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보현의집 1000만원 후원 뒤 숨겨진 이야기

“나 혼자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태 후원 한번 제대로 못해봤어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매번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이번에 좋은 일을 하게 되니 기분 참 묘하고 좋더라구요. 우리 같은 노숙자들 가운데는 사실 소년소녀 가장 출신도 많거든요. 그래서 더 도움이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이유가 어찌됐든 우리가 자발적으로 모든 돈이 힘들게 사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도 가고 생활비로도 쓰인다니 기분 좋지요.”

노숙인 재활 시설 영등포보현의집에서 생활하는 김용헌(가명)씨는 얼마 전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지난해 시설 이용자들과 함께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자전거 국토 종주 프로그램’을 펼친 것. 김 씨와 시설 이용자들은 지난 10일 국토 종주를 통해 모연된 후원금 가운데 1000만원을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달라”며 영등포구청에 기탁했다. 

처음엔 단지 노숙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일깨우려 시작한 자전거 국토 종주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후원 프로젝트가 될 줄 몰랐다. 김 씨는 “집과 직장을 잃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린 노숙인들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함께 국토 종주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단순히 자전거 타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며 “종주를 한 거리만큼 후원금을 모아 이왕이면 뜻 깊은 일에 쓰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다들 기꺼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일에 쓰자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참가 열기는 더 높아졌다. 10월 있을 종주를 위해 폭염이 내리쬐던 7월 여름부터 예행 연습에 돌입, 하루 35km, 49km, 66km를 달렸다. 연습이 빛을 본 건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설 이용자 11명과 스텝 4명 등 총 15명이 참여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6박7일 동안 약 550km를 종주를 낙오자 없이 끝냈다.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시, 하나은행, 현대 그린푸드, 펠레스포츠 등 기업은 물론 영등포보현의집에서 운영하는 ‘내생애에스프레소’ 등도 후원의 뜻을 비췄다. 

“받기만 할 때는 몰랐어요. 제가 받은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요. 주는 사람 입장이 되어 보니 조금 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 무엇보다 즐겁고 뿌듯하단 생각 뿐 아니라 후원을 주는 입장에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김 씨를 비롯한 영등포보현의집 시설 이용자들은 올해도 자전거 종주를 계획하고 있다. 후원금 모연은 정해진 바 없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종주 참가자들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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