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은 부처님과 함께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 보내고 새해 맞이’> ”

흐엉사의 동굴사원에서 불전에 기도를 올리는 모습.

정초를 부처님과 함께

정초가 되면 베트남은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다. 거리는 물론 집과 건물마다 귤나무 화분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세우고, 소망을 적은 글을 걸거나 붉은 띠로 장식한다. 주렁주렁 달린 황금색 귤이 복과 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수를 뜻하는 복숭아꽃이나 황국을 두기도 하는데, 모두 개화기간이 길어 복이 오래 머문다는 믿음이 담긴 풍습이다.

그들의 송구영신은 부처님과 함께 한다. 설 일주일 전부터 연초까지 새해 소망을 간직한 이들로 절마다 발 디딜 틈이 없고,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절을 다니면서 남녀노소 없는 전 국민의 순례행진이 이어진다. 정초기도를 뜻 깊게 올리고자 전국에서 찾아드는 절도 있게 마련인데 북부의 대표적인 곳이 흐엉사(香寺)이다. 나룻배로 옌강의 아름다운 절벽과 마을을 가로지르며 만나게 되는 흐엉사는, 향적산(香跡山)에 있는 15개 사원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동굴사원은 관음보살이 머물렀다는 성지로 흐엉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동굴 깊숙한 곳의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기 위해 두 팔을 높이 뻗는다. 이 물을 ‘부처님 어머니의 모유’라 하여 조심스레 얼굴에 문지르며 간절한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곳의 또 다른 대표사찰 천주사(天廚寺)는 ‘하늘의 부엌(天廚)’이란 독특한 이름을 지니고 있어 그 신앙배경을 궁금하게 만든다. 

베트남에서는 부엌신에게 제사 지내는 조군절이 12월23일이다. 세 명의 조군이 일 년간 집안일을 하늘에 보고하러 갔다가 섣달그믐에 돌아오니, 조군을 잘 섬겨야 옥황상제께 좋은 말을 많이 해줄 것이다. 이에 조군이 하늘을 왕래할 때 타고 간다는 잉어를 제상에 올리고 잉어방생을 하는가하면, 설날아침 물장수에게 물을 사서 물통에 가득 축수(畜水)하면 복을 많이 받는다고 여긴다. 

모두 우리의 조왕신, 정초방생, 복조리와 겹쳐지는 풍습들이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새해의 복을 비는 마음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 가운데 잉어가 있다.

효와 치유의 명절

베트남에서 ‘부란절(우란분절)’이라 부르는 칠월 보름은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따라서 5일경부터 거리마다 축제분위기가 넘치고 절마다 신도맞이 준비로 바쁘다. 부란절은 조상공양의 날이자 어버이날이기도 하여, 부모님께 장미꽃을 달아드리고 세족식과 절을 올리는 한편 부모와 조상을 위한 기도를 올리려 너도나도 절을 찾는다. 

우리의 합동천도재와 같은 모습이지만 살아계신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 모두를 위한 기도인 점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줄 이 없는 고혼을 위해 지전과 옷가지를 태우며 기도 올리고,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전쟁희생자들을 위해 비어있는 ‘바람무덤’을 만들어 방황하는 영혼이 쉴 곳을 만들어준다. 부란절이 있는 주에는 심신을 정결히 하고 채식으로 제계(齋戒)를 하여 참된 효와 공덕을 실천하는 문화를 보여준다. 어버이날과 우란분절과 수륙재가 결합된 듯한 부란절을 보며, 나의 부모ㆍ조상을 넘어서서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는 날로 자리한 명절에 숙연해지는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젊은이들은 입시철이나 새해에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를 찾는다. 이곳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국자감과 함께 1484년부터 삼백년간의 과거급제자를 기록한 82개의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가 천광정(天光井)이라는 연못 주변에 도열해있기 때문이다. 진사비는 모두 거북의 등 위에 세웠는데, 무수한 이들의 손길로 반질반질 새까맣게 윤이 흐르는 거북의 머리는 과거급제를 한 선인들처럼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 

부란절을 맞아 가게 앞에 차려놓은 제사상.

우리는 산속에 절이 있지만 베트남에는 마을마다 하나씩 절이 있다. 절과 함께 사당과 정(亭)이 있는데 사당은 마을제사의 대상인 성황신을 모신 곳이고, 정은 마을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이자 신앙적 기능도 지녔다. 따라서 명절날 집의 제단에 조상제사를 올리고 절을 찾아 기도하는 일이 가정단위로 이루어진다면, 정에서 주관하는 마을제사를 지내고 축제와 놀이를 펼치는 것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행사이다. 불자들 중심으로 절을 찾는 우리에 비해, 명절과 깊이 결합된 베트남불교는 민간의 삶과 하나 된 생활불교임을 느끼게 한다.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긴 떡

우리는 아이를 점지하고 돌보는 삼신할머니를 1인이나 3인으로 여긴다. 태(胎)의 우리말이 ‘삼’이기에 삼신은 ‘탯줄을 관장하는 신’을 뜻하지만, 3인의 신(三神)이라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베트남의 삼신인 ‘바무’는 자그마치 열두 명이어서 삼신상에 올리는 것도 무엇이든 12인분을 차려야 한다. 잉태를 바랄 때 ‘바무’를 모신 절에 가서 기도하는가하면, 짐짓 ‘부처님께 아이를 팔았다’는 말을 하고 절의 인장을 새긴 옷을 입혀서 악귀가 아이를 건드릴 수 없게 하는 풍습도 전한다. 

