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의 심리학
- 융 심리학으로 바라본 조사선의 세계

최명희 지음 
자유문고


무아(無我)는 불교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참선 수행자라면 반드시 체험해야하고 실현해야 하는 경지다. 한편으론 심오한 만큼 매우 난해하기도 하다. ‘밥 먹어야 하고 잠자야 하고 병들고 상처받는 내가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는가’라는 뼈저린 질문. 책의 저자는 현대 심리학의 거장인 칼 구스타브 융(Jung, 1875~1961)의 이론에 근거해 한국 선불교의 뿌리인 중국 조사선(祖師禪)의 세계에 나타나는 무아를 조망한다. 그리고 “무아는 무아의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진솔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중생심은 자아의식
끊임없이 경쟁하고
눈치 보며 상처받아

무아란 무아의식....
자기와 타인을 긍정하며
진솔하고 당당하게 살라

알다시피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正覺)을 이뤘다. 순수하고 절대적인 의식에 대한 각성이 정각의 내용이다. 당신은 그럼으로써 주관과 객관, 과거와 미래, 차안과 피안 등을 분별하지 않는 한마음(一心)으로의 회귀를 성취했다. 역대 조사 스님들 역시 부처님이 경험한 무아를 삶 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실현한 사람들이다. 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 범부(凡夫)들은 한마음이 아니라 ‘분리된 정신’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신이란 ‘드러난 현상’으로만 인식되는 자아의식의 세계다. 자아란 ‘나’라는 관념으로 이루어진 부분의식. 보편적 세상에서 ‘나’라는 부분만 잘라낸 뒤 나머지 세상과 대립하고 경쟁하고 눈치 보는 심리다. 

재가불자들이 참선정진하는 모습.

자아의식은 반쪽짜리 의식이지만 실생활에선 얼핏 유용해 보인다. ‘나’와 ‘너’를 철저히 구분하면 할수록 내 것을 지키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다만 평생을 목말라해야 하고 억울해 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저자는 “자아의식은 존재가 일관성을 가지고 삶을 유지하도록 하지만, 정신의 전체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오만과 편견이 특징인 자아의식에 얽매여 있는 한 인간은 완전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우리가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고 명상에 몰입하는 까닭은 결국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연연하지 않으며 인정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아는 ‘한마음’을 얻기 위함이다.

저자는 철학과 자아초월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오랫동안 명상수행을 했으며 ‘주인공 명상법’을 개발했다. ‘노미(KnowMe)' 심리연구소에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조사선에 대한 조예도 깊은 편이다. 책은 조계혜능 마조도일 황벽희운 임제의현 조주종심 등 기라성 같은 선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선문답들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무아의식’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상태이자 가장 심오한 심리학의 정수라고 강조한다. 종장(宗匠)들이 도달한 무심(無心)이란 곧 무아의식의 줄임말이란 것이 확인된다. 조사선을 개창한 혜능스님 법문의 근본은 ‘무아의식’을 지향하고 있다. “무아의식의 자리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하나다. 무아의식은 만법에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해탈이며 무념의 실천인 반야삼매(般若三昧)다.” 임제는 “눈 밝은 지도자는 마군(魔軍)이라느니 부처라느니 모두 물리쳐서 부정해버린다”며 자아의식의 분별을 꾸짖었다. 조주 또한 “등수를 매긴다면 당신은 몇 번째 조사냐”는 되바라진 물음에 “지금 너의 귓속에 있다”며 차별의식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융도 ‘셀프(Self)'를 이야기했다. “자아의식을 초월한 순수한 의식성”을 가리킨다. 저자는 “무아의식이 관조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모습”이라며 “자기 자신을 절대적 객관성으로 인식하는 일이 바로 진정한 명상”이라고 역설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존귀하고 소중하다는 각성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하고 절대적 주체로 살게 한다. 그리하여 무아의식의 통찰에 힘입어 ’자기실현이란 외부로부터의 획득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긍정‘이라는 교훈이 만들어진다. 불자의 근본 덕목인 지혜와 자비도 무아의 논리에서 표출된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는 그래서 누구보다 뛰어나고 따뜻한 존재라는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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