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자=노동력’ 옛말, 임금 근로자가 사찰 일 대신

 

출가 감소, 사찰 급변 불러

승가대학 학인 유치 총력전

젊은 출가자들 밭일 서툴러

 

은퇴출가자제도 보완점 많아

일반 행자와 차별 시정 여론

 

 

지난 1월 말 경북의 어느 말사. 60대 여성이 이 절에서 1년 째 은퇴 출가자 교육 중이다. 전문직 출신의 미혼인 그녀는 출가를 꿈꿨지만 나이 상한선을 넘겨 포기 했었다. 그러다 은퇴출가자 제도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행자 등록을 했다. 이 절에서 함께 수행하는 50대 여행자 역시 머뭇거리다 나이를 놓쳤다. 그래도 출가 꿈을 버리지 못해 절에 머무르며 정진했다. 수좌들 못지 않게 공부하는 것을 보고 스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4년을 스님들과 함께 공부하는데 은퇴출가제가 시행되면서 행자 등록했다. 오랫동안 꿈꾸던 출가자의 길을 갈 수 있어 모두 행복해 했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선배스님’들도 같은 길을 걷는 도반이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환영했다. 또 한명의 행자 역시 절에 비슷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벌써 몇 해 째 절에서 공부하는 그녀의 ‘포스’는 구참 수좌 못지 않았다.

 

뒤늦은 출가에 감격

행자와 수좌 두 역할을 하는 이들의 하루 일과는 바빴다. 정진 시간에는 선방에 가부좌를 틀면서도 공양간과 사중 일도 돌보느라 눈 코 뜰 새 없었다. 젊을 적 부엌 가정 일 등 가사 노동에 시달리다 이제 가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인 50~60대에 제일 막내가 되어 공양간 일을 맡은 것이 힘들어 보였다. 딸 보다 어린 젊은 행자도 있지만 맡길 수가 없다. 한 은퇴출가자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부엌 일을 해본 적이 없고 시켜도 사고만 쳐서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그냥 혼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이 고달픈 것은 출가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런 고통이 아니다. “나이 들어 다시 부엌일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평생 꿈을 이뤄 힘들지 않다”며 “스님들께서 잘 보살펴 주셔서 정신적으로도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종단이 은퇴출가자를 대하는 정책과 태도다. 은퇴출가자제도는 출가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나이 많은 출가자에 대한 스님들 인식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0대나 유아 시절에 절에 들어온 동진(童眞) 출가자를 쉽게 볼 수 있는 노스님들 눈에는 30세만 넘어도 ‘늦깎이’로 보이는데 자신과 별로 나이 차이 나지 않은 60대를 같은 출가자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세속 나이는 적은 출가 선배인 50대 스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나이 많은 출가자에 대한 불신이 오랫동안 40세 출가 상한선을 유지하게 된 이유다. 50세로 상한선을 올린 것도 못마땅하게 여기는 스님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은퇴출가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은퇴출가자들은 종단이 자신들을 곱지 않게 바라보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선 제도가 50세 미만 출가자와 확연히 다르다. 은퇴출가자는 개인 연금을 받아야한다. 돈이 없어 종단과 사찰에 기대려는 ‘불순한 의도’를 막기 위한 조치다. 행자 기간도 1년으로 두 배 길다. 기본교육기간도 1년이 긴 5년이다. 은퇴출가자들은 연금은 백번 이해하는데 두 배가 긴 행자기간은 섭섭하게 여겼다. 한 여성 은퇴출가자는 “이해는 하는데 늦게 들어온 행자가 먼저 계를 받는 것을 보고 슬펐다”고 말했다. 1년 과정의 행자 기간은 받아들이지만 5년 과정의 기본교육기간은 은퇴출가자는 물론 사중의 선배스님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은퇴출가자를 지도하는 한 노스님은 “마지막 5년 째는 무엇을 가르친다는 계획도 없는 것 같은데 왜 1년 더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0대의 은퇴출가자는 “나는 기본선원에 들어갈 계획인데, 5년 과정은 밟게 하지 않을 것 같고 출가 사찰에서 1년 더 일 하도록 그같은 제도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권리 제한이나 연금 등은 아무 상관 없는데 교육 기간 만큼은 기존 행자와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며 “다른 이유는 아니고 하루 빨리 자유로운 상태에서 참선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도하는 스님도 “해당 본사나 사찰에 가서 더 일 하라는 것 같은데, 은퇴출가자는 대부분 젊을 적 이런 저런 이유로 출가 못했던 사람들이므로 빨리 계 받아 정진할 수 있도록 오히려 기본교육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은퇴출가자 취지에 맞다”고 말했다.

 

기본교육기간 5년은 불만

은퇴출가자들을 가장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종단의 태도다. 50대 후반의 은퇴출가자는 “같이 들어온 젊은 행자에게만 교육원에서 책자와 수첩을 보냈다”며 “종단이 우리를 같은 행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든 것을 행자 등록할 때부터 겪었다”고 말했다. 한 은퇴출가자는 교육원에 전화를 걸었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건방지게 행자가 전화한다며 역정을 내더랍니다”라며 노스님이 행자 등록 당시 상황을 들려주었다. 행자로 등록하면 보내는 책자와 수첩은 은퇴출가자에게는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배달돼 왔다.

