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하나 들릴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이사부길 조각공원에서 바라본 삼척바다. 초록 바다와 파란 하늘이 만난다.

동안거사 이승휴는 1280년(충렬왕 6년) 감찰사 관원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를 간언하였다가 파직되자 삼척으로 돌아왔다. 두타산 자락에 있는 옛 절터에 작은 전각을 짓고 당호를 용안당이라고 지었다. 용안당의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심용슬지역안(審容膝之易安)’이란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무릎 하나 들일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라는 의미이다. 동안거사는 두타산 다른 골짜기에 위치한 삼화사에서 불서를 빌려와 독파하기 10년, 1289년 당호를 간장사(看藏寺) 바꾸고 본인이 소유하던 토지도 절에 희사하였다. 동안거사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역사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집필하고 <내전록(內典錄)>를 저술한다. 그 간장사가 지금의 천은사이다. 

동안거사가 ‘제왕운기’ 집필한 천은사

천은사 전경.

하늘을 덮는 두타산의 원시림과 맑은 계곡 그리고 푸른 동해바다를 떠올리며 지난 1일 삼척 천은사로 향했다. 며칠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공기가 맑았다. 시원한 바다를 보며 달리다 천은사로 접근 할수록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니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쭉쭉 솟아오른 전나무들과 거대한 느티나무들 그리고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숲의 향기가 코끝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또한 맑은 계곡은 시원한 소리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영월루(映月樓)와 어울린다. 영월루를 통과하니 오층석탑과 대웅보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배를 하고 목조아미타삼존불을 보니 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명칭이 한글로 적혀 있다. 작은 친절이지만 삼존불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입구 숲 속에서 쉴수 있는 은행나무 의자, 예쁘게 단장하고 있는 수곽, 물통에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안내판 문구 등 세심하게 방문객을 배려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천은사는 신라 경덕왕 17년(738년) 인도에서 온 세명의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는 ‘백련대’로 시작해서 흥덕왕 4년(829년)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조선 선조 31년(1598년) 청허당 서산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흑악사’ 라 하였고 다시 고종36년(1899년)에 이성계 4대조의 묘인 목조릉과 5대조비인 준경묘와 영경묘를 미로면에 세우면서,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고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천은사(天恩寺)’라 불렀다. 안타깝게도 1948년 화마로 폐허가 되었다가 1983년 다시 중건됐다.

천은사는 지금은 삼척을 대표하는 명승지이지만 70년대 쌍용양회가 두타산 서편 삼화사터에 들어설 때 천은사도 매각 권유를 받았지만 이승휴의 유적지를 지켜야 한다며 관의 갖은 압력을 견뎌냈다고 한다. 

천은사 입구 계곡에 누군가 작은 돌탑을 쌓아 놓았다.

발길을 이사부길의 시작점인 삼척해수욕장으로 돌린다. 삼척시는 지난 2월 새천년해안길 명칭 공모전을 통해 삼척해수욕장~삼척항을 잇는 해안길 명칭으로 ‘이사부길’을 선정했다. 

이사부는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등장하는 ‘신라장군’이다. 신라가 고대국가였던 실직국이 있던 삼척에 22대 지증왕 6년(505년) 실직주(州)를 설치하고 첫 군주로 파견한 인물이 김이사부이다. 이사부는 17대 내물왕의 4대 손(孫)으로 진흥왕 때에는 병부령으로서 중앙정치와 군사의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사부의 많은 활약 가운데 유명한 것이 우산국(于山國) 정벌이다. 당시 부족국가였던 우산국에는 우혜라는 왕이 있었는데 대마도에서 풍이라는 미녀를 데리고 와 왕후로 봉한 다음부터 사랑놀음에 빠진다. 왕후의 사치를 위해 신라 인근까지 와서 노략질을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이사부는 512년 불을 뿜는 대형 나무사자를 앞세우는 전략으로 우산국을 정벌하고 실직주의 관할영지로 포함시킨다. 이로 인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국토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천은사 입구의 거대한 느티나무들.

‘독도는 우리땅’ 이사부 길(路)

이사부길을 따라 가다 보니 조각공원이 나온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삼척항에서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임원항이 나온다. 임원항에는 신라 향가인 헌화가를 배경으로 조성된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도중 바닷가에 당도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에는 돌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서 그 높이가 천장이나 되고 그 위에 탐스런 진달래꽃이 흠뻑 피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꽃을 보고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을 꺾어달라고 요구하니 다들 사람이 올라 갈 곳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암소를 몰고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노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절벽위의 꽃을 꺾어주면서 노래를 지어 바쳤는데 그 노래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신라 향가 중 하나인 ‘헌화가’이다. 

천은사 입구에 있는 동안거사 이승휴의 상징 조형물.

“자줏빛 바윗가에 /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노인이 올라갔던 절벽은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다.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남화산의 높이가 140.1m만큼 정상에 오르면 삼척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너무 예뻐서 바다 용궁까지 납치되었던 수로 부인은 용을 타고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공원 정상에 가면 거대한 용을 타고 있는 10m가 넘는 수로부인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신라의 수로부인과 이사부 장군 그리고 불법에 심취했던 고려의 동안거사까지 여름 끝자락 삼척에서 바다와 함께 만났다.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헌화공원에는 10m가 넘는 거대한 수로부인상이 조성되어 있다.

[불교신문3425호/2018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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