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신부가 만나 종교와 장애를 만나다’ 세미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담준스님이 1월26일 서울 조계종 중앙신도회관 선운당에서 열린 ‘스님과 신부가 만나 종교와 장애를 만나다’ 세미나에서 ‘장애에 대한 불교윤리학적 이해’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은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지어 그렇다’는 설(說)이 종교적 인과론을 잘못 이해하고 단순한 인과응보식 사고에만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신체적 장애를 전생의 업으로 관련지어 설명하려 드는 것은 부처님, 하느님 가르침을 왜곡 또는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되레 사회적 편견까지 만들 수 있어 인식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담준스님은 오늘(1월26일) 서울 조계종 중앙신도회관 선운당에서 열린 ‘스님과 신부가 만나 종교와 장애를 만나다’ 세미나에서 ‘장애에 대한 불교윤리학적 이해’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이번 세미나는 장애인 불자 모임 보리수아래 최명숙 대표가 장애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공유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마련했다.

담준스님은 서구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먼저 거론하며 “중세 시대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마치 사탄이 들렸다거나 악마와 계약을 한 자로 취급했다”며 “이러한 고중세 시대 서구의 장애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장애와 비장애, 완전과 불완전, 정상과 비정상 등 대립적 인식을 낳고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경제, 사회적으로 당연한 듯 박탈시켜왔다”고 말했다.

담준스님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장애인에 대한 국가 정책이나 사회 인식은 서구식 ‘차별과 배제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척추장애를 갖고 있어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허조, 기형아로 태어나 생육신이 된 권절,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인으로 우의정을 한 윤지완 등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요직에 오른 인물들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을 특별히 차별하거나 구분 짓지 않았다.

스님은 “관직에 오른 인물만 봐도 조선시대 당시 장애인은 몸이 불편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고 서구 이분법적 사고가 유입되면서부터 장애인을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보다 세상과 격리하고 고립시키는 방식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님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 또한 이 같은 왜곡된 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장애는 신체적 결함을 말하기 보다 수행이나 깨달음 추구에 방해가 되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같은 마음의 장애를 지칭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만약 장애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주변부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면 성숙한 시민, 부처님 제자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시각장애를 지녔지만 수행정진을 통해 천안제일 지혜의 눈을 얻은 아나율, 지적 능력이 떨어지지만 끝없는 정진으로 아라한 지위에 오른 주리반특 등 경전 속 수행자들 모습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불교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스님 주장이다. 다만 담준스님은 “한편으로는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 법을 부정하거나 비방한 자들이 비록 인간의 몸을 받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는 식의 부정적 묘사도 확인된다”며 “그러나 ‘경전에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만으로 특정 부분을 이용하거나 인간평등이라는 ‘붓다의 가르침’ 그 핵심을 왜곡해선 안된다”고 했다.

‘전생의 업 때문에 장애를 가졌다’는 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장면이 경전에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확대 및 왜곡하거나 불교 인과설이 마치 통속적 인과응보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 스님 주장이다. 담준스님은 “붓다의 가르침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파되고 그 나라 풍토에 맞게 변화하면서 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전생에 부처님을 비방했다고 해서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주장 이전에 현재 한국 사회, 한국 불교에서는 인간평등에 대한 천명과 실천이 붓다의 가르침에 훨씬 가깝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톨릭에서 장애의 이해'를 주제로 발제한 이수철 신부.
'불경과 성경에 나타난 장애'를 주제로 발표한 이계경 포교사.

‘가톨릭에서 보는 장애와 종교’를 주제로 발제한 이수철 전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체적 장애가 없더라도 하느님을 참으로 믿지 않는다면 장애를 가진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며“신체적 장애와 상관없이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의미를 하느님에게 두고 기도에 전념하는 이를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철 신부는 “교회에서는 남을 무시하고 차별하거나 스스로 절망하는 것을 ‘죄’를 짓는 것으로 보고 오히려 태어나며 얻은 장애, 뜻밖의 사고로 얻은 장애에도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기는 자를 자유로운 자로 본다”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많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님과 신부 발제에 대해 이계경 조계종 포교사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행위 그 자체만을 뜻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업이 현재의 삶을 결정한다는 견해, 과거의 업이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견해 두가지 모두 부정하셨다”고 짚었다. 이 포교사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거부하고 중도의 관점에서 업을 설하신 부처님께서는 ‘장애의 원인이 과거의 어떤 바르지 못한 행위의 결과’라고 하는 숙명론적 장애관을 타파하고자 하셨다”며 “‘출생을 묻지 말고 단지 행위를 물어라’하신 부처님 말을 따라 외면적인 것, 신체적 생물학적 요소에 대해서는 업의 작용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미나에 앞서 보리수아래 회원 이상복 씨가 ‘내가 바라보는 종교’를 주제로 발표했으며 홍현승 씨는 이여진 포교사 도움으로 시 ‘그분이 바라보는 마당에서’를 낭송했다.

서울 조계종 중앙신도회관 선운당에서 열린 ‘스님과 신부가 만나 종교와 장애를 만나다’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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