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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쓰는 화두 '한국불교'] <39> 군승 독신 종헌 개정 10년 -上 명암(明暗)

기사승인 2019.03.25  1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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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단 정체성 강화 효과, 포교활성화는 ‘글쎄’

지난해 열린 군승 파송 50주년 행사 모습. 종헌 개정 당시 일부 혼란이 있었지만 군승의 독신 비구승화는 손조롭게 진행 중이다.

소령 이하 전원 독신승
결혼 군승은 소수 고참

개정 후 결혼 면직 군승
소송 제기 혼란 진행 중

군승(軍僧) 결혼을 허용하는 종헌 조항이 폐지된 지 10년이 지났다. 1968년 첫 군승 파송당시 독신승이었던 군승 자격은 1980년 정화 중흥회의에서 현역 군승 결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가 2009년 3월 종회에서 예외조항이 폐지되면서 원래대로 환원됐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간 군내 포교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까?

2009년 3월 종회서 종헌 개정

지난 18일 중앙종회 포교분과위원회 제3차 회의가 열렸다. 이 날 회의 주제는 종헌 개정 후 결혼을 해 군승파송이 취소된 두 전직 군승이 일으킨 문제였다. 군승 복무 중이던 해군의 A씨와 공군의 B씨는 종헌이 개정 된 2009년 이후인 2014년과 2011년 결혼해 2015년 조계종 승려 자격을 박탈당했다. 

종헌 개정 후 결혼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종단은 “군 성직자 자격 박탈 및 현역 복무 부적합으로 전역 처리해 줄 것”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종단 요청을 받은 국방부는 군종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현역 복무 부적합 결정을 내리고 2017년 8월과 7월 해군과 공군이 전역 조치했다. “종파의 계율을 어긴 군종장교가 군종임무를 지속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복무 부적합 전역 조치”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조치 사유였다. 종단이 요청한 사유와 같다.

한국의 군종장교는 국방부가 인정하는 종교 단체가 파송하는 성직자를 대상으로 적격 심사를 거쳐 임관한다. 국방부 ‘군종업무에 관한 훈령’ 제7조(군종장교의 신분) 조항 ①은 ‘군종장교는 국군장교단의 일원으로 참모장교로서의 신분과 소속 종단으로부터 파송된 성직자로서의 신분을 함께 가진다’고 되어있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는 1개의 종단이 파견 권리를 갖고 있으며 기독교는 교파가 여럿이다. 이는 거꾸로 해당 종교단체나 교파에서 파견 취소하면 장교 복무가 취소되는 것을 뜻한다. 군인사법, 국방부 훈령, 규칙 등은 국방부가 승인한 종교단체 교파, 대학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종단의 요청을 받은 국방부가 군종윤리위원회를 개최하여 현역 복무 부적합 결의하고 이를 각 군이 받아 전역 한 것도 군종장교 제도의 취지에 충실한 결정이었다. 

파송 종단이 복무 중간에 군에 파견한 성직자를 파문하여 복무 취소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문제가 생기면 대개 해당 종파에서 조용히 처리하고 당사자들도 종교단체의 결정을 따른다. 종단과 군종교구도 종헌을 어긴 두 사람이 종단의 처분을 순순히 따를 줄 알았다.

포교분과위의 논의 사항

그러나 두 군승은 군종장교 제도 원칙과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 두 사람은 조계종으로부터 승려 자격 박탈 처분을 받은 다음날 곧바로 대처 종단 승적을 취득했다. 다른 종단 승적을 취득하는 것도 모자라 국방부를 상대로 전역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 사람은 종단을 상대로 승려 직권 제적 무효 확인 소를 제기했다. 군종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며 종단의 종헌 개정 취지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소송 결과는 다르게 났다. 해군의 A소령은 국방부 상대 소송 1,2심 모두 승소했다. 공군의 B 소령은 패소했다. 1심에서 이긴 A 소령은 모 부대에 장교로 복귀했다. 그러나 조계종 승적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성직자 역할을 못하도록 군종교구가 막았다. 국방부 합참 등에서 군종 실무를 담당하는 몇 명을 뺀 모든 군승이 사찰 주지를 겸하지만 승적을 박탈당한 A소령은 행정 장교로 근무 중이다. 그는 군승 몫에서도 빠져 있는, 기존에 없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결혼 시점이다. 법원은 해군의 A소령은 종헌이 개정되던 2009년 3월 이전 사실혼 관계였음을 인정했다. 주변 지인들의 증언과 해외연수 관계로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참작됐다. 그러나 B씨는 종헌 개정 후 결혼했음이 밝혀져 패소했다. 그러자 B씨는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조계종 만이 군종장교 파송권한을 갖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최근 인권위는 진정인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리고 국방부에 시정을 권고했다. 권고는 구속력이 없지만 조계종 군종교구제에 대해 일부 불교 종단이 이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오던 터여서 파장이 어디 까지 미칠지 가늠키 어렵다. 지난 18일 개최한 포교분과위원회 회의는 이와 관련한 현황을 청취하고 종단 대응책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이번 사건은 군승 정체성에 심각한 훼손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해군의 A소령은 어릴 적 출가하여 사찰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군승으로 임관한 스님이었다. 그는 군종장교 이전에 출가 수행자였다. 그가 군종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던 유일하며 절대적 조건은 조계종 스님이었기 때문이다. 종헌 개정 이전에 결혼을 약속한 이성이 있었다 해도 결혼을 금하는 종단법을 따르거나 군종장교 직을 내려놓는 것이 종단 스님으로서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군종교구나 종단에서도 당연히 군종장교 직을 내려놓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는 종단 법을 어기고도 군종 장교 직에 집착했다. 주변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군장교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종헌 개정 당시 혼란에 빠지고 다양한 양상으로 반응했다. 

