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기자 ‘해보니’ 체험기<4>

지난 7일 조계총림 송광사 공양간에서 오전4시30분부터 오후6시30분까지 ‘일일 공양주 보살’로 일했다. 정식 출퇴근 외 새벽3시 예불부터 따지면 도합 15시간 이상, 숨 쉴 틈 없이 몰아친 1년 같은 하루였다. 종일 밀려드는 설거지로 손에 물 마를 새 없었다. 사진=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1)매일 새벽 예불 올리고 출근해보니…
(2)오후불식 해보니…3.6kg 줄었다 두뇌도 멈췄다
(3)시도때도 없이 사경 해보니…쓰면 사라진다 ‘잡념’
(4)공양주 보살로 살아보니…쉴 틈 없는 15시간 중노동

새벽 4시30분 일과 시작
100~600명 식사 준비에
밀려드는 설거지로 ‘멘붕’
‘노동착취’란 말에 혼쭐도

절집에서 ‘공짜밥’ 먹은 지 오래됐다. 돈 한 푼 안내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밥 한 공기 ‘턱턱’ 화끈하게 내어주는 사찰 인심이 언제부터인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스님으로 10년 수행하는 것보다 공양주로 3년 일하는 공덕이 더 크다”는 말을 듣기 전엔 하루 세끼 스님께 올리는 공양은 물론이고 때마다 불쑥 찾아오는 신도들 끼니까지, ‘뚝딱!’하면 그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밥 짓는 공양주 공덕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출가 수행과 맞먹는다 할까. 고된 사찰 일 가운데서도 ‘극한 직업’이라 불릴 만큼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까. 지난 7일 조계총림 송광사 공양간에서 오전4시30분부터 오후6시30분까지 ‘일일 공양주 보살’로 일했다. 정식 출퇴근 외 새벽3시 예불부터 따지면 도합 15시간 이상, 숨 쉴 틈 없이 몰아친 1년 같은 하루였다.

어둠 속 느껴지는 분주함

공양주 하루는 새벽4시 시작한다. 하루 전날 4시30분에 일을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예불 도중 여유 있게 나왔는데도 공양간 안은 이미 인기척으로 가득했다. 어둠을 뚫고 흘러 나오는 불빛 사이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도마를 꺼내고 물을 끓이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인사를 건넸지만 분주함 때문에 묵묵부답. 앞치마를 메고 쭈뼛거리며 한 상자 가득한 감자 박스를 끌고 와 껍질부터 깠다. “아니, 그렇게 살을 다 잘라내면 먹을 것이나 있겄어? 이거 끼고 혀요” 감자칼을 내주던 안락행 보살이 장갑도 마저 내줬다. “손 다치는 거 순간이여.” 평소 같았으면 한창 잠에 빠져 있을 시간, 흐리멍텅한 눈으로 ‘멍 때리며’ 감자 살을 아낌없이 깎아내는 신참을 쳐다보는 눈빛에 걱정들이 담겼다.

감자 껍질 한 상자를 벗기는 사이 “상 나와요~!” 하는 소리가 공양간에 쩌렁쩌렁 울렸다. 오전6시15분, 대방(정혜사, 스님들 발우공양 하는 곳)에 들어간 상들이 나오는 시간이다. 발우공양 전통이 살아있는 송광사 공양간 시계는 ‘상 들어가는 시간’과 ‘상 나가는 시간’에 따라 흘러간다. 오전5시30분 밥과 죽, 반찬 5개가 정갈하게 차려진 어간상(스님상)이 일제히 행자 손에 들려 대방에 들어가면 6시15분 깨끗이 비워진 상들이 다시 공양간 안으로 물밀 듯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날 준비된 스님상은 54인분, ‘상 나오는 시간’에 맞춰 잔반을 분류하고 23개 크고 작은 상을 행주로 깨끗이 닦았다. 스님상에 올렸던 그릇을 물로 씻어내는 와중에도 설거지가 쉴 새 없이 몰렸다. 종무소 직원과 템플스테이 참가자, 일반 신도를 위해 뷔페식으로 준비했던 대형 반찬통이 오롯이 설거지로 남았다. 배식에 사용됐던 100인분 대형 반찬통과 국통은 물론 국자와 주걱 등 부엌 집기, 밥과 반찬을 만드는데 쓰인 300인분 500인분 대형 압력솥까지, ‘자기가 먹은 건 각자 알아서 설거지 할테니 크게 부담은 없겠지’ 생각했던 안일함은 사라지고,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망했다.’

공양간 아침은 새벽4시 시작된다.

5첩 반상이 ‘척척’

첫 술을 뜬 건 공양 시간을 이미 훌쩍 넘어서였다. “공양간에서 편하게 먹어야 하는디, 워쪄” “우리는 다른 사람들 식사 끝나고 나면 먹어라” 민망해하는 안락행 보살을 따라 공양간 뒤켠 마련된 쉼터에서 아침 공양 후 남은 떡국으로 첫 끼를 해결했다. 조금 전 철수세미로 팔이 떨어져나가라 박박 문지르고 문질러도 바닥에 눌러 붙어 떨어지지 않던 떡국 냄비가 생각났지만 땀 흘린 뒤 먹는 밥맛은 보살님 말마따나 ‘솔찬히’ 좋았다.

