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앉고 서있는 자리가 바로 보리도량”

 

“눈에 보이는 저 만산이 바로 
안주지신…내마음이 부처이듯
옆에 있는 도반이 부처님이라”

“구법수행 하는 순례회원들이 
대승의 꽃인 ‘화엄경의 정수’ 
이 땅에 실현하는 대승보살”

산이 절을 품었는가 절이 산을 품었는가. 53기도도량 제31차 순례법회는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한 지난 10월12, 13일 양일간 함양 덕유산 영각사에서 봉행됐다.

‘53기도도량’ 제31차 순례법회가 지난 10월12, 13일 양일간 경남 함양 덕유산 영각사에서 봉행됐다.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시월, 우리 회원들은 전국의 각 법등에서 덕유산 영각사로 순례를 나섰다. 청량하기 그지없는 맑은 계곡과 장쾌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덕유산은 지리산, 설악산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명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특히 가을은 단풍으로 그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영각사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뭇잎들은 반쯤 단풍으로 물들거나 아직 푸른 잎을 머금고 있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절경(絶景)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황금빛 글씨로 새겨진 영각사 표석(表石)을 지나자 한차례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허공을 가르는 붉은 단풍잎이 한 장~. 회원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순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감흥을 받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올랐을까? 산이 절을 품었는지, 절이 산을 품었는지 모를 곳에 ‘덕유산 영각사’라는 편액이 새겨진 일주문이 장엄하게 우리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영각사 주지 정산스님과 대중들이 부처님과 같은 미소로 우리 회원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영각사는 조계종 제12교구본사 해인사의 말사로서 876년(신라 헌강왕2년) 심광(深光)이 창건하고 1770년 조선 영조 때 상언이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판목을 새겨서 봉안한 곳이다. 절의 역사는 늘 아픔을 머금고 있듯이 영각사도 여러 번의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상언은 당시 스님들에게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으나 아무도 믿지 않아 결국 큰 홍수로 인해 일순간 절이 무너져 내린 비화를 겪었다. 그 후 중창되었으나 화재와 6ㆍ25전쟁으로 소실되고 이후 법당을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극락전과 화엄전 등이 있고 유물로 석등과 부도 6기가 있다. 

우리 회원들은 극락전 마당을 기도처로 잡고 육법공양,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나를 찾는 108참회기도를 여법하게 봉행했다. 

그리고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당도하신 곳은 한국의 3대 명산으로 불리는 덕유산에 있는 영각사입니다. 지금 고개를 들어서 주위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세요. 붉은 단풍과 푸른 가을하늘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 스님과 여러분들은 만산(滿山)의 가을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31번째 선지식이며 땅의 지신인 안주지신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안주지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새들이 안주지신이요. 부처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선지식 또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이듯이 옆에 자리한 도반이 바로 부처요. 눈에 보이는 저 만산이 바로 안주지신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그걸 깨닫고 가시면 됩니다. 선재동자가 안주지신을 찾아간 곳은 염부제 마갈 제국의 보리도량입니다. 보리도량은 어떤 곳이죠. 깨달음의 도량이라는 뜻이지요. 지금 여러분들이 앉고 서있는 자리가 바로 보리도량입니다. 이를 깨닫고 있으면 오늘 우리의 순례 목적은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신(地神)의 이름이 안주(安住)인 것은 언제나 깨달음의 장소에 안주하면서 모든 선근(善根)을 깨달음으로 향해 있으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지요. 여러분들이 오늘 영각사에 오신 것은 분명이 여러 생에 걸친 깊은 불연(佛緣)이 발현한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시고 많은 공덕을 쌓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영각사 주지 정산스님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만산의 나뭇잎이 단청불사를 시작하는 가을. 선묵혜자스님과 함께하는 53기도도량 순례회원 여러분들이 영각사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발걸음을 하신 영각사는 덕유산이 품고 있는 화엄도량입니다. 영각사의 큰법당은 화엄경의 부처님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화엄전이며, 조선후기에는 화엄경과 화엄경소초 경판을 모셔놓은 장경각이 있어 화엄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입니다. 노스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해인사 강원보다 영각사 강원의 학인들이 공부실력이 더 뛰어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명맥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 일부만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만, 53기도도량 구법 순례법회로 인해 ‘동국 화엄의 꽃’이라고 불렸던 전통이 되살아난 것 같습니다.

화엄경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비로자나품’에는 영원 무구한 보편적 진리 자체를 형상화한 비로자나 부처님이 등장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진리의 법신이신 비로자나불이 현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평범한 중생들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저에게 화엄경의 백미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코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보살의 수행에 대해 법을 구하는 부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묵혜자스님과 함께 구법 수행을 하는 우리 불자님들은 대승의 꽃인 화엄경의 정수를 실현하고 있는 진정한 대승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영각사에서 불자님들의 몸에 화엄의 향기가 배어 앞으로 화엄의 세계를 장엄할 꽃과 같은 불자로 거듭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이날 법회에서는 강현출 함양 부군수와 지역 도의원 환영사가 있었다. 우리 회원들은 영각사 순례를 봉행한 뒤, 기와불사와 직거래장터, 국군장병 초코파이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수여행사도 가졌다.

네팔 부처님탄생지에서 채화해 온 ‘평화의 불’을 이운하는 선묵스님<왼쪽>과 영각사 주지 정산스님.

선행 실천하며 행복의 근원 찾는 순례

 행복의 기준 

인간에게 행복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명예를 얻는 것 등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행복의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사람의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 할 수 있어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옛날 인간은 굶주린 상태에서 배부른 상태를 원해 왔으며 비바람 때문에 집을 추구해 왔으며 추위 때문에 옷을 입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이미 이러한 의식주를 벗어나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을 더 추구한다. 그럼, 그 정신적인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자신의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있으며 마음의 행복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 회원들은 53기도도량순례를 다니면서 물질과 명예만으로는 결코 행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행복은 구하려고 했을 때 오는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선행 보시를 했을 때 저절로 오는 것임을 순례를 통해 느낀 것이다. 

 

이젠 물질과 명예만으로는 
결코 행복을 구할 수 없어
순례, 여성에게 특히 효과

한달 한번 도시 빠져 나와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사람 만나는 것도 큰 행복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은 애초부터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식이다. 이는 종교의 본질적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순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바로 마음의 안식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살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G20 중 제일 높다. 최근에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은 오계 중 불살생(不殺生)을 강조하셨는데 자살도 오계(五戒) 중의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어떤 욕구 불만과 초조감으로 인해 생기는 우울병 때문인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다. 우울병은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가족으로부터 소외 받는 주부들에게 많다고 한다. 이와 같이 현대인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들도 똑같이 고통 받고 있으며 똑같이 행복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53기도도량 순례는 여성 불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소납은 순례를 통해 우리 회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물질적,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마음, 남에게 베푸는 마음, 어려운 이를 돕는 마음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행복은 찾아온다. 

이를 보면, 인간의 행복은 물질이나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행복에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도시를 빠져 나와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바로 행복의 근원임을 53기도도량순례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즐겁다고 느끼는 나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이를 바로 기도도량순례가 가르쳐 주고 있다.

선묵스님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ㆍ도안사 회주

[불교신문3439호/2018년11월10일자]

선묵 혜자스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