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산 의지하듯 수행자는 수행에 의지”

원로의원 원행스님은 월정사 조실이었던 탄허스님이 주석했던 방산굴로 기자를 안내하며 올곧은 수행정신을 강조했다.

최근 국민 눈높이 맞지 않는
종단사태 발생해
참담하고 부끄러워 ‘참회’

가정과 직장 찾아가며
포교하는데 적극적이어야
국민과 중생들에게 보탬 되고
이익 되도록 원력세우고 정진

오대산 월정사로 향한 지난 5일 수도권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강원도 원주를 지나고 평창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기운이 가시더니 월정사가 위치한 진부면 오대산에 들어오니 서늘해진다. 자동차 수은주는 영상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8시가 넘은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올해 겪은 폭염이 가고 있다는 걸 체온으로 느낀 월정사행이었다. 사찰 초입 롤 스크린에는 오대산 두로령은 영상 12도라는 글귀가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도 가는 길목에서 오대산을 지키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높고 파란 하늘만큼 가을이 오대산에 내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 기별을 넣은 터라 어른스님은 종무소 접견실에서 아침부터 기다린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20여년 전 구룡사 주지로 계시면서 원주불교대학을 운영하며 지역포교에 앞장서던 시절 만났던 젊은 모습에 비해 노스님의 면모가 묻어났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예전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매사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수행자의 면모다. 뜨거운 물을 방금 부어 꽃잎이 피어오르는 구절초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오대산 월정사의 어른으로 산을 지키고 있는 근황을 물었다.

“2018년 무술년은 600년 만에 오는 ‘황금 개띠의 해’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원만하게 치렀고 기후변화에 따라 폭염과 폭우와 폭풍을 겪었어요. 또 최근 종단사태(총무원장 퇴진)를 겪으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수행해 온 것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러워 참회하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종단이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출가와 재가는 어떻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초대종정 한암 대종사께서는 왜정시대에 불교가 억압되고 또한 왜곡되고 국가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등 당시의 불교계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일본의 불교말살 정책에 대하여 항거하거나 포교하고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상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강남 봉은사 조실 소임의 직책과 상궁들의 공양을 거절하시고 오대산 상원사에 바루와 가사와 장삼. 주장자만을 들고 ‘영위천고장종학(寧爲千古藏踪鶴) 불학삼춘교어앵(不學三春巧語鶯)-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시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평생동안 산문 동구 밖을 나가지 않으시고 오직 수행과 포교와 후학을 가르치는데 정진 하셨습니다. 36년 동안의 식민지 사회에서 한국불교를 구하신 종정스님입니다. 이러한 사상과 수행을 표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계가 처하고 있는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가 출가인구의 감소다. 어른스님 출가시절과는 50여년의 차이가 있겠지만 과거를 반추해 보면 현재의 문제가 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인구감소와 종교인구 및 수행자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출가자는 더욱 줄어들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월정사에서는 단기출가학교와 템플스테이와 동계 및 하계 수련대회 등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월정사는 명상센터를 준공하고 21세기 새로운 불교의 페러다임을 모색하고 있어요.”

스님의 은사스님인 희찬스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소납의 은사이신 월정사 중창주 만화 희찬스님은 초대종정 한암스님의 법을 이었어요. 한암-탄허-희찬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입니다. 1950년 6.25사변으로 아군에 의하여 전소된 월정사를 복원하는데 갖은 고통과 인내속에서 오늘의 월정사가 있게 하였으며, 인욕보살이시며, 오대산 월정사의 정신과 사상의 표본과 성인이셨습니다. 소납도 입산해서 은사스님을 도우며 조실이셨던 탄허스님을 시봉하며 많은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얻기도 했어요.”

원행스님은 월정사 조실이었던 탄허스님과 은사스님이 열반하자 49재를 모신 다음 제2의 출가의 길을 모색하며 해인사에 머물기도 했고, 탄허스님을 현몽하고 대전 자광사로 가서 중창불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은 월정사 본사로 돌아와 소임을 보면서 말사 주지를 겸하며 포교에 앞장서 왔다.

“동해 삼화사, 원주 구룡사, 대전 자광사에서 포교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첫번째 찾아가는 불교, 국민의 가정과 직장에 찾아가 불교를 포교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보탬을 주는 불교여야 합니다. 국민과 중생들에게 보탬이 되고 이익에 되겠금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편에 서서 원력을 세워서 포교해야 합니다. 세 번째 수행하는 불교로 우리 스님들은 수행을 중심으로 포교하여야 합니다. 1600년 전통의 한국불교의 수행 패턴과 금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산지승원으로 지정을 받으며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항상 수행의 근간을 두면서 흐트러짐 없는 위의와 자세와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감흥과 감동을 느끼게 하여야 합니다. 옛말에 ‘사호고산(似虎靠山)’이란 말이 있는데 ‘호랑이가 산을 의지하듯 수행자는 수행에 의지하여야 한다’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원행스님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불교가 탄압받은 10.27 법난의 직접적인 피해자 스님이다. 아픈 과거지만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 위해 어떤 교훈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다.

“10.27 불교법난의 현장에서 고문과 고초를 받고 지금도 다리의 통증과 아픔을 느끼고 있는데 이 사건도 국가의 책임도 있지만 불교내부의 수행정신의 자성도 필요합니다. 한국사회는 국가권력이나 다른 정치 집단이 불교와 종교를 또한 수행자를 국가권력의 입맛에 맞게 구속하고 집행하는데 익숙합니다. 10.27 불교법난과 당시의 삼청교육대도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들이 불교와 스님을 정치도구화 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평생 수행자로 살아오시면서 어떤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계시는도 궁금했다. “초대종정 한암 큰스님께서 왜정시대에 하시는 말씀이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라는 말씀을 하시며 경책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당나귀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그 시대에 깨어있고 각성하여 나태하고 개으르지 말고 근면 성실하라는 말이었어요.”

연세가 있으신데도 불자들과 SNS로 소통하는 스님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현대불교는 다양하고 다변화된 소통과 공감과 동행과 동참으로 포교되어야 하며 항상 소통하여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SNS미디어 각종 신문 방송 매체들과 시민사회단체 지도자와 교류하고 소통하며 다른종교 지도자들과도 같이 소통하여야 하지요.”

마지막으로 불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자양분이 될 가르침 한마디를 부탁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큰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무술년 정초부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싹튼 평화의 씨앗이 판문점과 싱가포르를 거쳐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에 감돌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아마겟돈 시대와 4차 산업의 변곡점에 와 있으며 한반도와 한국국민이 평창정신의 계승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5P 정신이 필요합니다. 즉 평창(Pyeongchang)올림픽 정신, 판문점(Panmunjeom) 선언의 계승, 서민(People)을 위하는 정신, 평화정신(Peace), 번영정신(Prosperity)을 우리 국민은 잘 계승해야 합니다.”

방산굴 앞에 선 원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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