법회가 있는 일요일, 외부 손님까지 600인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공양간에 ‘식후 커피 한잔’, ‘아침 먹고 산책 한 바퀴’는 사치다. 10분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오전8시가 되자 식재료가 들이닥쳤다. 청경채 3박스, 순부두 30봉지, 애호박 20개, 두 대야 가득 담긴 참나물 등 갖은 재료를 흐르는 물에 씻고 손질해 먹기 좋게 썰었다. 끓는 물에 데치고 양념에 무치는 일이 반복됐다.

긴장을 놓을라치면 공양간 반장 고흥 보살 불호령이 어김없이 떨어졌다. “진수는 준비 됐는가” “마지는?” “호박 끝 버리는 것 없게 너무 많이 자르면 안댜!” “무는 요래 깎아야 큰스님들 먹기에 부드럽지.” 21살에 시집와 50년 넘게 송광사 공양주 살림을 맡아온 고흥 보살 앞에서 한식조리자격증까지 있다며 큰소리 ‘뻥뻥’치던 자신감은 어느새 쏙 들어갔다.

보다 신기했던 건, 별다른 지시 없이도 공양 시간에 딱 맞춰 밥과 국이 척척 완성되고 5가지 반찬이 술술 나온다는 점이었다. “언제 이걸 다 하나” 한숨을 푹푹 쉬다보면 밥은 물론 청국장, 무국, 호박무침, 감자튀김까지 사시 공양 시간에 맞춰 막힘없이 음식이 완성됐다. 밥과 죽은 신맹호 처사가, 5가지 반찬 양념은 고흥 보살이, 보조는 안락행 보살, 뒷정리 담당은 홍국 보살이 맡아 물 흐르듯 찰떡 호흡을 만들어 냈다.

공양주 손을 거쳐 완성된 반찬들.
새벽2시30분에 일어나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인 지 10시간이 다 돼 가는 시간, “눈이 토끼 눈이 돼 버렸다”며 놀림이 쏟아졌다.
송광사 공양간은 사찰 텃밭에서 직접 식재료를 구해 오기도 한다.

‘쉴 수는 있는 건가요?’

정신없는 점심 공양이 지나고 폭풍 설거지까지 끝내자 “토끼 눈이 돼 버렸다”며 놀림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2시30분에 일어나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인 지 10시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대체 언제 쉬나요?” “쉬는 시간이 없다니 노동 착취 아닙니까?” “퇴근은 언제 하지요?” 연신 허리와 다리를 두들기며 하소연 하면서도 이제 겨우 한 숨 돌리겠다 싶은 찰나, 원주 스님이 팥을 한가득 들고 고흥 보살을 찾았다. “내일 모레 영산전 점안식에 쓸 팥이니 좋은 것으로 골라 주세요.”

원주 스님에게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며 고흥 보살에게 “힘들지 않나요?” 당연한 질문을 던지자 “부처님 앞에 올릴 것이니 벌레 먹고 썩은 것, 쭈글쭈글 해 못생긴 것은 다 빼야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잠을 못 자 빨갛게 충혈 된 토끼 눈을 하고 꾸역꾸역 다시 팥 고르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절이 지난 오후3시에는 천자암 오르는 길 오른편에 자리한 사찰 텃밭으로 향했다. 저녁 공양에 올릴 고추볶음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다. 천혜의 자연 속 녹음 가득한 청정 밭에서 햇빛 가득 머금고 정성으로 자란 유기농 고추를 한 소쿠리씩 따야 했다.

저녁 준비는 비교적 수월했다. 종일 만들어 둔 음식을 다시 따뜻하게 데우고 밭에서 딴 고추로 볶음반찬을 만들어 추가하면 됐다. 빠르게 음식을 만드는 고흥 보살 옆에서 다음날 오전 공양 올릴 브로콜리를 다듬었다. 반찬에 쓰일 고춧잎도 예쁜 것으로만 골랐다. 종일 손에 물 마를 새 없게 만든 설거지도 하루 만에 도가 터 속도가 붙었다. 오후6시30분, 장장 15시간 중노동이 끝났다.

밥 말고 복 짓는다 생각합니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10시간 넘게 강도 높은 일을 어떻게 버티는 지 물을 때마다 공양주 보살들은 하나같이 “내가 만든 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님이 먹는다 생각해보라”는 짧은 대답만 내놨다. 공양주 생활하는 행자는 “'노동'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쓰는 것이니 수행처에서 하는 일을 세속의 눈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며 “밥 짓는 공덕으로 평생 탈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일렀다. 1968년 공양간에 들어와 올해 딱 50년을 맞는다는 고흥 보살은 “우리 스님들은 좋은 것 하나 스님 밥상에 올리려 해도 신도들하고 똑같이 먹어야 한다며 어간상에 특별한 찬 하나 절대 놓지 못하게 한다”며 자랑 일색을 늘어놨다.

밥 짓는 일을 ‘노동’이라 생각 않고 ‘복 짓는다’ 생각한다는 공양주 보살 마음에 보답하듯 공양간엔 종일 스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자 가져다 주시라’며 노보살 앞치마에 동자승 열쇠고리를 슬쩍 넣어주던 강원 스님, 머리에 진 고춧잎 소쿠리를 발견하곤 냉큼 달려와 말없이 들어주던 학인 스님, 무거운 냄비가 보일 때마다 군말 않고 거침없이 날라주던 예비 스님, 모든 수행자들이 오늘도 하루 세끼 공양주 신심과 정성 가득한 밥상을 받는다.

송광사 공양간. 1층과 2층으로 된 특이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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