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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③ 공주 마곡사

기사승인 2018.07.24  14: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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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화소(南方畵所) 전통 계승한 문화중심 도량

‘춘마곡’이라는 이름답게 마곡사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마곡사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동방 제일의 복된 땅(福地)이라 일컬어지던 길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마곡사 전경. 사진제공=마곡사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마곡사 봄의 정취는 수려함을 자랑한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면 마곡사는 다양한 나무들과 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마곡사는 봄을 비롯해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곡사를 비롯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춘마곡’의 싱그러운 정취를 느끼기 위해 마곡사를 찾는 발길이 늘어날 전망이다.

제6교구본사 마곡사(주지 원경스님)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동방 제일의 복된 땅(福地)이라 일컬어지던 길지로 꼽힌다. <택리지>, <정감록> 등에서는 마곡사의 입지 조건을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사찰 이름인 마곡(麻谷)은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의 형상에 유래됐다. 보철화상 때 설법을 듣기 위해 계곡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형태가 ‘마(麻)’와 같다고 해 마곡사(麻谷寺)로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곡사 사적입안>에 따르면 마곡사는 신라시대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640년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선덕여왕의 후원으로 마곡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마곡사연기략초>에 따르면 9세기 보조선사 체칭스님에 의해 창건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창건 이후 마곡사는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의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 고려시대인 1199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왕명에 의해 마곡사를 중수했다고 하며, 12세기 말부터 15세기 후반 사이에 건립되었던 3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의 명칭을 기록하고 있어 마곡사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마곡사는 고려 후반에서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번영한 사찰이었다. 조선 전기 세조(世祖)가 마곡사에 들러 ‘만세토록 망하지 않을 땅(萬世不亡之地)’이라고 감탄하며 영산전 편액과 잡역의 부담을 면해주는 수패(手牌)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에도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곡사 역시 조선시대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전란의 화마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마곡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소실됐다. 폐허가 된 마곡사는 1650년부터 각순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각순스님은 10년 동안 마곡사 중창불사에 매진하며 마곡사의 사격을 일신하는데 기여했다.

보물 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으로 마곡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사진 이시영 충청지사장

조선시대에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16중법산(中法山) 사찰로, 일제강점기에도 30본산의 하나로, 현재는 조계종 제6교구본사로서 인근 지역의 많은 사암을 관장하는 위상을 간직하고 있다. 지역 중심 사찰답게 찬란한 문화유산도 보존하고 있다. 마곡사에는 보물 제801호 대웅보전과 보물 제802호 대광보전, 보물 제800호 영산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마곡사 해탈문 등이 가람을 구성하고 있으며, 보물 제799호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과 보물 제1260호 마곡사석가모니불괘불탱을 비롯해 보물 제269호·270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1권·6권 등의 성보를 보존하고 있다.

마곡사는 불화를 그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널리 이름을 알렸던 화소사찰(畵所寺刹)로도 유명하다. 화승(畵僧)들을 전문적으로 기르고 배출했던 마곡사는 수많은 화승들을 대대로 배출해‘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였다. 공주 계룡산 권역의 화승들은 계룡산 화파라고도 불렀는데 계룡사 화파의 중심이 바로 마곡사였다.

마곡사는 남양주 흥국사(경산화소), 금강산 유점사(북방화소)와 더불어 조선후기를 대표하던 화소사찰이었다. 남방화소는 19세기 말 약효스님으로부터 근대의 문성스님, 일섭스님을 거쳐 현대 석정스님에 이르는 계보로 이어져 조선불화사의 큰 맥을 잇고 있다. 

“조선 말기 마곡사에 상주한 스님이 300여 명에 이를 무렵 불화를 배우는 스님만도 80여명에 이르렀다”는 정연스님 불모비의 기록에서 수많은 화승들을 배출했던 마곡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마곡사를 통해 배출된 화승들은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파괴된 사찰을 정비하기 위해 재건불사를 수행할 전문 인력으로 활약했다.

마곡사는 남방화소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금어원(金魚院)’ 복원을 추진하고 았다. 전국 사찰의 불상, 탱화, 단청의 제작해 불교예술을 발전시켜 온 전통을 계승해 전통 불교미술을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마곡사 경내에 조성된 백범당. 사진 이시영 충청지사장

마곡사에서 만나는 백범의 발자취

백범당, 백범명상길 등 조성…추모다례도 봉행

제6교구본사 마곡사 마당 한 쪽에는 ‘백범당(白凡堂)’이 자리하고 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곡사에서 복원한 건물이다. 백범당 옆으로는 해방 이후 1946년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마곡사를 찾아 기념식수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백범 선생이 마곡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898년이다.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 혐의로 인천교도소에 투옥된 선생은 교도소를 탈옥해 사찰에 은신했다. 여주 신륵사와 하동 쌍계사 칠불암 등을 전전하다가 공주 갑사와 동학사를 거쳐 마곡사에 도착했다.

