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냐가 중요”

지난 10일 만난 서울 수국사 주지 호산스님을 만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스님은 38년의 출가 생활 동안 무언가 억지로 꾸며내려 하지 않았다. 다만 ‘진정성’있게 일을 진행했다. 어떤 일이든지 진심으로 한다면 잘 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학창 시절엔 그저 몸 쓰는 운동을 좋아했다. 우연히 접한 홍콩 영화 ‘소림사(少林寺)’를 보고 무작정 산 속에 있는 절에 찾아갔다. 절에 가서 스님들과 같이 지내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무술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한 번 두 번 발을 들이기 시작해 방학 때마다 절에 가서 살았다. 그렇게 제 집 드나들 듯 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때까진 단 한번도 ‘출가(出家)’의 마음을 먹지 않았다. 꿈 많은 사춘기 시절, 삭발염의를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가을 날. 오솔길에서 마주친 객스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까만 고무신에 빳빳하게 풀을 먹인 장삼자락을 입고 걸망을 멘 채 거슬림 없이 길을 떠나는 객스님의 모습을 한동안 쳐다봤다. “아 저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 호산(虎山)스님은 그렇게 부처님 인연을 맺었다. 이후 38년의 세월이 지났다.

국내 최대 스노보드 대회 개최
비인기종목 선수 묵묵히 지원

선수들 자연스럽게 불법 익혀
‘스포츠 포교’ 새 지평 열어…

‘나눔음악회’ ‘금강경 기도’ 등
머문 자리서 언제나 최선 다해
“뭐든지 진정성 있게…” 강조

호산스님의 법명 앞엔 으레 ‘스노보드 타는’이란 수식이 붙는다. 스노보드 문화가 활성화되기 전인 2003년부터 스님은 '달마배 스노보드대회'를 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 어느덧 국내 최대 스노보드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설상종목 은메달을 딴 이상호 선수가 이 대회를 통해 성장했다.

스님은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불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자연스럽게 포교가 되는 것이다. “처음엔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비인기 종목으로 제대로 된 지원과 관심을 못 받은 선수들은 단지 스님들이 또는 불교에서 대회를 열어준다는 것 자체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가 된다든지 메달을 따겠다든지 등 선수들이 꿈을 향하는 과정 속에 부처님 말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지금은 ‘스포츠 포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15년 전만 해도 “스님이 절에서 수행을 해야지 무슨 스키장에 가냐”는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스님으로서 수행의 길을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연이 닿는 곳곳마다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어디 있든지 간에 부처님 마음과 생각으로 불법에 맞게 일을 한다면 스키장 또한 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어디서나 주인 된 자세로 살면 그곳이 곧 진리의 경지라는 임제(臨濟)선사의 명언이 출가생활을 대변하는 좌우명이다.

호산스님을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문화 포교를 선도하는’이다. 특히 양평 상원사, 용문사에 이어 서울 수국사에서도 항상 열고 있는 ‘나눔 산사음악회’는 스님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역주민들에겐 신명나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자비나눔 행사로 대사회 회향까지 한다. 1석2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이제 웬만한 감독보다 산사음악회 연출을 잘 할 수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스님의 나눔 산사음악회는 유명하지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상원사 주지 시절이었어요. 선원을 불사하기로 마음을 냈죠. 그런데 의지와는 달리 막막했습니다. 특히 지역사회 낮은 인지도로 인해 불사금 모연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죠.”

그러나 스님은 무리하게 기금 모금을 강행하지 않았다. ‘상원사’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게 우선순위라 생각했다. 지역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산사음악회’의 시작이다. 지금은 사찰마다 진행하지만, 2000년대 초반엔 부처님 도량에서 음악회를 한다는 게 생소했다.

그러나 소리꾼 장사익 씨가 무대를 꾸민 첫 산사음악회는 상원사 마당을 가득 채울 만큼 성황을 이뤘다. 음악회도 잘됐고 불사도 잘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문화 포교하는 스님이 됐다. 불교의 이미지 상승도 덤으로 얻었다.

이렇듯 스님은 무언가 꾸며내고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수행한 선객답게 물이 흐르면 흐르도록 놓아뒀다. 다만 모든지 ‘진정성’있게 해냈다. “사실 문화 포교라고 하는데 저는 문화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진실한 마음으로 일을 하니 자연스럽게 잘 풀렸습니다. 부처님 법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진심으로 하면 무슨 일이든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스님은 본인을 ‘기도하는 스님’이라고 소개했다. 매월 21일 동안 ‘우리말 <금강경> 특별기도’를 5년간 지속하고 있다. 입법 활동을 하는 종단의 중앙종회의원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지만, 정성스럽게 직접 기도를 챙긴다. 바쁜 와중에도 <금강경> 기도는 빼먹지 않는다. 신도들이 변화하는 모습도 흐뭇하지만, 스님은 기도를 통해 자기 자신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종단 소임과 주지 일을 하다 보니 제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샌가 아상(我相)이 생기는 걸 느꼈습니다. 화도 내고 욕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금 32회 차까지 진행 중인 <금강경> 기도를 통해 스님은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아상을 비롯해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없애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상이라도 없애려고 노력중입니다.”

유난히 더운 올 해 여름, 어느 때보다 한국불교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스님은 “호기가 언젠가 위기로 바뀔 수 있는 게 세상사이듯 어느 시대라도 위기가 없던 적이 없었다”고 담담히 답했다. 그러나 “희망 없는 위기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게 스님이 입장이다. 한걸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이다.

“그간 시비는 우리 모두 공업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시비를 거두고 온전히 불교 발전을 위하는데 한 생각을 모아야죠.” 16대 후반기 중앙종회에서 사무처장으로 봉직한 스님은 최근 개원한 17대 종회에서도 사무처장 소임을 또 다시 맡았다. 소통하는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현실적인 종헌종법 개정 등 종회에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앞으로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을 뒷받침해 입법부와 행정부의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스님과 불자들 사이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스님의 목표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부처님 제자인 수보리가 불법을 배우는 과정이 녹아있는 <금강경>처럼 사는 것이다. “<금강경>엔 더 이상 올라갈 경지가 없는 궁극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방법이 나옵니다. 저는 여전히 부처님처럼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을 때까지 무던히 정진하고 기도하고 자비를 실천해야겠죠.”

호산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봉직하며 입법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역사회 활동에도 활발하다. 지난 10일 서울 수국사에서 만난 호산스님은 이날도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호산스님은

종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사미계를, 1986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을 거쳐 문경 봉암사와 해인사 김천 수도암 등에서 정진 수행했다. 양평 상원사 주지에 이어 8년간 용문사 주지를 맡아왔다.

2014년부터는 ‘황금사찰’로 유명한 서울 수국사 주지로 일해오고 있다. 16대에 이어 17대 중앙종회의원으로 봉직하며 입법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은평서부경찰서 경승실장과 고양행신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 지원하며 지역 사회 활동에 활발하다. 지난 10일 서울 수국사에서 만난 호산스님은 이날도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불교신문3443호/2018년11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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