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현스님 지음 
모과나무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주지를 맡고 있는 지현스님이 일상에서 얻은 소소한 깨달음과 중생에게 보내는 격려를 담아 책으로 펴냈다. 새벽예불을 마친 후, 법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 산사를 찾은 신도들의 모습에서 스님은 부처님을 목격했고 오늘날 불교가 가야 할 길을 봤다. “이 세상이 있어 내가 존재한다. 당신이 있어 제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다”는 연기(緣起)의 성찰을 문장 곳곳에 새겼다. “나 스스로가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나를 사랑하는 그 힘으로 세상을 살리라는 교훈이 튼실하다. 

지현스님은 올해로 출가 48년째를 맞는다. 봉화군 산골짜기에 있는 청량사에서 30여 년 간  주지로 일하며 시골의 궁벽한 절을 어린이포교의 성지로 만든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업적이다. 지역의 일꾼이면서 종단의 일꾼이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부장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원,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종단을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는 호평을 듣는다. 행정승으로서 역량을 보여준 까닭은 본래 성실한 수행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도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 등의 에세이로 찰나의 깨달음들을 담백한 이야기로 들려줬다. 이번 책 역시 세상을 향한 출가 수행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물들었다.      

41편의 비교적 짤막한 글들을 모았다. 타의 모범이 되어온 인물이 쓰는 맑고 향기로운 말들은 반듯하고 단단하다. 연륜도 가볍지 않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되지 않아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있다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45페이지).” “진심을 담은 칭찬 한마디 한마디는 적금처럼 마음과 복을 키워줍니다(63페이지).”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수년 동안 광고사진을 찍어온 남종현 작가의 작품이 중간 중간 삽입됐다. 사진이 아니라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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