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불교 3대 악법, 무엇이 문제인가’<下> 국토교통부 예규의 맹점

곰곰이 생각하면 사찰 토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사찰 토지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서 연유한다. 예컨대 국립공원에 편입된 사찰 토지는 국민들을 위한 ‘공공재’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립공원 안에 있지만 엄연히 사찰 소유의 땅임을 알리는 일에 인색한 정부도, 문화재구역입장료 징수에 불만을 터뜨리는 등산객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사찰 토지에 대해 최대 9배에 달하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딴판이다. 비영리 용도라 하더라도 어쨌든 ‘사유재산’이라는 점에 무게중심을 둔 조치로 보인다. ‘절 땅’이 어떤 때는 ‘국민들의 것’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스님들만의 것’이 되는 셈이다.

‘이현령비현령’식 해석은 도로표지판에까지 적용된다. 고속도로에 서 있는 녹색 이정표는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라에서는 여기에다 놀이공원은 안내해주겠는데 천년고찰은 못해주겠단다.

2010년 이후 본지에는 도로표지판에서 갑자기 전통사찰이 빠졌다는 제보가 꾸준히 접수됐다. 지자체가 도로 정비 차원에서 기존 표지판을 교체하다가 슬그머니 빼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대적으로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도로공사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전통사찰 등 문화유산이 표기된 도로표지판을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사찰이 표기된 190여 개 표지판 중 60여 개(중복 포함)가 실제로 내려지기도 했다.

조계종 중앙종회가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12월 ‘도로표지 개선방안’을 내년(2018년) 말까지 마련하겠다며 교계의 여론을 누그러뜨렸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에 따르면 국토부는 ‘도로표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겨놓은 상태다.

하지만 사실 ‘사찰 표기 삭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한국도로공사의 말마따나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표지판은 국토교통부 예규 제132호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라 설치돼 왔다. 웬만큼 이름이 있는 전통사찰이면 어렵지 않게 전국 도로의 이정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예규가 개정되면서 사달이 났다. 고속도로 관련 기준에서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국가지정문화재와 유네스코에 등록한 세계문화유산’이 제외된 것이다. 불법(不法)이라는 민원이 제기되면 곧바로 지워버릴 수 있는 빌미도 이때부터 제공됐다. 관광단지와 국립공원은 여전히 합법이다. 관광진흥법에 의해 종합휴양업으로 지정된 관광시설도 그렇다. 단적으로 말해 법대로라면 경주의 리조트는 돼도 불국사 석굴암은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조계종과 국토부는 실무자 선에서 이 문제를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안내대상(종단 사찰 22곳)과 더불어 여기에 세계문화유산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일단은 높다. 다수의 교구본사를 비롯해 세계문화유산 사찰 및 주요 문화재를 보유한 지역 명찰 등이 공식적으로 자격을 얻는다. 윤승환 총무원 기획차장은 “역사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인터체인지와의 거리가 멀어 국토부가 표기에 난색을 표하는 사찰이 일부 있으나,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게 종단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의 ‘도로표지 개선방안’에 대한 최종보고서는 내년 1월 나올 예정이다. 기획실장 오심스님은 “우리 문화재를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시설이 아니라 사사로운 특정종교시설이라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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