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대학원 학비 요구한 노조
위장전입 피의자 징역형 선고하고
대법관 청문회 응한 위장전입 판사 
대기업 이익 공유 강제하는 정부 
목전 이익 정권 안위 집착하다…

중국 고대 처세술의 집대성이라 하는 <설원(說苑)>의 ‘담총(談叢)’에 이르기를 ‘나비 애벌레는 누에처럼 생겼고 뱀장어는 뱀처럼 생겨서 뱀이나 애벌레를 섬뜩하게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음에도 기꺼이 여자들이 누에를 치고 어부들이 뱀장어를 잡는 까닭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원의 편자로 알려진 유향(劉向)이 기원전 6세기 인물이니 고대로부터 먹고살고 돈 버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 주체 중에서 가계나 기업은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오로지 정부만 한가한 듯 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묘사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관에서 관객을 동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당시의 두려움이 밑바탕에 있지 않을까. 16살 위인 케인즈 경에게 젊은 하이에크(Friedrich Hayek)가 편지를 통해 촉발된 시장기능과 정부개입에 대한 논쟁에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샤워실의 바보”라는 언명을 들며 샤워할 때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쓰듯이 시장과 정부기능의 조화, 우선 급한 경제 현안에 대한 대처를 역설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오만한 이성과 원시인의 본능이 결합된 것이 사회주의 도덕으로서 이를 따르다보면 처참한 빈곤이 지배하게 되어 결국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했다. 요즘 우리사회를 풍미하는 정부의존의 확대와 사회주의적 도덕은 정부의 전지전능성을 전제한 치명적 자만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걱정된다.

한편 설원 정간(正諫)에 보면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아들 우(友)의 대화가 나온다. 당랑 즉 사마귀는 매미(蟬)를 잡으려고 노리고 있고 그 뒤에는 새가 사마귀를 노리고 있고 새 뒤에는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부차의 아들이 있고 그의 발밑에는 물웅덩이가 있는 상황에 이들 모두는 눈앞의 목표에만 집착하여 자신을 겨누고 있는 위험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일화이다. 당랑규선(螳螂窺蟬)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요구사항을 보자. 2017년 적자가 5253억원 인데도 월급 7.1%인상(호봉승급 1.4%별도), 근로시간 주당 37.5시간, 직원전용 휴양소 건립, 직원무료승차권 사용구간을 수도권(코레일 관할)으로 확대, 대학원까지 자녀 학비 지원, 서울과 평양 지하철 간 다양한 교류 사업지원 등 148가지를 요구했다가 사측이 거부하자 파업철차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저 협상용으로 내건 조건일 뿐이기를 바란다. 

노조에 감금당해 집단폭행을 당하고 가족까지 협박하여 무릎 꿇고 빌 수 밖에 없었으나 후환에 떨고 있는 기업 임원, 집단 폭행 후 핏자국을 지운다고 물청소까지 했다는 노조에 대한 검경과 법원의 미온적 태도. 4조원 상당의 세입결손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서도 나름의 대책에 대한 설명도 없이 국채발행으로 미래세대에 책임을 넘기겠다는 정부 여당. 자신은 수차례 위장전입을 하고서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한 판사가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되겠다고 청문절차를 밟는 지경. 대기업의 이익을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과 공유할 것을 법제화하겠다는 정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도 나누겠다고 협상하는 와중에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파업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하는 노조. 취약계층 채무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예산이 아닌 은행에다 빚을 깎아주라고 압박하는 금융당국.

목전의 자기 이익이나 정권의 안위에 집착하다 보면 국가 대계나 거시적인 대세를 그르친다. 오만한 이성은 치명적 자만이다. 뒤에서 당랑규선처럼 국민이 노려보고 있음을 명심하자.

[불교신문3449호/2018년12월15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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