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귀하게 쓰이기 위한 단련 시기
이 시련과 역경은 찬란한 미래와 희망
전통 따르되 창조와 변화를 위해 정진
자유의지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기를 

학인들에게 띄우는 가을엽서 안도현 님의 ‘가을엽서’란 시를 음미해본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이 가을날 엽서 한 장 써야겠다고!

사실 나는 외국에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국내라도 문득 엽서나 편지 쓰기를 즐긴다. 이는 중1때 담임 송정림 선생님 덕분이다. 다음 해 대학원 진학을 위해 사표를 내셨는데, 고3까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은지라 그 양이 라면박스 하나는 되었다. 선생님이 보내준 그 당시로는 알 수 없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혹은 쎙떽쥐베리의 ‘야간비행사’ 같은 책 선물 덕분에 지금의 독서습관과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 갔을 때 지인이나 지인의 자식들에게 그곳의 예쁜 엽서에 글을 써서 보내는 것 또한 행복과 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우연이 필연이 되어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가을을 맞이해 작은 엽서를 써서 소식을 전한다. 이왕이면 며칠 전 염불시연대회를 치른 젊은 학인 스님들께 보내고 싶다.

학인들이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태풍 속에서도 그대들은 오직 일념으로 염불대회를 위해 피땀어린 노력과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 모든 것들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대들이 있어 한국불교는 작지만 소중한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과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지금은 귀하게 쓰이기 위한 단련의 시기인지라 고통스럽고 힘들며 이름 없는 무명의 세월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련과 역경들은 훗날 찬란한 미래와 희망이 될 거라 믿습니다. 또한 지금의 학인 시절과 도반의 인연들은 멋진 추억과 초석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전통을 따르되 그것에 매이지 말고 창조적 열정과 변화에 대한 실천을 멈추지 마십시오. 다른 누군가의 말과 뜻에 따르지 말고 자신의 자유의지와 영감이 이끄는 곳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아가십시오. 선가에서 이르길 “스스로 하늘을 뚫을 기상이 있거늘, 여래께서 가신 길조차 따르지 말라(丈夫自有衝天志 如來行處莫處行)” 하심이 이런 뜻일 겁니다.

물론 저도 부끄럽고 욕되기는 합니다만, 나름 ‘참한 스님’이 아니라 깨어 실천하는 수행자이기를 서원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수행자는 중생에 공감하고 공명하는 이며, 끝없이 중생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마터면 저도 열심히 참한 스님이 될 뻔 했기에 드리는 말입니다. ‘참한 스님’이 아니라 ‘참스님’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학인 스님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인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전의 인기를 끈 드라마 ‘도깨비’에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라는 명대사처럼 그대들이 있어, 그대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우며, 눈부시게 아름답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있어 한국불교의 미래는 더없이 밝고 영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불교신문3433호/2018년10월20일자] 

진광스님 논설위원·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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