마곡사에서 선생은 하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선생의 저서 <백범일지>에는 출가 당시 착잡했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사제 호덕삼이 머리털을 깎는 칼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의 독립정신과 불교와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백범 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있다. 백범 명상길은 백범 선생 기념관과 삭발터 등 선생을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됐다. 이와 함께 마곡사는 매년 6월 백범 기일에 맞춰 추모 다례를 봉행하고 있다.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

“자연·문화·인간이 함께 하는 사찰로 만들 것”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 인터뷰

“마곡사 등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는 자연과 공생하며 수행환경을 지켜온 한국불교와 스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사찰은 자연과 어우러진 수행공간으로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힐링 공간을 제공합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앞으로 사찰을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보존해 나갈 것입니다. 자연과 문화, 인간이 어우러진 공동체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난 7월20일 만난 제6교구본사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사진>은 세계유산 등재의 의미와 계획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원경스님은 “사찰과 자연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라며 “문화유산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질 때 의미와 가치가 크다.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스님이 더욱 중점을 두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원경스님은 앞으로 마곡사를 문화유산만이 아닌 주변 자연 경관과 역사, 문화가 함께 녹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경스님이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금어원(金魚院)’ 복원 사업이다. 마곡사가 수많은 화승들을 대대로 배출했던 남방화소(南方畵所)의 중심이었던 만큼 금어원 복원을 통해 마곡사를 전통불교미술을 계승·발전시키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마곡사의 수려한 자연 환경, 문화유산과 더불어 금어원을 통해 불교미술의 대중화와 세계화, 역사와 문화를 담은 문화콘텐츠로 활용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원경스님은 “자연과 문화,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 될 때 마곡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남방화소의 명맥을 유지하고 불교미술의 전통기법을 살려 보존할 수 있도록 금어원 복원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스님은 마곡사를 찾는 불자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원경스님은 “시대가 빠르게 변화할수록 우리의 것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다.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스쳐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전통과 문화유산은 국민들이 함께 지켜주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마곡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소중한 문화재라는 점을 인식해 내방객들도 기본적인 사찰 예절을 지키고 문화유산을 함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재권 공주시청 미래도시사업단장

기고 / 마곡사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 방안
이재권 공주시청 미래도시사업단장

마곡사는 지난 6월30일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 7곳 중 한곳으로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 안동 봉정사, 전남 순천 선암사와 더불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마곡사는 제6교구본사로, 640년(백제무왕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 1172년(고려 명종2년) 보조국사가 중수했으며,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등 보물로 지정된 등록문화재가 많으며, 이외에도 비 등록 문화재가 상당히 많이 있다. 마곡사에 국보가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나 국보급 문화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오층석탑(보물 799호)의 제일 위에 세워진 금동보탑(1.8m)은 형태까지 잘 유지돼 있지만, 야외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훼손될 우려가 있는 만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1년 4월8일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전통사찰로 세계유산등재 추진을 시작해 2017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를 신청하고. 지난 6월 30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정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의 등재를 결정하면서 추가로 4가지 사항을 권고했다. 등재 이후 증가할 관광객에 대한 대안 마련,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산사 내 건물 등에 대한 관리방안 마련, 산사의 종합정비계획 마련, 산사 내 건물 신축 시 세계유산센터와 사전에 협의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공주시는 앞으로 이러한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해 마곡사의 세계유산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관리와 관광객의 안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또 마곡사의 등재를 기념하여 각종 행사 및 홍보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마곡사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공주에는 세계유산인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마곡사와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인 신미통신일록(충남유형문화재 222호)이 있으며 세계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세계유산의 훼손을 막고 원 상태를 보존과 관광객 증가에 따른 방안을 찾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으로 구성된 공주세계유산센터를 설치할 필요성이 있기에 오는 9월 제64회 백제문화제 때 세계유산문화관을 설치해 지역의 세계유산을 널리 홍보하려고 노력중이다. 더불어 계룡산을 자연유산인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노력도 따라야 할 것이며 이러한 노력이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갑사, 신원사, 동학사, 상신리 등을 정비해 지역발전과 시민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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