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민추본 ‘일제 강제징용 역사문화 순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가 일본 후쿠오카 등지에서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장을 살펴보고 불교계 역할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진은 휴가묘지에서 작은 돌무덤으로 기억되는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모습.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처참했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 11일 방문한 일본 후쿠오카 현 소에다쵸 마을엔 ‘휴가묘지’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과거 휴가(日向) 집안의 가족 묘지였지만, 지금은 마을 공동묘지로 사용 중이다.

정성껏 반듯하게 세워진 일본인 묘지 사이로 작은 돌조각이 군데군데 세워져있다. 이름도 사망날짜도 모르는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무덤이다. 심지어 자신이 키우던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묘비를 만들어주는 일본 전통대로 그들의 애완동물 무덤과 묘비까지 잘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억울하게 끌려와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은 그것조차 없다. 지나가던 발길에 무던히 밟히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세워진 일본인 묘(뒷쪽)에 비해 작은 돌로 세워진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의 묘(앞쪽)가 대비된다.

종단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장을 살펴보고 불교계 역할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원택스님)가 일본 후쿠오카와 기타큐슈 등지에서 개최한 ‘일제 강제징용 역사문화 순례’에 동행했다. 이번 순례는 민족의 수난사를 성찰함으로써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됐다. 뜻을 같이한 재가자 20여 명이 발걸음을 함께했다.

순례에 함께한 조선인 강제징용 2세 배동록 씨가 휴가묘지에 안치된 조선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日 근대화 유물? 고된 강제노역 현장 ‘야하타 제철소’

휴가묘지에서 37기의 돌무덤으로 기억되는 조선인들의 넋을 위무한 순례단은 앞서 10일 일제 강제징용의 대표적인 현장인 야하타 제철소와 조세이 탄광을 찾았다. 야하타 제철소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전쟁 배상금으로 지난 1901년 기타큐슈시에 세운 제철소다.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 군함과 어뢰, 전투기 제작에 필요한 철을 생산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은 일부 용광로만 일본 근대화의 역사적 유물처럼 남아있다.

“용광로에서 뜨겁게 달궈져 식지 않은 철광석 찌꺼기를 손으로 떼어내는 어려운 일은 조선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일본 감시관들은 밥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고된 노동에 쓰러진 조선인들을 무차별하게 때렸습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씩 석탄을 캐고 옮기는 일을 주먹밥 3개로 버텨내셨습니다.”

야하타 제철소에서 순례에 함께한 조선인 강제징용 2세 배동록 씨(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는 순례단 모습.

순례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정을 함께한 조선인 강제징용 2세 배동록 씨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지자 현장엔 엄숙함이 감돌았다. 배 씨는 어머니 패용했던 야하타제철소 출입증을 보여주는 등 당시 끔찍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을 알려주는데 주력했다. 자신의 부모도 이곳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밝힌 배 씨는 무엇보다 이와 같은 역사가 사라지고 있음을 걱정했다.

야하타 제철소에서 순례에 함께한 조선인 강제징용 2세 배동록 씨(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는 순례단 모습.

배 씨는 “일본은 제철소 설립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기념관을 짓고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조선인 6000명이 강제징용 돼 일했던 사실은 밝히지 않고 있다”며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 간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억해 줄 것”을 순례단에 당부했다.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는 조선인 136명

일본이 근현대사 유물로 자랑하는 야하타 제철소와 달리 조세이 탄광의 흔적은 지워졌다. 다만 시모노세키 남쪽 바다 한 가운데 해저탄광이었단 것을 증명하는 ‘피아(배수 및 환기를 위해 설치한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유일한 증거다. 조세이 탄광은 ‘조선 탄광’으로 불렸다. 높은 온도와 비좁은 갱도 내 작업 등 최악의 노동조건인 이곳에선 일본인 광부가 올 리 없었다. 일제가 억지로 끌고 간 조선인 노동자만 가득했다.

강한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례단은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위령비에서 원통하게 목숨을 잃은 조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헌화와 의식을 진행했다.

바다 속 위험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작업을 이어가던 조세이 탄광은 1942년 2월3일 갱도가 붕괴되면서 탄광이 수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136명의 강제 징용 조선인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다. 다행히 양심적인 일본 내 지역사회 단체들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결성해 희생당한 조선인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지난 2013년 세워 기억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바다 한 가운데 해저탄광이었단 것을 증명하는 ‘피아'만이 조세이 탄광의 유일한 흔적이다.
특히 순례단은 현장을 찾은 이노에요코 조세이탄광수몰사고를역사에새기는모임 공동대표에게 현장에서 손수 정성을 모은 후원금을 전달하며 활동에 힘을 보탰다.

이날 위령비를 마주한 순례단은 여전히 바다 밑에 방치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한 마음을 모았다. 강한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통하게 목숨을 잃은 조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헌화와 의식을 진행했다. 

특히 순례단은 현장을 찾은 이노에요코 조세이탄광수몰사고를역사에새기는모임 공동대표에게 현장에서 손수 정성을 모은 후원금을 전달하며 활동에 힘을 보탰다. 이노에요코 대표는 “바다 속에 있는 유골들을 수습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일본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궁화당에 안치된 강제징용 조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모습.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문제 해결될 것”

순례단은 무연고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납골당인 ‘무궁화당’을 방문해 한 많은 120기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정까지 마쳤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을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을 각자의 자리에서 펼쳐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성찰의 목소리였다.

이번 순례에 함께한 이지희(59·여) 씨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참혹한 삶을 살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니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며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에 대한 처참한 내용이 우리가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연소로 순례에 함께한 권가온(13)군도 휴가묘지에 안치된 조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무궁화당에 안치된 강제징용 조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모습.

 

 

야하타 제철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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