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땅설법’ 시연현장을 보고- 구미래 박사

삼척 안정사 주지 다여스님이 땅설법을 하며 신중신일대기를 설하는 장면.

신앙공동체로 이은 전승기반

지난 10월 27일, 삼척 안정사에서 펼쳐진 화엄성주대재와 땅설법은 여러 모로 놀라왔다. ‘땅설법’은 그간 대형 재회(齋會)를 마무리하는 회향설법이나 삼회향놀이의 속칭 정도로 여겨왔으나, 그 실체를 온전히 담은 의식이 강원도의 작은 사찰에서 치열하게 전승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으뜸신으로 섬기는 ‘성주신’을 화엄성중의 한 분으로 모시고 봉행하는 ‘성주대재’ 또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불교의례가 아닌가.

준비로 한창이던 전날 저녁 사찰에 들어섰을 때 상단에 모신 거대한 괘불과 마당을 가득 채운 갖가지 장엄이 모두 종이로 직접 만든 것임을 알았고, 재단은 호박ㆍ배추ㆍ무ㆍ당근ㆍ가지 등의 채소와 견과류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작은 틀에 한지를 씌우고 조명기구를 달아 만석중놀이에 쓸 그림자인형극을 연습하는가하면, 누각 마루와 마당에 남녀노소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화와 고임과 각단장엄을 마무리했다. 일손을 멈추고 수십 명이 함께 모여 행하는 땅설법 각 마당의 예행연습까지 모두가 적극적이고 즐거운 전승주체였다.

땅설법과 성주대재의 양상도 놀라왔지만 지금껏 이렇게 스님과 신도가 하나 되어 봉행하는 불교의례를 접한 적이 없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몇 달에 걸친 준비와 예행연습과 실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신앙심에 의지해 수십 년 째 하나하나의 의식을 귀하게 여기며 전승해온 것이다. “중간에 순서를 함부로 빼지도 못한다. 신도들이 전문가가 돼서 빼면 뭐라고 한다”는 안정사 주지이자 땅설법 전승자 다여(茶如) 스님의 말처럼, 거대한 천막 아래에서 이어져온 야단법석은 신앙공동체로 연결된 불법의 희열이 아니면 전승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강(講)ㆍ창(唱)ㆍ연(演) 어우러져

‘땅설법’은 부처님이 천상의 화엄성중에게 <화엄경>을 설하심에 대하여, 스님이 일반중생을 위해 설하는 법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래 스님들은 늘 대중을 향해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말씀을 쉽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고, 저잣거리에 나가 다양한 방식으로 불법을 전했으니 땅설법은 이러한 민간포교의 맥을 이은 것이라 하겠다.

김성순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민간포교를 맡은 스님들을 창도사(唱導師)ㆍ복강사(覆講士) 등이라 불렀고, 사찰법회에 일반대중이 널리 참석하면서 목청 좋은 스님들이 비유나 인연설화를 섞어 경전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속강(俗講)이 생겨났다. 〈고승전〉에는 이처럼 범패에 특별한 재능을 지녀 화속법사(化俗法師)ㆍ속강사(俗講師)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던 스님들의 전기가 실려 있다.

이렇듯 사람들을 모아놓고 운문과 서사문을 섞어 표현하는 구비연행을 ‘강창문학(講唱文學)’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법회의 시원을 속강ㆍ강창에서 찾는가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판소리가 불교의 강창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는 연구가 잇따랐다. 당나라에 세운 신라사찰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 머물렀던 엔닌 스님이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중국 화속법사의 풍습을 적었듯이 신라에도 이러한 강창이 널리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박통사〉에는 우란분절에 고려의 스님이 원나라 경수사(慶壽寺)에 초청되어 <목련경〉을 설했는데, 창의 형태로 읊는 뛰어난 역량으로 대중을 압도하여 구름처럼 몰려든 승속이 귀 기울여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여스님 또한 땅설법은 이야기 형태의 강(講), 가락을 실어 읊조리는 창(唱), 극적 요소의연(演)이 뼈대를 이루는 종합설법이라 했으니,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낸 극적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펼쳤던 고려 스님의 강창이 절로 연상된다.

안정사에 전승되는 땅설법은 재회의 신중권공 다음에 이어지며 의례성격에 따라 크게 석가모니일대기, 목련존자일대기, 신중신일대기, 성주신일대기, 선재동자구법기의 다섯 주제로 구분된다. 이번 시연회는 화엄성주대재였기에, 성주신이 부처님의 화엄회상법회에 참관하고 불법에 귀의해 화엄성중이 된 내력과 일대기를 완창하였다. 성주신일대기는 고조선부터 삼국을 거쳐 고려ㆍ조선ㆍ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당대의 역사와 백성의 사연을 주제에 맞도록 각색하여, 향가ㆍ시조ㆍ민요ㆍ판소리ㆍ창가는 물론 놀이와 단막극 등에 실어 전했다.

