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곧 부처…‘선정과 지혜 구족’ 불교 쇄신운동

 

불교계 타락과 부패 ‘비판’ 
승려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예불 독경과 참선 노동에 
힘쓰자는 적극적인 주장

금강경 독송, 육조단경 본의
화엄론ㆍ대혜어록 날개 삼아

“깨달았다고 해도 번뇌가 
쉽게 제거되지 않기에 
정과 혜를 꾸준히 닦는 것”
‘돈오점수’ ‘선오후수’ 강조

보조국사 지눌의 사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정혜결사’다 선정과 지혜로 함께 닦아 본래의 ‘마음이 곧 부처’인 사실을 바르게 깨닫기 위한 결사로 불교 쇄신운동이다. 사진은 정혜결사 모습이 담긴 순천 송광사 벽화.

두 번째 깨달음을 얻은 뒤 31세의 지눌은 영천 은해사 거조사(居組寺)에서 몇 도반들과 정혜결사를 모의했다. 수행의 본연에 힘쓰기 위해 개경과 멀리 떨어진 곳을 택했다. 지눌의 사상 가운데 한국불교에 미친 두드러진 점은 정혜결사이다. 정혜결사란 바로 선정과 지혜로 함께 닦아 본래의 ‘마음이 곧 부처’인 사실을 바르게 깨닫기 위한 결사로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한 불교 쇄신운동이다. 불교계의 타락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예불 독경과 참선 노동에 힘쓰자는 적극적인 주장이다. 부처님 열반 이래 승가가 존속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본다. 계율과 관련해 승가를 바로잡고자 하는 선지식들이 역사 이래 배출됐기 때문이다.

시국선언문과 같은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의 일부를 보자. “우리들의 일상 행위를 돌이켜 보라. 불법(佛法)을 빙자하여 ‘나다’, ‘남이다’하는 상(相)을 내고, 명예와 이익만을 좇으며, 욕망의 풍진 속에 빠져 도(道)와 덕(德)은 닦지 않고 옷과 밥만 축내고 있으니, 이런 그대들이 어찌 출가자라고 할 수 있으며, 출가의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슬프도다. 3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면서 속세를 벗어날 수행은 하지 않으니 육신은 한갓 남자 몸일 뿐, 그 뜻은 장부의 기개가 아니다. 위로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있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며, 중간에는 네 가지 은혜를 저버렸도다.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탄식하고 있었다.”

지눌은 결사문을 통해 승려들이 올바르게 함께 탁마하며 수행하는 길을 지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눌이 염려했던 승가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필자는 조계종에 희망을 품는다. 열심히 살고 있는 민초 같은 승려들이 적지 않음이요, 교단은 자정(自淨)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41세 때 세 번째의 깨달음을 얻은 지눌은 1200년 43세에 순천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가 본격적으로 결사운동을 했다. 길상사를 수선사(修禪社)라 개명하고, 산 이름도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바꿨다. 결사에는 왕족,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재가신자들도 동참했다. 당시 교종 승려들이 정권 세력에 이용당하면서 승려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보니, 무신 정권은 새로운 기반의 불교가 필요했다. 이런 영향으로 정혜결사는 정치적, 경제적 원조를 받아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왕족이나 정권 집단과 일부러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왕족과 귀족들도 포함돼 있다. 곧 분별심 없이 ‘귀족이든 평민이든 평등한 입장에서 모두 함께 한다’는 결사라는 점을 높이 산다. 

정혜결사를 시작한 영천 거조암.

보조선의 네 가지 특징 

조계산수선사불일보조국사비(曹溪山修禪社佛日普照國師碑)로 보는 지눌 사상의 큰 틀은 이렇다. “사람들에게 송지(頌持)를 권함에는 <금강경>으로 하고, 입법연의(立法演義)에는 <육조단경>을 본의(本意)로 하였으며, 이통현의 <화엄론>과 <대혜어록>을 양 날개로 삼았다.”

그렇다면 지눌 사상의 특징은 어떤가. 첫째, 지눌의 선사상은 3문(三門) 체계이다. 3문은 선의 실천적 체계요, 제자를 제접하는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은 점수(漸修)를 표방한 것이며,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은 돈오(頓悟)를 설명하고, 간화경절문(看話經截門)은 앞의 둘을 타개하기 위해 화두를 들어 수행해 들어가는 방법이다. 선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화선을 받아들여 전개했다. 이 경절문은 어로, 사량분별, 의리 등을 끊고 곧바로 깨달음의 길로 드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로 선교(禪敎)일치, 즉 회통사상이다. 우리나라 불교사상은 전반적으로 ‘정토+선’, ‘화엄+선’, ‘천태+선’ 등 회통사상을 근간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눌 이전 화엄종의 균여는 화엄 입장에서 선의 일치를 염두에 두었고, 의천은 천태 사상을 기반에 두고 선을 융합했다면, 지눌은 6조 혜능의 선과 대혜의 간화선을 근간으로 <화엄경>을 흡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로 돈오점수이다. <수심결>에 의거해 살펴보자. 먼저 ‘돈오’이다. “4대(지·수·화·풍)가 몸이라고 하고, 그릇된 생각(妄想)을 자기 마음이라고 하면서 제 성품이 참 법신임을 알지 못하여 밖으로 부처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一念廻光) 제 본성을 보면, 번뇌 없는 청정한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구족하고 있는 것이 제불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를 돈오라고 한다.” ‘점수’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중생일지라도 돈오는 비록 부처와 동일하지만 다생(多生)의 습기가 깊다. 곧 바람은 멈췄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상이 그래도 침범하는 이치와 같다. 지혜로써 비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돈오는 중생의 본성, 불성이 본래 청정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고, 점수는 돈오를 바탕으로 점차적인 닦음을 통해 온전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깨달았다고 해도 번뇌가 쉽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정과 혜를 꾸준히 닦는 것이다. 지눌은 ‘깨달음(悟)은 마치 햇빛과 같이 갑자기 만법이 밝아지는 것이고, 닦음(修)은 거울을 닦는 것과 같이 점차 밝아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면서, 만일 깨우치지 못하고 수행만 한다면 그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선오후수(先悟後修)를 강조했다.

