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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책상]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

기사승인 2019.04.19  09: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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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학사전’ 만들어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생각해요”

50여년 수행자로 공부하며 <태화선학대사전>을 펴낸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이 대사전과 원문을 해설 편역한 <벽암록> 옆에 섰다.

출가 후 경전과 선어록공부
1985년 평심사 창건해
출판불사 시작해 20여권 출간
한글 태화선학대사전 발간
선학사전의 금자탑 세우다

“禪學 공부하는 수행자와 불자
널리 활용해 부처님 법 배우길...”

“어떻게 가면 되냐”고 물었다. “네비게이션을 치면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평심사’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 밖인 유일무이한 절이란다.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천안시. 시내 어느 외곽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남구 광덕면 자무실길 113’이라는 신주소를 믿고 찾아갔더니 천안의 끄트머리 언저리다. 공주와 인접해 있었다.

사찰임을 알려주는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었다. 자동차가 안내하는 시골길을 따라 가다가 두어번 길을 잃었다. 겨우 도착한 평심사는 봄 정취가 그윽한 시골 암자였다. 대웅전 한 채와 요사채 한 채가 전부다. 일주문도 없고, 입구에 석재로 조성한 금강역사와 자그마한 석탑이 전부다. 평심사는 주지 정원스님이 지은 ‘평심’이라는 시에서 나왔다. 시에는 스님의 삶이 담겨 있었다.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獨居卄秋事若何) /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有時看經有時寫) / 밤마다 탐탐하며 혹 시를 짓기도 함은(夜夜酖酖或題詩) / 선계중의 습기를 제하지 못했음을 어찌하리요(不除仙中習那何) / 비 때리고 바람 붊은 묘리를 연설함이요(雨打風吹演妙理) / 꽃 피고 잎 짐은 진기를 드러냄이로다(花開葉落露眞機) / 왕고에도 여여요 미래와 현재도 여하니(往古如如來今如) / 이런 고로 평심이라 이름 함이 옳다 하노라.(是故名爲平心是)”

1985년 정원스님이 창건한 평심사에는 불전함이 없었다. 전국의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부처님 전에 불전함이 없는 사찰은 처음이다. 사격으로 봐서는 불전함을 열어 쌀이라도 사야 할 것 같은 가난이 묻어나는 절이었다. 이런 사찰에서 홀홀단신으로 총 10권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을 발간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연구는 둘째 치고 책을 발간할 어느 정도의 재력도 있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시골 가난한 흥부절’이 평심사였다.

‘지독하게 공부만 하는 스님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책상에는 대장경류와 한문사전, 조사어록이 가득했고 직접 저술한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문경 봉암사 선방수좌인 어느 스님이 자신의 도반인데 평생 공부만 하며 대장경을 수차례 열독한 뒤 많은 책을 직접 저술하고 출간했고, 여타 선 어록을 직접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든 스님이니 꼭 한번 만나보라는 제보를 받았다. 불교신문에도 <태화선학대사전> 판매광고가 자그마하게 몇 번 나간 적이 있었다.

스님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자신에 차 있었다. 세수가 70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지금까지 경전을 공부하며 붓으로 책을 쓴다고 1000자루는 망가뜨렸을 겁니다. 직접 붓으로 써 영인해 책을 발간하기도 했지요. 그런 저런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책을 여럿 소개할 수 있었지요.”

스님은 원고 쓰기에서부터 번역과 편역, 편집, 교정까지 출판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님 혼자 했다. 하물며 컴퓨터에 없는 한자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제자(製字)와 집자(集子)까지 했다. 스님의 책상 앞에는 대형 입체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즈음 됐으면 시력이 저하돼 노안이 와 도수 높은 돋보기를 쓰고도 남았을 법한데 스님은 안경조차 끼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제게 경전을 번역하고 책을 만들어 내라고 건강한 눈을 부모님께 점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전 안경을 끼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또 있었다. 평심사에서 출간한 책은 시중에는 유통되지 않았다. 출판등록을 하고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을 부여받아 시중에 유통해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도서를 널리 읽도록 해야 했는데 말이다.

“제본을 해서 시중에 유통시킬 정도의 여력이 없어요. 또 유통 마진을 주면서까지 팔릴 책들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경전과 어록들이지만 한문세대가 줄어들었고, 관심 있는 학자나 불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서 그렇게 출간을 하면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죠.”

다행히 스님의 대작의 출판 불사를 이해해 주는 스님과 불자들의 후원이 있어서 지금까지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원스님은 그 스님들 중 3명을 언급했다. 수원 용화사 주지 성주스님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대구 한국불교대학 회주 우학스님이었다. 이 세 스님은 정원스님의 엄청난 불서 편찬에 공감하며 적지 않은 비용을 무주상으로 후원해 주어서 큰 힘이 됐다.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 발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운 듯했다.

