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팔공산에 계시는 은사 스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자우야~ 너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 좀 갈 수 있나?” 아는 분의 오빠가 스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한다. 하던 일들을 급히 정리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6주 전 그녀의 오빠는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대구의 한 병원을 방문했고 폐암말기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다! 아직 할 일이 많아, 살겠다는 일념으로 명의를 찾아 서울대 병원으로 온지 열흘이 되었다. 어제 지방에서 온 동생에게 “동생아! 나 스님 뵙고 위로받고 싶어. 제발 나에게 아무 스님이나 모셔와 줘”한다. 오빠는 평소 그리 신심 있는 불자는 아니었다. 1년에 한 두 번 초파일 절에 가서 밥 먹고 오는 정도였다. 동생은 병원 측에 근처에 사찰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스님을 모셔올 수 있는지를 의논했다. 모두 모른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팔공산에 계신 은사 스님께 전화를 했고, 스님께서 나에게 연락하신 것이다. 그는 밤사이 혼수상태가 됐고 그의 부탁은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렸다. 

나는 죽음과 직면하여 호흡을 가빠하는 환자 곁에서 죽음의 과정에 대한 설명과 아미타부처님 가피를 청하는 발원을 하고, 아미타불을 나즈막히 불렀다. ‘아미타부처님이시여! 지금 죽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 가엾은 중생의 고통을 멈추어 주시고, 부처님 품안에서 평안하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음률에 맞추어 한참을 염송하고 나니 어느새 호흡이 놀라울 정도로 고요해 지고 얼굴도 평안해 졌다. 순간, 병실은 고요와 평화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동생도 놀라워하며. “스님, 이상해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슬픔이 사라졌어요” 한다. 이 후로 그는 잠깐 깨어났고, 가족들은 이별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새벽 1시 혼자만의 길을 떠났다. 

죽음이 평화로워야 다시 돌아 오는 영혼이 아름다울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또한 가족들의 슬픔을 감사와 연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병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님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갖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리라.’ 걱정스레 바라보는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본다.

[불교신문3456호/2019년1월16일자] 

자우스님 논설위원·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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