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용왕상 협시 삼존불 ‘거의 유일’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상(像)을 법당에 모실 때 좌우에 선재동자(善才童子)와 용왕(龍王)이 협시(挾侍)한다. 하지만 선재동자와 용왕을 모두 모신 관음보살상은 드물다. 국내에는 서울 흥천사, 보은 법주사, 남해 보리암 등 3곳에 불과하다. 이들 사찰 가운데 법주사는 협시가 너무 작고, 보리암은 연대가 없는 작은 불감(佛龕)이어서 흥천사 삼존상이 거의 유일한 예배상으로 의의가 크다.
지난 11월17일 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와 한국불교미술사학회가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제1강의실에서 개최한 ‘600년 왕실 원찰 서울 흥천사 불상 학술대회’에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이같이 강조했다. 문명대 교수는 ‘흥천사 불상의 성격과 1701년 법잠(法岑) 작 목조(木造) 수월관음보살 삼존상 및 복장품 연구’라는 기조발표를 통해 “이런 (흥천사) 삼존상 조합은 극히 희귀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선재동자와 용왕이 크지 않을 경우 없어질 확률이 높아서 잘 남아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적했다.
문명대 교수는 “이 관음보살상은 1701년 조각승 법잠이 조성했다는 조성기가 남아있어서 조선 후반기 조각사 연구에 더욱 중요시되어야 할 상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중요성을 감안해 삼존상의 조성배경, 도상특징, 양식특징, 조각사적 의의 등으로 나눠 기조발표를 했다.
흥천사 관음보살삼존상은 본래 1701년 법잠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전북 임실 신흥사 적조암에 봉안돼 있었다. 현재의 흥천사로 언제 이안(移安, 이전하여 봉안)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문명대 교수는 “19세기 중엽 전후에 흥천사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흥천사의 본래 사명(寺名)이 신흥사(新興寺)였고, 산내 암자였던 적조암(寂照庵)이 있어. 원래 신흥사 적조암에 봉안돼 있던 관음보살 삼존상의 기이한 인연이 신비롭다.
삼존구성의 경우 본존은 수월관음보살상이 보편적이다. 따라서 흥천사 관음보살상은 수월관음보살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로 앉아있는 좌상이며 화려한 보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명대 교수는 “온화한 얼굴과 잔잔한 미소 띈 얼굴은 관음보살 특유의 자비로운 모습 그대로”라고 밝혔다.
수월관음보살상에게 정병(淨甁, 물병)을 공양하는 선재동자상에 대해서는 “구도자의 모습을 살리고자 한 회심의 독특한 조각상”이라고 분석했다.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는 “용왕상은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공손한 협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한 상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은 “여러 시대를 걸쳐 흥천사에 봉안된 불상 중에서 수월관음삼존상 등은 희귀한 상”이라며 “형성배경과 도상·양식 특징, 조각사적 의의 등을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흥천사 목조 아미타불상과 대세지보살상 연구(심주완 조계종 호계원 팀장) △흥천사 명부전 석조 지장·시왕상 연구(주수완 고려대 전 교수) △흥천사 노전 약사(1829)·아미타·지장보살상 연구(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흥천사의 불교사상(문무왕 동명대 연구교수) △흥천사 창건기의 문화재, 흥천사 동종 조사의 감동(최응천 동국대 교수가) 등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학술대회 개회식에서 흥천사 주지 정관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흥천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성보문화재가 제대로 평가 받기를 바란다”면서 “문화재를 잘 유지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이 되도록 향후 3개년간 학술행사를 원만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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