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감산사지 아미타여래상, 미륵보살상 연계행사

신라시대 김지성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조성한 감산사 아미타여래상. 상호가 남성적인 이미지이다.

1300년 전 신라 성덕왕 18년(719). 지금의 중앙정부의 고위직에 해당하는 ‘집사시랑(執事侍郞)’을 역임한 김지성(金志誠)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찰을 세웠다. 지금은 터만 남은 경주 감산사(甘山寺)이다.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 권3 탑상(塔像) 제4 남월산(南月山)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仁章) 일길찬(一吉飡)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觀肖里) 부인을 위해 정성을 다해 감산사를 한 채를 조성하고 돌미륵 하나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미륵보살상은 감산사 법당에 주불로 봉안됐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김지성은 서라벌 동남쪽 20리쯤에 감산사를 창건하고 석조불상 2구를 조성했다.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상(높이 183cm)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여래상(높이 174cm)을 모셨다. 아미타여래상 상호(相好)는 남성, 미륵보살상은 여성의 이미지가 보인다.

미륵보살상과 아미타여래상의 화광(火光, 광배) 뒷면 금석문에 사찰과 석불을 조성한 까닭이 기록돼 있다. 미륵보살상 광배 후면에는 ‘開元七年己未二月十五日(개원 칠년 기미 2월15일)’라는 시기까지 분명하다. 개원 7년은 서기 719년에 해당하며, 2월15일은 음력이다. 올해로 조성 1300주년을 맞이했다. 그 뒤로 미륵보살상과 아미타여래상은 1915년 무렵에 경성(서울)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신라시대 김지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감산사 미륵보살상. 상호의 이미지가 여성적이다.

아미타여래상 광배 후기에는 감산사를 창건한 사유를 상세히 적어 놓았다. 국가와 임금, 그리고 세상을 떠난 부모, 아내(古路里), 동생, 누이동생, (현도,玄度)스님, 등을 위해 감산(甘山)의 농장을 희사해 절(감산사)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1300년 전 김지성의 효심(孝心)이 깃든 감산사 아미타여래상과 미륵보살상을 주제로 ‘연계강연회’와 ‘전시설명회’를 갖는다. 연계강연회(박물관 역사문화교실)는 2월20일 오후2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강사는 허형욱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이다. ‘전시설명회(큐레이터와의 대화)’는 2월27일 오후6시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불교조각실에서 진행된다. 강사는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불교조각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감산사 미륵보살상은 국보 제81호, 아미타여래상은 국보 제82호로 지정돼 있다. 두 석불은 삼국시대 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으며, 외래 양식의 수용과정을 보여주는 조각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불상 가운데 전체적으로나 세부 표현 모든 면에서 단연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혀 왔다”면서 “조성 13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연계강연회와 전시설명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여 학술적 가치와 의미 등을 널리 알리고 조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 아내, 동생 등 가족들의 극락왕생과 국태민안을 발원하며 사찰을 창건하고 불상을 조성한 김지성의 애틋한 마음과 신심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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