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걷기를 일과처럼 하다 보니 아파트 뜰에서 일어나는 일이 흡사 내 집 일처럼 소상하게 다가온다. 

엊그제 아침 걷다보니 까까깍! 까까깍! 까치소리가 요란했다. 아파트 5층 높이의 벚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까치집에서 두 마리 까치가 부산을 떨며 내는 소리였다. 오래된 우리 아파트에는 사람들은 점잖고 소리소문 없이 살건만 뻔질나게 짝짓기 하는 고양이와 까치, 직박구리들이 저희 세상인양 떠들썩하게 산다. 

그런데 이날은 패싸움 잘 벌이는 직박구리 떼는 안보이고 까치들끼리 아우성이었다. 유심히 보니 까치둥지를 뜯어내는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즈이들도 집수리를 하는건가?’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가 오늘 문득 생각나서 올려다보니 휑하니 비어있었다. 까치집 있던 곳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 주변나무를 샅샅이 살펴봐도 흔적조차 없었다. 내 눈이 의심스러워 하루 스물 네 시간 중 반 이상을 노인정과 정원에서 소일하는 남해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이사 갔어! 며칠 전부터 이 까치집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저기 전봇대 위로 자꾸 옮겨가더라고. 나 참! 살다 살다 별 신기한 걸 다 봤어, 나중에는 까치집 바닥에 깔렸던 깃 방석까지 물고 가더라니까!”

까치집 바닥에 깃방석 같은 깔개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까치가 묵은 집을 재활용한다는 것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과연 할머니가 가리키는 전봇대 쪽으로 가보니 이웃아파트 담 쪽으로 서있는 전봇대 남향받이에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다. 옹송한 까치집을 보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문득 “청춘일 때는 달로 향하는 다리나 지상의 왕궁을 만들려 한다. 중년이 되면 그 대신에 헛간이나 짓기로 한다”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해 부턴가 해가 가거나 오거나 덤덤해지고, 그저 제시간에 일어나 끼니를 때우고 몇 시간 쯤 글과 씨름하며 얼마간의 정원 걷기만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하고 싶은 일도, 바랄 것도 없는 삶. 그야말로 헛간조차 안 짓는 일상이었다. 새봄에 새끼를 치려고 좀 더 외지고 포근한 둥지로 이사한 까치 한 쌍을 보며 새삼스러이 올 한해의 소망을 다잡아 본다.

[불교신문3458호/2019년1월23일자]

김숙현 논설위원·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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