삼신의 수는 십이지(十二支) 또는 열두 달이라는 시간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 자신의 십이지 띠를 가지고 태어날뿐더러, 일 년 열두 달을 보살펴주니 삼신으로 더없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십이지동물이 소 대신 물소, 양 대신 염소, 토끼 대신 고양이로 토착화되어 있다. 고온다습한 데다 초원이 부족해 소와 양과 토끼는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아 잘 볼 수 없기 때문이고, 토끼 묘(卯)와 고양이 묘(猫)의 발음이 같기에 고양이가 선택되었다. 

혼인에 관해서는 “열 마리 돼지로 아내를 얻었어도 ‘째오’를 내지 않으면 아내를 잃는다”고들 말한다. 째오는 신랑이 신부 마을에 내는 돈으로, 혼례날 신랑이 신부집 문을 넘기 전에 마을사람들이 훼방을 놓아 혼인세를 내고서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같은 마을 남녀끼리 혼인했기에 다른 마을 신랑이 신부를 데려가면 째오 금액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공동체의 구성원 한 명을 잃는 것이기에 상실에 대처하는 풍습인 셈이다. 

혼례 때는 베트남어로 부부라는 뜻의 ‘푸테’ 떡이 빠지지 않는다. 찹쌀가루에 녹두, 야자열매, 설탕, 깨 등을 넣고 둥글게 빚어 바나나잎에 싸서 찌는데, 떡이 완성되면 하나하나를 야자잎으로 사각모양이 되게 싸서 붉은 끈으로 묶어 내놓는다. 찰진 찹쌀처럼 부부애가 좋기를 바라고, 사각 잎을 풀면 둥근 떡이 나오게 하여 남녀와 천지의 음양조화 이치를 담았다. 찹쌀의 흰색, 녹두의 황색, 깨의 흑색, 야자잎의 청색, 끈의 적색으로 오행의 기운까지 두루하니 떡 하나에 담긴 뜻도 심오하다. 

베트남 중부마을 민가에 조성된 제단. 그림=구미래

삶 속에 함께하는 무덤

베트남 속담에 “아이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노인이 죽으면 축제를 한다”는 말이 있다. 통곡하는 상주들의 슬픔과 나란히, 연로하여 맞는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의례가 축제일 수 있는 것은 내세의 또 다른 탄생을 축복하는 가운데 산 자들이 죽음을 극복해나가는 문화적 장치이다. 노인이 죽으면 폭죽을 터뜨리는 풍습도 전하는데, 이는 축제의 의미보다는 한 인간의 세계가 바뀌었음을 사회적ㆍ초자연적 모든 존재들에게 알리는 신호탄이라 봐야 한다. 

빈소에서는 스님을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한편으로 악사들이 장례음악을 연주하고, 농촌의 상여행렬에는 북과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부는 마을청년들이 선두를 이끈다. 베트남장례에서 독특한 점은 매장을 하고나서 몇 년 지나 무덤을 열고 뼈를 수습한 뒤 다시 매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장은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여러 문화권의 전통장례풍습을 공유하는 것이자, 홍수가 잦은 그들의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뼈만 추려서 유골함에 담아 시멘트무덤을 만들면 수마에도 끄떡없기 때문이다. 화장을 한 경우와 함께, 베트남의 무덤이 봉분이 아니라 대개 시멘트인 이유이다. 

그런데 베트남의 마을을 지나다보면 집 근처나 논밭에 즐비한 무덤을 흔히 보게 되듯이, 이러한 무덤은 산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않고 생활반경 안에 있다. 집집마다 가장 중요한 곳에 조상을 모시는 제단을 조성하고 집 근처에 무덤을 두어 돌보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일상의 삶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조상제사는 간소한 제물을 차리고 수시로 올리지만, 설이나 부란절과 같은 큰 명절이면 며칠에 걸친 제사를 마무리하면서 ‘화방’ 제사를 올린다. 화방이란 부적을 태운다는 뜻인데, 저승에서도 이승과 똑같은 물품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 종이로 만든 온갖 제품이 시중에 판매된다. 심상준 선생에 따르면 이날 사람들은 벤츠자동차, 스마트폰, 식탁, 침대, 의자가 풀 옵션으로 된 빌라 등 정교하게 만든 종이제품들을 불에 태워 조상에게 배달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품이 점차 고가를 치달아 사회문제까지 되고 있다니 그들의 맹렬한 조상숭배가 놀라울 따름이다.

[불교신문3458호/2019년1월23일자]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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