중도 포기하는 군승 후보생이 있는가하면 혼인 신고를 못하고 사실혼 관계로 사는 길을 택한 군승도 있었다. 결혼과 스님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귀던 여성과 헤어지는 군승도 있었다. 아들의 결혼이 법적으로 막혔다는 소식에 환호한 부모도 있었다. 당시 아직 미혼인 군승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종단법을 따라 스님으로 살거나 군을 떠나거나 였다. 두 전직 군승은 둘을 모두 가지려다 스스로도 어려움에 빠지고 국방부와 종단도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종단 정체성 강화 위한 개정

10년 전 종헌을 개정한 이유는 종단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68년 출범한 군승은 제도를 이끌어낸 것도 파송 주체도 모두 종단이었다. 그래서 독신승 만이 군승에 복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0~70년대만 해도 스님들 중에서 대졸자가 많지 않았다. 군 특성상 독신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1970년대 현역 군승에 한해 독신 예외를 주장하는 군법사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80년 일부 군법사가 실권을 장악했던 정화중홍회의에서 이를 허용하는 종헌을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군승 대부분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스님들은 상좌의 군승 지원을 막았다. 결혼을 한 군승들은 종단 문중과 인연이 끊겼다. 대학 재학 중 후보생으로 선발돼 사미계만 받고 임관하던 후보생 제도는 무늬만 군승을 만들었다. 종단 사찰 문중에서도 그들과 아무런 유대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상좌가 군승인지 모르는 스님들도 많았다. 군복무 당시 결혼하여 종단에 돌아오지 못하는 예비역 군승들은 타 종단으로 갔다. 이 중 일부가 조계종단을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싣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 글이 군승 복무를 마치고 종단에 복귀한 예비역군승들이 주도하는 종헌 개정을 이끌어냈다.

군포교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한다는 목소리는 2000년대 들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리하여 군불교위원회에 이어 2005년 조계종군종특별교구가 출범하면서 군사찰은 교구에 속하게 됐으며 군승 지도 관리를 종단의 중진 스님들이 맡도록 했다. 군 사찰에는 모두 종정예하의 교시가 걸렸다. 종단 차원의 교육도 강화했다. 지난 2009년 군승 독신 예외조항 철폐는 이러한 추세 속에서 나왔다.

당시 종헌 개정을 종단의 모든 스님들이 쌍수 들고 환영했다. 종회가 종헌을 개정 한 후 원로회의 인준 절차를 남겨놓고 당시 종회의장 보선스님이 원로의원스님들을 예방했을 때 대부분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종회의원들이 나서준 데 대해 크게 치하하고 격려했었다. 원로스님들 뿐만 아니라 종단 중진, 군 신자들 까지 종헌 개정을 적극 반겼다. 결혼을 한 군승들 중에서도 찬성하거나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큰 무리 없이 독신화 정착 중

10년이 지난 지금 현장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까? 긍정과 부정적 면 두 가지 모두 보인다. 긍정적 측면은 비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정체성 시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결혼을 생각하는 후보생 들은 아예 군승 지원을 않으면서 결혼과 관련한 잡음은 사라졌다. 이는 구족계 비율로도 드러난다. 2009년 129명 전체 군승 중 비구는 71명이었다. 종헌 개정 전에도 결혼을 하더라도 구족계는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구 숫자는 독신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당시는 중령 이상 간부는 대부분 결혼을 했다. 현재는 전체 군승 132명 중 결혼한 군승은 17명에 불과하다. 당시와 다르게 이들 대부분은 중령 이상 고참이다. 이들은 대부분 5년 안에 전역할 예정이어서 머잖아 모든 군승이 독신승이 된다. 소를 제기한 전직 군승 문제는 이처럼 독신 비구승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소동이다. 

종헌 개정 이전에도 독신승으로 최고 계급까지 진출 한 뒤 산문에 다시 복귀하는 스님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 동국대 법인 이사장 자광스님이다. 스님은 대령으로 전역한 뒤 복귀해 제2대 군종교구장, 호계원장을 역임하고 동국대 이사장을 맡았다. 2년 전 대령으로 전역한 남장스님도 법랍 30년이 넘은 비구승이다. 현재는 중령이 최고참 비구승이다. 

결혼을 한 군승 중 소령 이하는 이제 없다. 비구승인 한 군승은 “독신승으로 바뀐 종헌으로 인해 정체성 시비가 사라지고 군에서도 장교가 아닌 성직자로 보게 돼 위상이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종헌 개정 당시 몇 가지 예상했던 문제들도 생기지 않았다. 2009년 당시 영관급 군승들은 종헌 개정을 반대하며 ‘원로대덕 큰스님들의 판단에 군 포교 성패가 달려있습니다-종헌 9조2항 삭제에 관한 군승들의 입장’이라는 문건을 원로스님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은 이 문건에서 “군승독신 제도가 장기복무자를 감소시키고 비구승으로 모두 전환되는 20년간 독신자와 결혼자 간에 갈등을 초래하며 현역 기혼 군승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구계 수지자인 고참 군승은 “지금 영관급 군승 대부분이 동국대 불교대학 재학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선후배 관계고 군에 와서도 학번에 따라 계급도 나눠져 독신이냐 결혼 했느냐로 나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결혼을 한 고참 군승도 “적어도 군에 있는 동안은 계급이 우선하므로 독신과 비독신 갈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종헌 개정은 이처럼 큰 무리 없이 정착했다. 그러나 군승과 군종교구의 권한이 강화되고 군포교가 활발해졌나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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