(聖壽)를 비는 곳인 까닭에 다음 해인 갑신년(甲申年, 1584년) 여름에 철 8000근을 들여 새로이 대종(大鐘)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각 연곽의 좌우 하단부에는 장방형의 구획을 만들어 각 분야별의 시주자 명단을 양각시켜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시주자 명단을 음각으로 빽빽이 기록한 점을 볼 수 있다. 이는 종을 제작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제작할 때 매우 많은 시주자가 동원된 조성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다른 조선시대 종에 비해 이른 시기인 1968년부터 보물 478호로 지정 관리되어 왔다. 태안사종이 새로운 전통형 종의 양식을 많이 반영하였다면 갑사 종은 중국종 양식을 따르면서도 한국 전통종의 양식이 가미되어 혼합형 범종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16세기 후반의 범종에 보이는 과도기적 양상은 이후 혼합형, 전통형이라는 조선 후기 범종으로 확립을 이루게 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불교신문3411호/2018년7월25일자]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