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일제 침탈 시기 당간에 태극기를 걸다

기사승인 2019.01.23  17:01:53

공유
default_news_ad2

- 황해도 성불사 극락전앞, 1909년 촬영 '추정'

23본산 황해도 성불사 극락전 앞마당의 당간을 활용한 게양대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 실려
태극 문양· 건곤 ‘괘’ 확인 가능
법주사 천왕문 ‘삼색 태극문양’
패엽사 법당엔 친일 주련 ‘아픔’

일제의 식민지 야욕이 본격화 되던 시절 법당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천왕문에는 삼색(三色) 태극문양이 선명한 사진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작업을 거쳐 최근 펴낸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에 실린 황해도 정방산 성불사와 충북 속리산 법주사 사진이 그것이다. 성불사 사진은 극락전 앞마당 당간(幢竿)을 활용한 게양대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모습이다.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卦)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건과 땅을 표현한 곤의 괘가 분명해 보이는 사진이다.

예로부터 당간은 사찰에서 법회나 행사가 열리는 사실을 전하는 깃발을 거는데 사용했다. 평상시에는 비워 놓거나 사찰의 종지(宗旨)를 상징하는 당(幢, 깃발)을 걸었다. 따라서 태극기를 당간에 걸었다는 것은 촬영 당시 성불사 스님들이 민족의식이 강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제강점기 법주사 천왕문 모습. 흑백 사진이지만 천왕문 입구 양쪽에 삼색 태극문양이 선명하다. 출처='조선사찰31본산사진첩'

이와함께 법주사 사진은 천왕문(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 입구 양쪽에 삼색 태극문양을 그려 놓은 모습이다. 현재 천왕문에는 삼색태극 문양이 사라지고 없다. 지운 것인지, 색을 입힌 것인지 태극문양이 없어진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번에 펴낸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8월29일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발간한 것을 토대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리건판 가운데 31본산 관련 사진을 보수해 담았다. 사진첩 발행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성불사 극락전 앞 태극기와 법주사 천왕문 태극문양은 매우 이례적이다.

성불사 태극기 사진은 대한제국 순종황제 시절인 1909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7월 12일 기유각서 사건으로 소네아라스케(曾禰荒助) 통감이 사실상 실권을 장악한 암흑기였다. 성불사 극락전은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당시 불타 없어졌고, 1957년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2본산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 한산보전 어간 양쪽에 ‘內鮮一體(내선일체)’와 ‘信仰報國(신앙보국)’이란 주련이 걸려 있다.  출처 =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

성불사는 31본산 가운데 23본산으로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23년(1374) 나옹(懶翁)화상이 중창했다. 이은상이 29살 되던 1931년 성불사에 왔다 지은 가곡 ‘성불사의 풍경소리’로 유명하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 구나, 저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

법주사는 5본산으로 신라시대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진표율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지는 호서(湖西) 제일 가람이다.

이와달리 친일 내용을 담은 주련(柱聯)을 법당 앞에 내건 사진도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에 실렸다. 22본산 황해도 신천군 구월산 패엽사(貝葉寺)가 그곳이다. 패엽사 한산보전(寒山寶殿) 어간(御間) 양쪽에 ‘內鮮一體(내선일체)’와 ‘信仰報國(신앙보국)’이란 주련이 걸려 있다. 내선일체는 내(일본)와 선(조선)이 한 몸이라는 의미로,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내건 구호이다. 신앙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신앙보국은 친일에 협조하라는 노골적인 뜻이 담겼다.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글씨 위에는 각각 일장기가 확연해 사찰까지 불어 닥친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을 엿볼 수 있다.

패엽사는 신라 시대 법심(法深) 스님이나 구업(具業) 스님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하는 고찰이다. 패엽사가 자리한 구월산은 서쪽 제일의 명산이다. 동쪽 금강산, 남쪽 지리산, 북쪽 묘향산과 더불어 ‘조선 4대 명산’으로 꼽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사찰 31본산 884건을 비롯해 2300여 건의 사찰 디지털 사진자료 등 유리건판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은 이 가운데 31본산의 사진을 수록했다. 태극기와 태극문양 외에도 창호지로 만든 주련과 부처님오신날 모습 등 일제강점기 불교계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수록돼 있다. <후속보도 예정> 근현대불교사를 이해하고 일제강점기 조선불교의 생생한 현장을 확인하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 표지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에 실린 성불사 태극기, 법주사 천왕문 태극문양과 패엽사 친일 주련은 일제의 침탈 당시 조선불교의 양면을 보여준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 자랑스러운 사실도 부끄러운 일도 역사이기에 이 사진들은 지금은 물론 후대의 불자들에게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 31본산 

일제가 1911년 조선 사찰을 관리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공포하며 지역을 나눠 30본산을 설치했다. 1924년 11월 20일 ‘사찰령시행규칙’을 개정하며 화엄사를 포함해 31본산 제도를 확립했다. 본산 주지는 총독이 말사 주지는 도지사의 임명을 받도록 하여 불교를 친일화하는 제도로 삼았다. 31본산은 다음과 같다.

경기(봉은사, 봉선사, 용주사, 전등사), 충북(법주사), 충남(마곡사), 전북(위봉사, 보석사), 전남(대흥사, 백양사,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경북(동화사, 은해사, 고운사, 김룡사, 기림사), 경남(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황해(패엽사, 성불사), 평남(영명사, 법흥사), 평북 (보현사), 강원(건봉사, 유점사, 월정사), 함남(석왕사, 귀주사).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