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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나 나쁜 종교 선전 행위로 변질된 ‘포교’

기사승인 2019.03.07  1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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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위험에 빠진 ‘포교’

 

정상적 기독교 홍보는 ‘선교’

이단, 이슬람이 하면 ‘포교’?

 

기독교 언론, 구분 사용하기

전문지 지방지 등도 따라해

불교계 문제 인식 조차 못해

 

이판사판(理判事判) ‘막다른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 야단(惹端) 법석,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시끄러운 판. ‘민중서림’에서 발간한 국어사전의 정의다. 두 단어는 원래 불교용어었다. 이판사판은 참선을 하는 이판(理判)과 행정을 전담하는 스님인 사판(事判)으로 수행자를 통칭해서 일컫는 말이었다. 야단법석은 야외에 탱화를 걸고 고승을 모시고 법회를 보는 불교의식이다. 좋은 뜻이 난장판이라는 의미로 변질됐다. 불교 용어가 억불정책을 삼았던 조선 시대에 왜곡 변질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교 용어가 유학자들에 의해 뜻이 바뀐 예는 이외 수없이 많다. 원래 불교용어였는데 다른 종교에 빼앗긴 단어도 많다. 덕 높은 고승을 뜻하는 장로(長老),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전도(傳道) 등이 그 예다.

언어의 생성 발전 소멸

 

언어는 사람의 일생처럼 생성 발전 소멸한다. 새로운 단어가 수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그 뜻이 변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 용어가 원래 뜻과 달라지거나 변경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 해도 특정 종교의 공식 용어로 정착한 것을 다른 종교가 부정적 용어로 사용하는 현실이 정상은 아니다.

불교를 널리 편다는 뜻의 포교(布敎)라는 단어에 관한 이야기다. 언제 부터인지 ‘포교’가 기독교에서 자신의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혹은 이단이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는 뜻으로 변질돼 사용 되고 있다. 처음에는 미미하던 그 현상은 이제 기독교 언론을 넘어 일반 언론에 까지 공식 용어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불교를 펴는 행정 중심 포교원, 법당을 이르는 포교당, 사람을 뜻하는 포교사는 이대로 가면 아주 나쁜 뜻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아래는 기독교 언론에서 포교를 사용하는 실례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구리상담소는 신천지가 지난 13일 개최한 총회에서 발표한 교세현황 통계자료를 입수해 분석 자료와 함께 언론에 배포했다. 신천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국내 신도의 증가폭은 상대적으로 둔화된 반면 해외 포교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천지가 해외포교를 하며 한류열풍을 활용하고 있는 정황도 드러나 관련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교주 이만희를 믿고 따르는 이단 신천지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수험생들이 집중 포교를 당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만도 신촌과 홍대, 대학로 등에서 신천지 교인들이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각 지역 대학가도 포교거점이 되고 있다.”

“통일교 피해자들은 사기성 포교로 세뇌되어 노동 착취와 강매에 시달렸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과 법조인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 청춘 반환 소송에서 이길 수 있었다.”

“서울의 S여대에서는 최근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학생이 눈에 띈다. 같은 대학 무슬림 유학생으로부터 포교를 받고 이슬람교로 개종한 학생이다. ‘무슬림 학생들이 정말 착하고 친절해 이슬람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하는 이 학생은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무슬림 선교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 포교를 부정적 뜻으로 사용하는 매체들. 기독교 매체에서 시작해 일반 언론에 까지 확산됐지만 우리는 문제 인식 조차 못하고 있다.

기독교 매체의 포교 사용법

인용한 기사는 모두 기독교 매체다. ‘해외 포교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강화하고’ ‘각 지역 대학가도 포교 거점이 되고’ ‘신천지 등의 대학 포교 활동이 확대’ ‘사기성 포교로 세뇌되어’ ‘무슬림 유학생으로부터 포교를 받고 이슬람교로 개종’

기독교 매체가 기사에서 사용하는 포교는 국민들이 알고 있는 포교와 뜻이 다르다. 포교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전법(傳法)이다. 불자와 일반 국민 및 한국의 모든 언론 매체는 물론 공공기관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뜻이다. 그런데 기독교 매체는 이단이나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의 선교활동을 말할 때 포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독교의 ‘정상적’인 선전은 ‘선교’라고 부른다. 포교는 이단이나 타종교, 선교는 기독교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처음부터 이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 기독교 매체가 선교와 포교를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도 포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기독교 처럼 부정적 단어가 아닌 선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톨릭 대사전에 의하면 포교(布敎)를 ‘종교를 널리 편다는 뜻으로 선교(宣敎)와 같은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교(宣敎,missions)를 가톨릭은 “교회는 복음의 전파자들을 파견하여 온 세상에 가서 복음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扶植)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사업을 선교라 한다(선교교령 6).”고 정의한다.