은퇴출가자 중에는 연금과 15년 전문직 종사라는 자격 조건도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60대 행자는 “은퇴출가제도가 생겨 친구 몇 명이 함께 출가하려 했는데 가정 주부라서 포기했다”며 “여성들 중에는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교육 등 가정주부로만 있다가 나이들어 출가 꿈을 꾸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직장 종사자, 연금 조항에 걸려 포기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50대 여행자는 “전문직이라는 조건을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며 “일본은 사회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출가자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50~60대 출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오직 참선 공부 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다. 이유는 알지만 그래도 종단에서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가자 감소가 불러온 변화

출가자 감소는 사찰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지난 1월 말 전국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 한 총림의 주지스님은 “행자가 2명”이라고 말했다. 행자 반장이 있을 정도로 숫자가 많고 규율이 엄격했던 이 절의 과거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지난해 각 교구별 행자 수를 보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5개 교구가 행자 1명, 4개 교구 본사가 2명, 3명이 3곳이었다. 10명이 넘는 교구본사는 직할을 포함하여 3곳에 불과했다. 6개월 행자 기간을 마친 사미(니)계 수지자를 학인으로 받는 승가대학이 가장 먼저 변화를 맞았다. 한 때 한 학년 100명이 넘던 사미니 승가대학은 입학생 구하기가 가장 큰 현안이 됐다. 사미니 승가대학은 모두 4곳. 운문사 승가대학이 학인수가 가장 많고 봉녕사도 줄어든 출가자 수와 비교하면 학인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유치 경쟁은 피해가지 못한다. 한 비구니 사찰의 주지스님은 “한 6~7년 전 까지는 승가대학에 가서 우리 행자 받아달라고 사정했는데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며 “아는 스님을 통해서 행자 좀 보내달라고 찾아 온다”고 말했다. 장학금 수여는 기본이고 유학 등 다양한 혜택을 내걸지만 사미(니) 수계자 자체가 워낙 적어 일부 사찰은 승가대학 존립을 걱정한다. 처지도 역전됐다.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의 학장 교수스님들이 아니다. 사찰에서 학인들에게 영화 등 문화 관람을 하는 등 예전에 볼 수 없던 ‘환대’가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출가자 감소와 도시화는 낮에 밭에서 운력하던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선 전통을 밀어냈다. 비구니 승가대학의 한 노스님은 “예전에는 운력이 기본이었는데 이제 학인들도 일하지 않고 사중에서도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가자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데다 숫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스님은 “마을 주민들이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밭일 하지 않는 문화는 선원도 마찬가지다. 선원을 운영하는 절의 한 스님은 “옛날에는 수좌들이 같이 울력을 했는데 이제는 주민들에게 품삯을 줘서 일 시킨다”며 “밭에 갔는데 채소를 잡초인줄 알고 모두 뽑는 일이 있는 뒤부터 일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밭일 뿐만 아니라 공양간 일도 젊은 행자들에게는 벅찬 일이다. 한 비구니 사찰의 원주스님은 “젊은 행자들 뿐만 아니라 스님들은 부엌일을 못한다. 일 시켜 봤자 하지도 못하고 일거리만 더 만들어 나이든 스님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밭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선농일치의 선 전통은 이제 과거가 됐다. 대부분 사찰이 스님 부족으로 임금 노동자를 고용한다.

임금근로자의 역할과 대우

행자가 하던 역할은 사찰 임금근로자가 대신한다. 공양간, 경비, 수리, 법당 관리 등 스님이나 행자들이 하던 일은 임금 노동자로 대체됐다. 수도권의 모 사찰. 이 사찰 역시 과거 행자나 스님들이 하던 일을 대부분 임금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행자가 많을 때는 2~3명 있다가 어느 때는 한 명도 없는 등 일정치 않아 사중 일을 행자에게 의탁하지 못한다. 규모가 큰 절 답게 10명 넘는 임금 근로자들이 일한다. 이 절에서 일하는 한 재가자는 “예전에 스님들이 하던 일이라는데 나를 비롯해서 보살들이 월급 받고 이 일을 한다”며 “행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받는 임금은 적게는 100만원 가량부터 200만원 가까이 된다. 문화재관람료를 받지 않는 이 절로서는 큰 지출이다. 그나마 수도권이어서 신도들이 많이 찾아와 버틴다. 지방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호남의 모 대찰은 지난해 1명 있던 행자가 나가는 바람에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사찰에 아무런 타격은 없다. 이 사찰의 재가 종무원은 “ 행자가 절 일 하던 것은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며 “모든 업무는 월급 받는 재가자가 하므로 스님 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중 일을 임금 근로자가 전담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문제도 생겼다. 지방의 한 대규모 사찰은 “우리 절을 비롯해서 대부분 사찰이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주는데 사중 형편상 임금을 올릴 수도 없고 계속 법을 어길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의 한 기도처 주지 스님은 “한 직원이 나가서 초과 근무수당 지급하라고 노동청에 제소한 일이 있었다”며 “아직은 대부분 절에서 먹고 자며 적은 월급에도 신심으로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지만 간혹 초과근무 수당지급이나 퇴직금 등이 밀렸다며 노동청에 제소하는 직원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출가자 감소와 고령화, 출가자의 달리진 문화 등은 사찰과 종단에 근본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대처하는 종단의 움직임과 스님들 대응은 느려 변화를 뒤따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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