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쉬지 않는 원각사 무료급식소

지난 23일 원각사 무료급식소, 폭염 속에서도 봉사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배식에 나섰다. 

탑골공원 이용자 어르신에게
비빔밥 메밀국수 등 점심 제공
하루평균 150~200명 이용하며
허기진 배 든든히 채우는 역할
 

“번호표 받으신 분 먼저 올라오세요. 오늘은 어째 어제보다 더 더운 것 같대~. 아이고, 이 땀 좀 봐. 밖에 서서 기다리면 햇빛 때문에 따가우니 이쪽 그늘로 들어와 기다리세요. 자~ 여기 다섯분 올라갑니다~. 아이고 잠시만요. 어르신은 조금만 기다렸다 올라갑시다.”

1907년 기상청 관측 이후 24년 만에 역대 서울 최고 기온인 38도를 기록한 지난 7월23일 종로구, 탑골공원 뒷길에 자리한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이 폭염 따윈 상관없다는 듯 여지없이 장사진을 이뤘다. 열기를 품은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골목길 사이로 사람들 그림자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줄이 길게 늘어서길 한 차례. 행렬이 생기기 시작하자 2년 전부터 무료급식소 반장을 맡아온 김청호 거사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배식이 진행되는 1시간30분여 시간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며 어르신을 안내하느라 무료급식소 반장 김청호 거사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다 드실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오늘 메뉴는 비빔밥과 오이냉국입니다. 밥은 더 달라고 하시면 얼마든지 드려요~.”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 급식소가 자리한 2층과 대기자들이 몰린 1층을 오르내리며 순번 정리를 하는 김청호 거사 등이 금세 땀으로 젖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한 점 없는 좁디좁은 계단과 야외에서 끊임없이 어르신을 부르며 꼼꼼히 인원 체크를 하는 김 거사 뒤로 “거사님~ 밥이 모잘라요”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 더위’는 에어컨이 켜진 실내도 마찬가지. 매월 넷째 주 월요일마다 무료급식소 배식 봉사를 맡아온 서울 봉은사 신도 복연회 회원 8명 얼굴이 얼마 지나지 않아 벌겋게 상기됐다. 60인분 압력솥을 3번째 열어 솥에 담긴 밥을 그릇마다 퍼 담던 김연희(가명)씨 얼굴에 뜨거운 김이 고스란히 얹히자 “더워서 어째”하는 주위 염려가 쏟아졌다. “보습이라 생각하면 되지요~. 물광 피부 못 들어보셨어요?”하는 김 씨 능청에 힘겨운 가운데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밥 좀 더 주세요” “국이 모잘라요” “호박 나물 좀 더 넣어주지” 시시때때로 들리는 부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밀려드는 설거지에 잠시도 허리 한번 펼 새 없는 건 다른 봉사자들도 마찬가지. 몰려드는 인파로 손이 고추장 범벅이 된 줄도 모르고 배식봉사를 하던 봉사자 신은영 씨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밥을 적게 덜어먹는 어르신에게 “조금 더 드셔야 한다”며 주의도 잊지 않았다.

이날 자원봉사를 맡은 복연회 회원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위생모와 마스크, 앞치마까지 겹겹이 껴입었다. 복장은 물론 위생도 철저.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도 어르신들이 식사한 수저와 젓가락 등 식기를 뜨거운 물에 팔팔 삶기까지 하는 회원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1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여는 원각사 무료급식소 운영이 가능한 건 이 복연회를 비롯한 사찰 신도회와 병원과 법원 등에서 자원한 30여 곳 봉사팀 덕분. 배식시간은 오전11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1시간에 불과하지만 봉사자들 평균 봉사 시간은 하루 4시간 이상, 배식준비에서부터 식사 후 남은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한 뒤 자리를 떠야하기 때문이다.

2015년 재정난으로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던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다시 재출발을 할 수 있었던 건, 서울 심곡암 주지 원경스님과 종무소 직원, 봉사자들 원력 때문이다. 1994년 문을 열어 20년 동안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해오던 무료급식소 사정을 전해들은 스님과 직원들은 공양주 보살 하나 없이 생활하며 직접 새벽마다 음식을 만들고 배식 봉사를 해왔다. 고영배 원각사 사무국장은 “아침도 거르고 저녁까지 굶는 노인분들에게는 원각사에서 먹는 점심이 하루 단 한번 곡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끼가 되기도 한다”며 “아직도 공간임대료와 재료비 조달에 어려움이 있지만 어르신들이 있는 한 급식소 운영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여는 원각사 무료급식소 이용자는 하루 평균 150~200명, 이날도 탑골공원을 이용하던 어르신 167명이 나물비빔밥과 오이냉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전쟁터 같았던 배식 봉사가 끝난 뒤 그제서야 냉수 한 모금 들이키는 봉사자들에게 문 밖을 나서던 어르신 한 분이 합장 인사하며 한마디 건넸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짜다 달다 하는 사람들 소리 신경쓰지 마세요. 이 한 끼 없으면 큰일 나는 나같은 사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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