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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08배, 철야 3000배 해보니...부처님마저 미웠다

기사승인 2018.10.23  17: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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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3000배 철야 정진 중 모습. ‘답답하고 막막할 때 절 수행이 제격’이라던 말에 불현 듯 홀린 것이 고행의 시작이었다.

(1)매일 새벽 예불 올리고 출근해보니…
(2)오후불식 해보니…3.6kg 줄었다 두뇌도 멈췄다
(3)시도때도 없이 사경 해보니…쓰면 사라진다 ‘잡념’
(4)공양주 보살로 살아보니…쉴 틈 없는 15시간 중노동

(5)매일 108배, 철야 3000배 해보니...부처님마저 미웠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매일매일 주어진 오늘을 활기차고 감사하게 살아야겠지만 인생은 때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겁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싶으면 절 수행 한번 해봐라’는 조언을 심심찮게 들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흘려들었지만, ‘0.2평의 기적’ ‘인생을 바꾼 108배’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절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을 향해 지극한 예경을 표하는 방식이지만 때로는 살아갈 힘을 주는 치유의 방편으로 쓰이기도 한다. 인생이 고달플 때 법륜스님은 “몸을 억지로라도 숙이다 보면 위로 치켜뜨는 아상이 가라앉으면서 번뇌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했고 20년 이상 절수행을 해 온 <인생을 낭비한 죄> 박원자 작가는 “위기의 순간, 108배가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지난 9월17일부터 10월2일까지 보름 동안 매일 108배를 했고, 20일부터 21일까지 철야 3000배 정진에 참가했다. ‘답답하고 막막할 때 절 수행이 제격’이라는 말에 불현 듯 홀린 것이 고행의 시작이었다.

법당 울린 ‘뚝뚝’ 소리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점심시간, 짬을 내 조계사 극락전으로 향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108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부끄러움은 뒤로 한 채 바쁜 시간을 쪼개 절을 하러 왔다는 흐뭇함부터 들었다. 기쁨도 잠시, 합장을 하고 두 무릎을 땅에 댄 순간, ‘뚝!’ ‘뚜둑!’ 조용하던 법당에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러 퍼졌다.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흔들리는 자세 때문에 좌복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는데 땀은 또 왜 그리 줄줄 흐르던지. 108배 쯤이야 가뿐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 두 무릎을 쿵쿵 바닥에 내리찧으며 “오랜만에 절 합니다” 대놓고 광고하는 스스로가 창피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번뇌를 씻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는커녕,  숫자 채우기 급급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정신력

‘매일 108배’를 시작한 지 3일이 지나자 고비가 찾아왔다. 가벼운 몸으로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점심까지 굶었지만 3일차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첫날과 달리 전에 없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때문에 걱정부터 앞섰다. 

“이상하게 하면 할수록 다리가 아픈 것 같다”며 투덜대자 이를 바라보던 지인은 “평소 절을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매일 108배를 하면 그럴 수 있다”며 “며칠 지나면 나아진다” 조언했다. “허리가 아프다” “매일 이렇게 절을 하다 무릎이 나가는 거 아니냐” 징징대는 내게 그녀는 “자세가 바르면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재차 어르고 달랬다. 10년도 넘게 매일 108배를 해온 그녀의 그네타는 듯한 가벼운 몸놀림을 보며 꾸준한 수행의 힘을 새삼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던 그녀의 말처럼 1주일이 지나자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신력이었다. 외출이 있는 주말에는 미처 하지 못한 108배를 하기 위해 30분을 남겨놓고 밤11시30분에 맞춰 서둘러 귀가를 해야 했고, 추석 명절 때는 유난스럽다는 눈총을 받으며 홀로 시골집 한구석에 담요를 깔고 절을 올렸다. “오늘만 하지말까” “하루정도는 건너뛰어도 되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유혹과 싸워야 했다.

개운함에 중독되다

절에 중독되기 시작한 건 개운함과 성취감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힘든 건 시작하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하고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점심시간 108배를 하고나면 정수리까지 뚫리는 듯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과 동시에 오늘도 어제에 이어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오후까지 이어져 긍정 에너지를 ‘뿜뿜’ 솟게 했다. 평소 같았으면 참을성을 잃고 분노했을 일들도 한발 물러서서 보게 됐다. 절을 왜 ‘움직이는 명상’이라 하는지 언뜻 알 것도 같았다.

