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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기획] 매일 새벽 예불 올리고 출근해보니…

기사승인 2018.08.14  17: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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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라면 108배 쯤이야 눈 감고도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경> 쯤이야 자다가도 술술 외울 것 같지만 글쎄다. 부처님 제자라면 탐진치(貪瞋癡)를 경계해야 할진데, 경계는 커녕 끝을 모르는 욕심과 하루에도 수십번 솟구치는 분노의 덩어리에서 헤매고 있으니 스스로 참으로 애석하다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10년 동안 경전 10만독은 기본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108배, 1000배, 3000배, 철야로 1만배 올리길 예사로 아는 고수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일상 속 참다운 신행 불자로 거듭나보기로 했다. 독경, 사경, 명상은 물론 일종식 수행, ‘환경 존중 마음을 담아 일회용 쓰지 않기’ 등 일정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을 닦을 기자의  '해보니' 체험기를 10회 걸쳐 소개한다. 신행 생활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시도조차 두려운 초심자, 오전9시 출근해 오후6시 퇴근하는 ‘나인투식스’ 직장인이라면 참고해도 좋겠다.

 

도심 사찰 새벽 예불은 현대인 일상에 맞춰 오전5시에 시작하기도 한다. 지난 8일 일주문에 들어서기 직전 휴대폰 시계가 4시59분을 가리키고 있다.

새벽 예불

새벽 예불은 모든 수행의 기본이다. 불법을 따르고 깨달음을 얻어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서원을 날마다 다시 세우는 굳건한 신앙 고백이자, 새 날마다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다해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그 자체는 하나의 수행이기도 하다. 사찰 풍속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변해왔지만 오늘날 각 사찰에서 새벽 예불만은 필수로 지키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새벽 예불을 통해 초발심(初發心)을 점검하고 깨달음을 향한 불퇴전의 의지를 다지고자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 간 도심 속 사찰에서 오전5시 시작되는 새벽 예불에 참석했다. 평일 주말 구분하지 않고, 회식이나 출장을 핑계로 두지 않고 하루도 빠지지 않기를 목표로 정했다.

월·화, 헬게이트 열렸다

2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예불에 늦으면 안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척이다 눈을 뜨니 ‘맙소사’, 시계가 오전4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찰까진 버스로 15분, 걸으면 30분이 걸린다.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가 택시부터 잡았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사찰로 내리 달렸다. 다행히 종성이 울릴 때쯤 법당에 들어설 수 있었으나 후덥지근한 날씨에 새벽부터 오르막길을 달린 덕에 온 몸은 땀범벅이 됐다. 채 매만지지 못한 머리와 옷매무새 덕에 귀신 몰골로 예불을 올렸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멍을 때리며 <반야심경>을 외고 있자니 신도 한 분이 다가와 신중단을 향해 몸을 돌려줬다. 사홍서원까지 외니 1시간30분이 흘렀다. 몽롱한 정신으로 일주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헬게이트 열렸구나.”

이튿날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썸머타임이라 해도 새벽은 새벽이다. 날은 여전히 어둡고 적막만 가득한 도심 사찰에도 해는 늦게 뜬다. 1시간30분이나 예불을 올리고 나왔는데도 오전7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버스에 앉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지만 콩나물 시루 같은 혼잡함은 피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몸이 피곤하니 종일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민감하게 굴었다. ‘아침마다 ‘참회게’를 외면 뭐하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수·목,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삼일째가 되니 새벽 기상도 제법 가뿐해졌다. 법당에 미리 도착해 부전 스님이 도량석을 하는 동안 잠시 명상을 하는 여유도 생겼다. 귀에 들리는 우렁찬 매미소리, 코끝에서 느껴지는 습한 바람, 눈은 감았지만 새삼스레 만물이 온 몸에 하나하나 들어와 박혔다. 날은 여전히 더워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찝찝함이야 개의치 않게 됐다.

한결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신도들 덕이다. 첫날 2명에 불과했던 참석자가 넷째날은 6명이나 됐다. 사람이 드나드는 인기척으로 법당 문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방해 보다 힘이 됐다. 쭈뼛쭈뼛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하는데 풍부한 성량이 더해지니 리듬도 절로 타졌다. “맑디 맑은 신심, 때묻지 않은 청정수로 기필코 부처님같이 생사 없는 감로의 몸을 이루겠습니다”는 다게 의미를 곱씹으며 일주문을 돌아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새벽 예불 참석 1등은 늘 부전 스님이다. 대웅전 앞 놓인 스님 신발이 눈에 띈다.

금, 지정석이 생겼다

대웅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늘 앉던 자리에 좌복이 깔려 있었다. 어제 베지밀을 좌복 옆에 곱게 두고 가며 등을 두드렸던 보살님이 미리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 분명했다. 감사의 뜻으로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혼자 보다 둘이 낫고 둘 보단 셋이 낫다’는 의미가 새삼 다가왔다. 여럿이서 외니 진언도 술술 읽히고 도반을 봐서라도 ‘예불 빠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을 나설 때는 누군가에 의해 가지런히 정리정돈 된 신발 때문에 '부처님 제자들은 마음이 참 예쁘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불제자로 매일 새 날을 맞는 기분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토·일 습관이 무섭다

택시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다행히 늦진 않았다. 불금을 보낸 터라 새벽1시에 잠이 들었음에도 4시가 되니 습관처럼 눈이 떠졌다. 애국가가 흐르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버스에 몸을 싣고 어둑어둑한 일주문을 찾아 골목을 걷는 시간도 버겁지 않고 익숙해 졌다. 절을 할 때는 온 몸을 낮추며 ‘하심’ ‘하심’을 스스로 중얼거리게 됐고, 사홍서원까지 외고 일주문을 나올 때는 남들 다 자는 시간에 혼자 대단한 일을 해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을 주말에는 왠지 시간을 번 것 같은 느낌도 났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법이다.

날마다 새 날

출퇴근 하는 직장인도 도심 속 사찰에서 충분히 새벽 예불이 가능하다는 추측에서 시작했지만 타고난 아침형 인간이 아닌 이상 매일 새벽 예불에 참석하긴 쉽진 않다. ‘운동도 할 겸 걸어 가야지’라는 결심은 뒷전이고 버스, 택시를 퍽 열심히도 탔다. 집 가까운 곳에 절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통탄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그럼에도 ‘꾸준히’ 하니 날마다 오롯이 새 날을 맞을 수 있었다. 다만 걸어서 20분 이내 사찰이 없다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새벽 예불을 하고 출근을 한다 했을 때 하나같이 의아하단 반응이었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원철스님은 “신행과 수행에는 정해진 바가 없다”며 “새벽 예불이라는 틀에 구애받기 보다 시간이 허락 할 때 사찰을 찾아 삼배만 올려도 좋고 집에서라도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면 된다”고 조언했다. 

스님 말씀처럼 신행에는 ‘이것이 옳다’ 정해진 방법이 따로 없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히 수행해 나가면 될 일이다. 새벽 예불을 올리면 만원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넉넉한 좌석을 즐기며 출근할 수 있고 아침 여유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덤이 생긴다. 일상 속에서 수행의 힘으로 날마다 새 날을 맞는 기쁨을 맛보길 바란다.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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