넷째는 정혜쌍수로서 선정과 지혜를 함께 구족해야 한다. ‘참선 수행에는 새의 양 날개처럼 선정과 지혜가 동시에 구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눌은 <수심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정은 본체요 지혜는 작용이니, 본체인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인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는다. 선정이 곧 지혜이기 때문에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기 때문에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자력수행 바탕 ’염불’ 수용

‘염불’, 이 단어는 말로 드러내도 마음이 행복하다. 위빠사나의 열 가지 반복적인 마음챙김(十隨念, anussati) 가운데 첫째가 불수념(佛隨念, buddhnussati)이다. 곧 부처님의 덕성을 염하면서 선정에 드는 것이다. 후대 중국 7세기 정토종에서 부처를 염하면서 소리를 내는 칭명염불로 발전됐다. 어떤 방법이든 부처 명호를 염한다는 것은 번뇌망상을 줄여 해탈열반을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곧 부처를 스스로 염함으로서 닮고자 하는 것이 염불인데, 지눌은 염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자. 
 “염불에는 대략 열 가지가 있다. 

①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염불 ②입을 잘 다스리는 염불 ③마음가짐을 올바로 하는 염불 ④움직이면서도 늘 잊지 않는 염불 ⑤조용히 앉아서 잊지 않는 염불 ⑥타인과 대화를 하면서도 잊지 염불 ⑦침묵 속에서 염하는 염불 ⑧부처님 모습을 보면서 하는 염불 ⑨무심삼매 속의 염불 ⑩진여속의 염불”이다.

①˜③은 신·구·의 3업을 청정케 하는 계율과 관련된다. 부처님께서도 라훌라에게 “너는 신구의 3업을 청정히 닦아야 한다. 몸과 입, 뜻으로 짓는 모든 행 하나하나에서 현재의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고, 지금 현재 청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눌은 “정성을 다해 존경하면서 깊이 부처님을 생각하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으로 부처를 염하면 힘든 인생에 큰 장애가 없을 거라고 본다. 

다음 ④˜⑦은 삶의 움직임 모두 어(語)·묵(默)·동(動)·정(靜) 측면에서의 염불이다. 대화를 할 때나 쉴 때, 그 어느 때든 잊지 않고 부처를 염하는 것이다. 한편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등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부처를 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⑧은 관상염불(觀象念佛)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부처님의 덕상을 염하는 의미지만, 처처 두두물물을 부처라고 보고 염한다면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을 것이다. ⑨는 무주심(無住心)으로 어떤 잡념도 없는 청정심, 보리심에 입각한 염불이다. ⑩은 진여염불이다. 지눌은 “염불의 마음이 이미 그 극에 달하면 끝이랄 것도 없는 끝, 마음의 가장 깊은 경지가 드러난다. 원각이요, 대지(大智)이다. 언제나 한결같고 참된 마음, 모든 것을 다 평등하게 감싸며 모든 것을 다 명백하게 비추며 아무것도 그것을 흔들지 못하는 진여(佛心)가 나타난다. 지눌이 주장한 염불 사상도 타력적인 명호를 염하는 것이 아닌 자력적인 수행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순천 조계총림 송광사에 있는 ‘불일보조국

지눌이 후대에 미친 영향

첫째, 지눌의 돈오점수 선사상은 근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었다. 물론 20여 년 전 돈점 문제로 학계의 논쟁이 됐지만, 이 또한 지눌의 영향이다. 둘째, 승가의 법식이나 청규 등은 당시 지눌이 제정한 것으로, 현재는 많은 변화가 있지만 승가의 규율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셋째, 지눌 이후 조선의 선사들도 선을 근간으로 교(경전)의 일치를 주장했다. 대략 <화엄경>을 최상의 경전으로 두고 <기신론> <도서> <원각경> 등 사교과와 대교과의 교과목 등이 정해지게 된 경우는 지눌의 영향이라고 본다. 넷째,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科目幷入私記)>, 줄여서 ‘절요’는 지눌 이후 현대까지 학인(승가대학 교재)들과 선사들의 수행 나침반이 되고 있다. 

[불교신문3433호/2018년10월20일자] 

정운스님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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