매일 몸을 숙일 때마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되짚으며 “부처님께 참회합니다” 속삭였고 몸을 일으킬 때는 “저를 아프게 했던 사람까지도 자비로 감싸 안겠습니다”하고 회향게를 욌다. 하루에 100번도 넘게 이 같은 참회문을 외다보면 세상사 문제 될 일 하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는 108배를 마치고 나서도 그 기분에 취해 300배까지 내달린 적도 있었다.

3000배를 한 자리. 두 무릎이 닿은 방석이 움푹 패였다.

“절하다 죽은 사람 없다”

보름 동안 108배를 하다 이런저런 핑계로 다시 일상에 매몰될 때 쯤 ‘봉은사 학업성취 3000배 철야 정진’ 소식을 접했다. 절 수행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무리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알고 싶었다. 성철스님이 그토록 3000배를 권했던 이유를. 

지난 20일 오후6시, 108염주를 손에 쥐고 수능을 앞 둔 수험생 어머니 수백명 사이에 섰다. 50분 동안 절을 하고 10분 쉰 뒤 다시 절을 하는 기도가 오전4시까지 총 10시간 동안 반복될 터였다.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급습했지만 “절하다 병신 된 사람 없고 절하다 죽은 사람 없다”는 성철스님 말을 의지처 삼아 몸을 앞으로 숙였다.

고비를 넘으면 또 다시 고비다

절을 시작하면 일단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나름의 서원을 세우고 숫자와 자세에 집중하려 해도 “그 때 왜 그랬지”하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 “그 인간 때문에...”하는 원망과 미움, “멍청아, 결국 네 탓이야”와 같은 자책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비우려 할수록 잡념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한차례 감정의 폭풍이 지나간 뒤 남는 건 고요다. “1시간에 350배 정도 되니, 이만하면 생각보다 할 만 한데?”하고 힘든 걸 이겨내려 어떻게든 바닥부터 긍정의 기운을 끌어올려봤지만 1000배가 가까워지면서 그마저 꺾였다.

자세 탓, 육중한 체중 탓을 아무리 해봐도 3000배는 극한의 수행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부치면서 땅을 자꾸 짚는 바람에 오른쪽 손목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저릿저릿 아팠다. 체중이 한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왼쪽 무릎은 시큰거리다 못해 잘려나가는 듯한 통증을 줬다. 묵직한 통증이 온 몸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시간이 끝임없이 반복되다보니, 급기야 부처님마저 미워지기 시작했다.

인생과 닮은 3000배

“지금이라도 그만할까? 이러다 정말 어디 한군데 잘못되는 거 아냐? 아냐. 성철스님이 절하다 죽는 사람 없댔어. 딱 10개만 더 채우자. 딱 10개만 더...” 스스로 어르고 달래며 ‘깔딱고개’를 겨우겨우 넘는 순간, 문득 3000배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살만해지고 살만해지면 다시 죽을 것 같이 힘들어지는 것,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 다음엔 조금 더 수월하게 버틸만하다는 것 등이 말이다.

1000배를 넘기면서부터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108염주고 뭐고 숫자세기도 다 포기하고 정근하는 스님과 신도들 따라 ‘관세음보살~’을 이 악물고 외쳤다. 기도의 힘에 빌붙어 또 다시 한 배 한 배를 넘겼다. 절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가까워질 때는 거의 짐승처럼 네 발로 기다시피해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단 1분1초라도 ‘관세음보살~’ 정근하는 소리가 빨리 멈추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3000배를 다 했는지, 덜 했는지,  더 했는지는 모르겠다. 시작할 때의 경건한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중엔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인 기억만 남는다. 시원한 물 한잔이 주는 힘,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음에 더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새벽, 혹독한 시간을 버텨냈다는 자부심, 그 속에서 한없이 미천한 스스로를 들여다 봤다면 부처님께서도 조금은 기특하게 봐 주실까.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단언컨대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은 변한다. 절 수행을 꾸준히 하다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도 언젠가 끝이 있음을, 그러니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그 모든 힘은 곧 우리 안에 있음을,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엎드려 참회하고 새 날을 위한 변화를 약속하는 사람에게 이기지 못할 고통은 없다. 지금 내 삶이 비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견딜 수 없는 불안과 막막함에 시달린다면, 자신있게 권한다. “절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봉은사 3000배 철야 정진.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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