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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궁 만월대(滿月臺)에 절이 있었다

기사승인 2018.09.18  10: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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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이 세운 내제석원 존재

후삼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개국한 고려는 왕궁에 내제석원 등 사찰을 두었다. 사진은 고려 멸망후 600여 년간 방치되온 만월대 모습. 출처=문화재청

고려의 정신적 귀의처 역할
만월대 발굴서 확인 가능성

개성 송악산 기슭에 자리한 만월대(滿月臺) 발굴 조사및 유적 보존사업 시행을 앞두고 고려 왕궁 사찰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지난 6일 개성에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9월27일부터 3개월간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와 유적 보존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착수식은 10월2일 남북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만월대는 태조 왕건이후 400년간 고려 정궁(正宮)의 역할을 수행한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후삼국으로 분열된 민족을 통합하고 건국한 고려는 불교를 정신적 귀의처로 삼아, 만월대 안에 내제석원(內帝釋院)과 법운사(法雲寺) 등 사찰을 건립했다. 향후 만월대 발굴 조사 과정에서 이들 사찰에 대한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제석원은 태조 2년(991) 왕건이 철원에서 개경(개성)으로 수도를 옮긴 직후 창건한 10대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문종 10년(1056)에는 임금이 내제석원에서 해린(海麟) 스님을 왕사(王師)로 삼았다. 문종 18년(1064)과 의종 1년(1147)에도 내제석원 관련 기록이 보인다.

조선 문종(文宗) 때 완성한 고려의 편년사(編年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도 내제석원 존재 사실이 분명히 나온다. 1126년 이자겸의 난이 발생했을 당시 인종이 피신하면서 경녕전(景靈殿)에 이르러 내시 백사청(白思淸)에게 선왕들의 영정을 내제석원 ‘마른 우물(眢井, 완정)’ 안에 넣어 두도록 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모두 불탔을 때 내제석원도 회랑 일부만 남긴 채 사라졌다. 내재석원은 그 뒤에 중창되었다 조선 태조 3년(1394) 무렵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만월대에 내제석원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내제석원에 머물던 한 스님의 석관명(石棺銘)이 있다. 석관에 새진 일종의 묘비명이다. ‘승정경렴석관명(僧正景廉石棺銘)’이 그것이다. 고려 숙종 7년(1102) 입적한 경렴스님으로 부도에 모시는 대신 석관을 사용한 것은 드문 사례다. 왕사에 버금가는 승정이란 직책을 갖고 내제석원에 주석했던 스님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 ‘송도3절’로 꼽힌 황진이(黃眞伊)가 황폐해진 만월대를 찾아 지은 시가 전한다. 황진이는 “저녁 해가 무성한 나무에 비쳐 서럽다”면서 “봄이 왔지만 가을 같다”고 ‘만월대의 설움’을 담았다.

만월대는 가수 남인수의 ‘황성옛터’의 가사에도 등장한다. 황성(皇城)이 만월대이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1928년 작사가 왕평(본명 이응호)과 작곡가 전수린(개성 출신)이 만월대에 올라 망국의 비애를 노래했다. 1932년 이애리수가 ‘황성의 적(跡)’이란 제목으로 발표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인수가 다시 불렀다.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을 재개하는 상황에서 만월대에 있었던 사찰에 대한 조사도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실시하는 8차 작업이 마무리 된 후 ‘중심 건축군(群)’ 발굴이 진행될 때 사찰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만월대는 화려했던 고려문화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면서 “그동안 중단되었던 문화재 분야의 남북교류 협력을 재개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총무원 문화부장 종민스님은 “만월대는 불교를 주요 이념으로 내세운 고려의 왕궁으로 민족사적 의미가 큰 공간”이라면서 “왕궁 내에 있던 내제석원과 법운사 등 사찰 발굴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부장 종민스님은 “남북 교류가 진전이 있는 상황에서 만월대와 왕궁에 있던 사찰의 발굴은 선조들의 통합 정신을 확인할 수는 좋은 기회”라면서 “종단 차원에서도 만월대 발굴에 관심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성수 기자

“안전 보존 활용하겠다” 

정재숙 문화재청장 취임 후 첫 간담회 

지난 11일 취임 후 첫 번째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정재숙 문화재청장(왼쪽 끝)이 기자들과 덕수궁을 돌아보고 있다.

“문화유산은 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습니다. 그 다음은 보존이 생명입니다.” 첫 언론인 출신의 정재숙 신임 문화재청장이 기관 운영 방침을 이같이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11일 서울 덕수궁과 인근 식당에서 취임 후 첫 번째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정재숙 청장은 “선조들이 남겨준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존하는데 역량을 쏟겠다”고 강조한 뒤 “문화유산 콘텐츠화(化)’를 추진해 시민들이 친근하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9월27일부터 남북 공동으로 고려 왕궁인 개성 만월대 발굴을 시작하겠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지난 2015년 7차까지 진행된 후 중단된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와 더불어 유적 보존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제8차 공동발굴지역은 훼손이 심한 만월대 중심 건축군(群) 서편 축대 부분이다. 발굴 후에는 남북 전문가들이 보존 정비 방안을 논의해 축대 부분 정비까지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날 정재숙 청장은 “문화재에는 휴전선이 없다. 고구려와 고려는 휴전선이 없다”면서 “오랜 세월 끊어져 있지만 남북이 문화재로 손잡고 뜨겁게 나가도록 하겠다”고 남북 교류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2019년도 문화재청 정부예산안 평성 내용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올해보다 8.4%(67억 원) 늘어난 8693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문화재 보존 전승 보수 예산이 4442억으로 가장 많고, 궁능 유적관리 772억 원, 문화재활용 504억원, 문화재 안전관리 377억원, 문화재 교류협력 97억원 등이다. 국가지정, 시도지정 문화재 안내판 정비와 점검, 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 등의 예산도 편성했다. 하지만 2019년 정부 총재정 407조5000억 원 가운데 문화재청 예산은 0.18%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0.26%를 밑도는 상황이다.

정재숙 청장은 “기자 정신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릴 것”이라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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