이렇듯 활짝 열어놓은 주제와 장르 속에서도 지켜야할 경계와 원칙은 분명히 설정해두고 있다. 부처님을 대신하는 법문이 아니기에 법사스님은 불단 앞에 비켜서서 가사 대신 장삼이나 두루마기에 미투리 등을 갖추고, 세속적 흥겨움을 유발하거나 승려의 위의를 흩트리지 않아야 하며, 악기 또한 법고나 장구로 제한하고 연주가 아닌 반주에 그치도록 하는 것이다. 불단ㆍ성주단ㆍ조왕단ㆍ조사단ㆍ영단 등 각단에 둘러싸인 마당에서 스님은 신도와 나란히 눈높이를 맞추어 연행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結界)는 엄정했다.

다여스님을 보면 옛 강창법사들이 불경뿐만 아니라 유교의 경전과 시문, 역사와 고전에도 밝아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자원을 지녔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처럼 강ㆍ창ㆍ연이 어우러진 땅설법은 불교와 연원을 함께하는 최일선의 민중포교 방식이었으나 오랜 세월 의례와 염불을 홀대해온 한국불교의 관습에 따라 자취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불교와 민속 집약된 성주대재

안정사에서는 윤달이 든 이듬해 시월마다 ‘화엄성주대재’를 봉행해왔다. 민간에서 섬기는 가신(家神)을 사찰에 모시게 된 내력은 불교의 수용과 함께한 신중신앙을 이해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이다. 〈화엄경 약찬게〉에 등장하는 신중은 39위로 고대인도의 범신론적 토속신이 해당되지만, 신중을 대상으로 신중도량ㆍ신중법석과 같은 본격적인 의례를 행한 것은 고려시대 화엄신중도량이 성행하면서부터이다. 이와 함께 점차 인도ㆍ중국ㆍ한국 등의 토속신이 대거 유입되어 조선시대에 이르면 '104위 화엄신중'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이들 신격은 상ㆍ중ㆍ하ㆍ로 분화되는가하면, 개별 신의 위상이 강조되면서 칠성신ㆍ산신ㆍ조왕신ㆍ가람신처럼 독립된 신앙의 대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104위 화엄신중 하단에 자리한 67번째 신중은 집을 지키는 옥택신(屋宅神)이기에, 안정사에서 옥택신을 민간의 성주신과 동일한 신격으로 해석한 것은 타당하다. 따라서 신도들의 가정을 옹호하는 신을 청해 모시고 감사드리며 부처님 법문을 듣게 하고, 그 공덕을 신도들에게 회향하는 의례를 펼치는 것이다. 의례의 절차는 각단시련에서부터 상단불공과 중단권공에 이어 성주권공을 행하면서, 성주신이 부처님의 인가를 받아 화엄성중에 좌정하는 의식을 재현한다.

이때 상단에 종이를 오려 모신 거대한 괘불은 중앙의 비로자나삼신불을 중심으로, 부처님이 일곱 장소에서 아홉 차례 〈화엄경〉을 설한 칠처구회(七處九會)를 형상화하고, 선재동자가 찾아 나선 53선지식의 위목(位目)을 각기 모셔 거대한 화엄세계를 표현하였다. 칠처구회를 그린 화엄변상도를 본 적은 있지만, 스님과 신도들이 종이를 오리고 접어서 거대한 화엄세계를 창조해낸 결과물은 그 정성과 신심이 무모하리만치 놀라왔다.

이렇듯 괘불에 표현된 세계가 평면적인 것이라면, 마당에는 직접 나무를 깎아 세운 53불 공양탑과 종이로 만든 칠층의 화엄보탑이 입체적으로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땅설법에서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법을 구하는 〈화엄경 입법게품〉의 백미가 인상 깊은 가락에 실려 염송되니, 괘불과 장엄과 땅설법이 화엄세계의 환희로움으로 일치된 야단법석이었다.

그런가하면 부처님오신날에는 〈법화경 견보탑품〉의 세계가 괘불로 조성되고, 허공보탑을 만들어 석가여래가 다보여래와 자리를 나눠앉은 이불병좌(二佛竝坐)를 표현하게 된다. 경전에서 묘사한 어떠한 세계도 몇 달에 걸쳐 승속이 힘을 합해 척척 만들어내고 의례가 끝나면 미련 없이 태워버리는 호방함과 여법함이 그곳에 있었다.

7처9회를 형상화한 7층의 화엄보탑을 설명하는 장면.

조선시대 감로탱의 의식장면을 연상시키는 설단의 요소들, 종이를 접고 오려 거대하게 형상화한 암수 한 쌍의 가릉빙가, 성주단에 장엄한 수파련(水波蓮)의 삼단구조 등 장엄과 설단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도 주목된다. 성주대재의 성립처럼 신중의례의 다양한 분화는 불교와 민속신앙의 깊은 친연성을 나타내고,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땅설법으로 화엄의 세계를 설명해가는 만다라적 포교방식 또한 기층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불교의 포용성을 담고 있다. 땅설법과 성주대재의 전승현장을 발굴한 불교민속학회에서는 앞으로 이들 불교무형유산의 소중한 맥이 끊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록하고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일에 힘쓰려 한다.

구미래 박사.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