포교를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뜻으로 사용하는 불교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대로 가면 결과는 어떻게 될 까? 포교원의 한 스님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 홍보력 등을 볼 때 그들의 의도가 사회용어로 정착되지 않을 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스님의 우려는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기독교 매체만 구분해서 사용하던 ‘포교’가 이제 일반매체로 까지 확산 중이다. 다음은 지난 2월26일 문화일보 보도 중 일부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관리사무소에서 나왔다”고 속인 뒤 주민이 나오면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포교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이 문을 닫지 못하도록 잡거나 발을 들여놓는 행동까지 하면서 낮에 혼자 있던 주부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주부 황모(여·57) 씨는 낮에 설거지하다 초인종이 울려 인터폰을 보니 한 남성이 서 있었다. 황 씨가 “누구냐”고 묻자 그 남성은 “관리사무소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황 씨는 관리실이라는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더니 인터폰으로 보이던 사람 옆에 또 다른 남성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갑자기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왔다”며 종교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상시 길에서 듣던 사이비 종교와 비슷한 방식이라 문을 닫으려고 하자 한 남성이 “조금만 더 들어보라”며 문고리를 잡았다. 집에 아무도 없어 순간 겁이 난 황 씨는 “이러면 신고할 거다”고 크게 소리친 뒤 문을 쾅 닫았다.> 이 기사의 제목은 <“택배입니다” 문 열어줬더니 “하나님 말씀 도착” 사이비 포교> 다.

포교 부정적 사용 심각

지방지 경제지 전문신문 할 것 없이 전 언론이 포교를 부정적 의미로 쓰는데 동참하고 있다. 2017년 충청도의 한 지역신문은 이런 기사를 실었다. <개강을 앞둔 서모(21·여) 씨는 최근 학교 정문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내달라”며 학생들에게 선의의 부탁을 하는 ‘아동 구호단체’를 자주 목격했다. 하지만 며칠 뒤 학교 게시판과 SNS에는 ‘구호단체의 부탁으로 편지와 함께 연락처를 남겼더니 이상한 종교단체로부터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는 한 신입생의 제보가 올라왔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아이들의 답장을 전달해주겠다”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전화번호를 요구한 뒤 포교활동을 펼치는 종교 단체였다.>

2012년 한 유명 경제 매체는 역시 포교를 부정적인 종교 활동으로 표현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단ㆍ사이비 종교의 무분별한 대학가 포교행위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전단지를 돌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무조건 쫓아가기 등 스토킹 수준의 포교활동을 벌이며 각종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무분별한 대학가 포교행위는 주로 외부단체가 벌이고 있다. 선배를 사칭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대학신문은 “12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 같은 ‘캠퍼스 불청객’들로 인해 학생들이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2인 1조로 짝을 지어 다니며 혼자 캠퍼스를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표적으로 삼고 무분별한 노상 포교행위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일반 매체가 포교를 불교를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사를 쓴 문화일보 윤명진 기자는 “포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포교라는 단어를 쓰게 된 데는, 우선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포교를 검색했을 때 '종교를 널리 폄'이라고 나와 중립적인 단어라고 생각했고 뉴스에서 포교로 검색했을 때, 일반적으로 종교를 전파한다는 의미로 쓰인 기사들이 다수 나와 보편적이라고 쓴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독교의 선교 포교 분리 사용이 어느새 일반 매체에 까지 스며든 것이다. 물론 대다수 중앙일간지나 방송은 아직 선교와 포교를 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중앙일간지 방송 까지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10년도 안돼 일부이지만 일반언론에 까지 등장한 것은 그만큼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다. 언론 등에서 불교가 왜곡되게 비치거나 잘못 전달될 수 있는 용어 문화 등을 찾아 시정하는 단체나 활동이 전무하다 보니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불교계 한 언론인은 “과거 김재일 선생이 보리방송모니터회를 만들어 방송 언론 등의 불교 폄하 왜곡을 지적하고 바로 잡았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그 활동도 끊겨 불교는 잘못된 문화 공세로부터 보호할 아무런 기구가 없다”고 말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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