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무학대사 부도탑에 승천하는 용처럼…

무학스님 부도탑 몸돌에 조각된 승천하는 용. 표면에 용과 구름이 가득 새겨져 있다. 용의 머리와 몸,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구름문양이 생동감을 더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 그런데 올해 신년 광고는 정감이 간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이어 하늘을 힘차게 오르는 항공기의 날갯짓…. 번득이는 기발함은 없지만 새해를 맞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배어있다. 아이의 미소는 때 묻지 않은 초심과 같다. 항공기의 비상은 스스로 담아내고 싶은 큰 꿈, 그 꿈에 닿기 위한 역동적인 몸부림이다. 용의 승천 모습과 닮아있다. 이렇게 맞물려 있는 두 가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신년 구상하기에 좋은 곳이 떠올랐다. 양주 회암사지(사적 제128호)와 회암사다.

광고와 연관되어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그 곳에 있는 무학대사 부도탑(보물 제388호)에 새겨져 있는 용의 모습이다.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 사이로 스스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승천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기해년 힘찬 기운을 받아 새해를 서원하기 제격이다.

폐사지에 가보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의 증거인 화석과 공통점이 떠오른다. 골격과 윤곽에 상상의 나래를 더하면 사라졌던 존재가 드러난다. 절터는 규모와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직접 마주할 때의 절기와 시간 그리고 마음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가을 황혼녘 뺨을 스치던 바람 한줄기와 함께 홀로 마주했던 경주 황룡사지의 울림은 인생 최고의 정면으로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감성에 치우치기 보다는 보이는 기단과 주춧돌에 기둥과 부재를 더해 충실히 전각을 쌓아 올리듯 회암사지에서 새해를 설계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지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회암사지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은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수많은 유물을 수집, 보관,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전기까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 왕실사찰 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조명하고 당시 조선왕실과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전망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회암사지.

조선전기 당시 대가람의 배치는 천보산 남쪽 계곡을 흙으로 메우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으로 평지를 조성해 총 8개의 단지로 구성되었다. 이를 크게 4부분으로 구분해 박물관 1층에 넓은 공간을 할애해 모형으로 전시했다. 이것만 보아도 회암사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회암사지는 일반적인 사찰 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나 방식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용 문양의 기와와 봉황 문양 기와 그리고 청기와까지 출토되었다. 특히 청기와는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 청색이 드러나도록 구워 낸 것이다.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염초는 군수문자인 화약의 연료였기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제작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 또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므로 궁궐이나 왕실 원찰의 일부 건물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출토된 청기와는 모두 수키와이고, 주요 전각 터에서 1~2점만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전각 지붕에 상징적으로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 이채로운 것은 회암사지의 중심건물인 보광전 터에서 발굴된 토구이다. 토수는 처마 끝에 돌출된 목재(사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식기와로 사래에 끼울 수 있도록 내부가 비어 있는 사각뿔 형태로 제작되었다. 내부에는 사래를 고정했던 못이 남아있다. 조선후기 궁궐 토수와는 달리 용의 모습을 하고 있어 조선전기의 토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여러 스님들 원력으로 불사가 이뤄진 회암사.

박물관에서 회암사지를 바라보고 왼쪽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발굴 작업이 마무리된 사지의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사지를 보고 있으면 사찰의 창건 그리고 이어진 최대 가람의 풍모, 그리고 현재 폐사지의 모습까지 여러 장면이 겹쳐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나고 자라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다시 조금만 더 오르면 지공, 나옹, 무학스님의 사리탑과 영정이 모셔져 있는 회암사가 있다. 여러 스님들의 기도와 원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관음전, 삼성각 등의 불사가 이뤄졌다. 오른쪽으로 이번 여정의 단초이며 대가람을 일군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스님의 부도탑이 석등과 함께 있다. 

새해의 기대와 희망 여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처음의 마음가짐, 찬란했던 대가람 터 앞에서 천천히 그러나 힘차게 새해 설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회암사지박물관 전경.

 

박물관 1층에 넓은 공간을 할애해 만든, 대가람을 이뤘던 조선초기 회암사의 축소모형.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부처님. 크기가 작고 뒷면이 편평해 불전 벽면을 장엄하던 불상군의 일부로 추정된다.

[불교신문3456호/2019년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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