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이성선 시 ‘다리’에서


다리를 건너가는 한 행인을 조금은 떨어진 거리에서 시인은 지켜본다. 다리에는 순차적으로 두 명의 행인이 지나간다. 한 사람은 다리를 건너다 말고 멀리 산을 내다보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뭔가를 재촉하듯 황망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심하게 다리를 건너간다. 

한 사람은 인연을 맺듯 다리를 만나고 또 다리와 헤어지고, 다른 한 사람은 세계와 맺어지는 관계에 뜻이 없고 다리와 미련 없이 헤어진다. 타자를 만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내가 혹여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 아닐지 가만히 돌아본다. 외로운 누군가가 나를 의지하게끔 곁을 두며 살아야겠다.  

[불교신문3469호/2019년3월6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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