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여직원의 ‘미투’ 고백으로 지사직에서 내려오고 정치인으로서 치명상을 입었다. 그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성추행 의혹이 거론되는 것 만으로도 정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 없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문학인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쌓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고은 시인도 한 후배 여성 시인의 ‘미투’로 무너졌다. 

사법부로부터 무죄를 받은 젊은 정치인과 죄가 불투명한 시인이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은 이유는 명예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도덕적·인격적 존엄에 대해 스스로 깨닫거나 다른 사람이 이를 존경 칭찬하는 것을 명예라고 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를 생활의 목적으로 삼고 지고(至高)의 선(善)을 향한 수단으로 여겼다. 

명예를 훼손당하는 것을 치욕스럽게 여겼기에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고 인격을 가꿨다. 명예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도덕이며 종교 윤리에 해당한다. 법이 외적 강제라면 도덕이나 종교 윤리는 내적 규율이다. 정치인 문학가가 법의 심판과 관계 없이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명예가 마음이 정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명예를 가장 중시 여기는 집단이 바로 종교다. 종교인은 가장 극단적인 도덕과 윤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부심이 남다르고 내적 강제력이 보통 사람의 기준 보다 훨씬 높다. 가령, 성직자가 아닌 일반 종교인이 지켜야 하는 5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키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이성을 만나지 않고 하루 한 끼만 먹고 심지어 잠까지 제한하는 출가자들의 청규는 고도의 자기절제와 엄격성을 요구한다. 물론 이를 어긴다 해서 법적 처벌이나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견디지 못한다. 종교인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도 바로 도덕 윤리 기준이 보통 사람보다 높고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학원 법진 이사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죄로 인해 사법부로부터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도 그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여전히 무죄임을 강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법진 이사장이 구족계를 수지한 부처님의 제자라면 출가자로서 자부심과 명예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길 것이다. 

세속의 이권을 분배하는 역할을 맡은 정치인 조차 사법부의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버리는데, 중생을 제도하고 탐욕을 버릴 것을 서원한 출가자가 불자의 가장 기본 계율인 불사음 계를 어기고도 얼굴을 들고 다닌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보다 못한 선학원의 창건주와 분원장들이 그의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사회에 제출한 분원장 해임 요구 건에 따르면 법진 이사장이 ‘분원관리규정’ 제17조 분원장 해임 조항 가운데 4개항을 위반했다고 한다. 법조항 위배 여부를 논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남이 마땅하다. 법진 이사장이 부처님의 제자라는 명예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시비를 일으키지 말고 한시바삐 물러나야한다.

[불교신문3449호/2018년1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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