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
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박사 · 이명석 지음
파람북

 

일요일 아침마다 안방에서 ‘은하철도 999’를 시청하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중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기억이다. ‘철이와 메텔의 우주여행’으로 요약되는 ‘은하철도 999’는 그러나 단순한 만화영화가 아니다. 죽음과 기계문명, 노동과 환경, 인간복제와 자기정체성 등 온갖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다. 어른이 되어서 봐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란 평가가 많다. 공동 저자인 신간(新刊) 역시 은하철도 999를 성인의 관점에서 다시 보고 그리하여 그간 자신들의 고통과 방황을 재해석하기 출간됐다.

나이 들어 다시 읽는
어릴 적 만화영화
삶과 죽음 인간관계
인생에 대한 성찰

'마음은 하나의 우주' 
불교적 세계관 담아

알다시피 ‘은하철도 999’는 일본만화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을 후지TV가 1978년부터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했다. 기계인간이 되어 영생을 얻겠다는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 기계육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 공간을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 줄거리의 출발점이다. 중간 중간 수많은 별에 들러 혹은 상황에 맞닥뜨리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는 건 우리의 일상을 빼닮았다. 철이와 메텔이 달리는 우주는 곧 세상이다. 제목부터 철학적이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과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1000은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끝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도 하다.      

은하철도 999는 철이와 메텔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 파람북 제공

책은 이런저런 일을 하는 프리랜서들이 썼다. 바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틈틈이 얻어낸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어릴 적 꿈에 관한 소회, 너무나 짧아서 아름다운 청춘에 관한 이야기, 타인 혹은 생명에 대한 연민 등이 보인다. ‘은하철도 999’의 에피소드가 담긴 별들을 지나며, 그 속에서 우리가 떠안은 심리적 문제들을 성실하게 음미하는 에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일 수도 있고, 영원히 어렵기만 한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청춘의 눈부심에 대한 동경과 질투일 수도 있다. 불운의 폭풍우는 어떻게 맞서야 할지, 성장이란 무엇인지,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 게 옳은 것인지 물러서는 게 지혜인지… 끊임없이 묻고 주저하고 절름거리면서 결국엔 나름의 해법을 찾는다. 모든 별에는 저마다의 고민과 슬픔과 희망이 있고, 그 별들을 기어이 통과해내야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나만의 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 머리말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래, 그 작은 말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만들었어.”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던 그 실수, 지금은 너무나 소중한 보석이 되었네.” 

글쓴이들의 사유는 성실하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여럿 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수없는 죽음을 마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슬픔을 겪기 싫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는 결심은 모순이다(221페이지).” “위도 아래도 없는 우주를 달리는 기차… 문득, 하염없이 달리던 초등학교 시절의 버스가 생각났다. 의미 있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길 위를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달리는 버스가, 사실 우리 인생은 대부분 그런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74페이지).” 불교의 ‘불’ 자도 안 보이지만 자못 불교적이다.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주. 그것은 개개의 마음속에 있는 우주다. 우리는 개개인의 몸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 안에 무한한 우주를 품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건을 겪을 때마다 주렁주렁 넓어지는 우주를 가지고 있다(231페이지).”

한편으론 책도 책이지만 ‘은하철도 999’ 원작이 품고 있는 다채롭고 심오한 가르침들이 새삼 놀랍다. 삶의 순간순간은 죽는 날까지 화두를 던진다. 인생에 대해 끊임없는 궁금해 하고 번민한다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본능적으로 감지해내는 ‘철이’처럼, 순수한 동심은 영원히 매력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숫자는 ‘1000’이 아니라 ‘999’일 수도 있다. 책은 마음이라도 나이 들지 말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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