“한 생 출가사문으로 살아오며 <태화선학대사전>을 발간하니 ‘부처님 앞에 밥값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선종관련 사전으로 이 정도 규모로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화선학대사전>은 정원스님이 한국,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간된 선교사전과 선어해설서 20여종을 대조해 지난 40여 년간의 선어록(禪語錄) 연구를 통해 정리한 결정체다. 2014년 출간한 3권의 한문본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하고 한글화한 것이다. 총 10권으로 분량만 10,024쪽에 달하고, 사목(詞目)은 42,235항(項), 예문은 34,068조(條)이다. 보주(補註) 역시 1,315목(目)에 이른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선학사전을 뛰어넘는다. 일본의 <선학대사전>과 중국의 <선종대사전>은 표제어도 없고 분량도 1800여 쪽과 614쪽 정도다.

부산 출신인 스님은 경전에 일가견을 이뤘던 일우스님을 만나 1970년 출가사문의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을 경전공부에 매진하며 저술활동을 해 왔다. 무릇 전생에 ‘구마라집 스님’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님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묵서(墨書) 영인본의 <법문곡> <금강경육조해>, <백운화상어록> <금강경야보송> <영가증도가> <대승기신론소기회론> 등 6권을 발간했다. 이어 스님은 고려대장경과 일본의 신수대장경에 들어 있는 중요 문구를 발췌한 수서(手書) 영인본인 <현구집>(1994)과 <벽암록(碧巖錄>(1996) <증보현구집>(1998)을 발간했다.

2000년 이후부터는 컴퓨터에 입력해 직접 편집한 불서를 출간했다. 정원스님이 900수의 한시를 게송하고 주석을 단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2004)과 한문불전등 대장경의 핵심을 압축한 <대장사원>(2009)과 중국 송대(宋代)의 선종사전인 <석자역주조정사원(釋字譯註祖庭事苑)>(2009)을 출간했다.

이어 대장경과 한문불전 등 선록에서 6,300여 개의 구절을 발췌한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2010), 임제 위산 앙산 운문 동산 조산 법안선사 등 7인의 어록 합본집인 <집주역해오종록(集註譯解五宗錄)>(2011), 선문염송집의 한문주석서인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2014)을 간행했다. 2014년에는 한문 선학사전으론 세계 최다 사목(詞目)과 아울러 예문(例文)의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을 발간한 후 2019년에는 한글화 해 10권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을 출간했다. 

그 사이에는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2016), <입주역해무문관(入註譯解無門關)>(2016),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2017)를 출했다. 이 많은 저술을 스님은 인터넷에 무료로 열람하게 했다. <태화선학대사전>은 판매중이라 1권만 무료로 공개했다. 한문권인 대만과 중국에서는 포털사이트인 구글을 통해 스님의 저작물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정원스님은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로 경전보기를 멀리하는 풍토를 질타했다. “고금을 두고 선사들은 철저하게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가까이 성철스님조차 여러 경전과 선어록을 독파한 후 궁극에 선의 경지를 내어 보였지요. 선학을 공부하는 수행자와 불자들이 제가 만든 선학대사전을 널리 활용하길 바랍니다.”

정원스님이 붓으로 쓰기도 하고, 컴퓨터에 입력해 출간한 다양한 선학관련 서적들.

■ 정원스님의 서재 살펴보니...

‘한어대사전’ 등 해진 사전 수두룩

스님의 책상 한켠에 꽂혀 있는 <한어대자전> 등 각종 사전들로 표지가 해져 있다.

스님의 생활공간은 공부하는 공간 중심으로 배치돼 있었다. 공양하는 공간은 아예 지하에 두고, 요사채 입구가 잠자는 공간이자, 출간한 책을 쌓아두는 공간이었다. 메인 공간인 접객실 겸 공부방에는 스님이 공부하는 한문사전과 스님의 저서들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도반을 포함해 누구라도 평심사에서 이틀 이상 머물면 불편합니다. 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기도 하지만 공부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지나고 더 머물려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가시라고 합니다.(웃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에서 나온 <한어대자전>이다. 8권 분량(색인포함)의 이 사전은 세계 최다의 글자가 들어 있는 사전이다. 단어는 별도로 표기돼 있지 않지만 예문이 들어 있어 글자 용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전을 스님은 너덜너덜하게 해질 때까지 옆에 끼고 살고 있었다. 이 사전을 참고하며 스님은 컴퓨터에 입력할 한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태화선학대사전> 출간 이후 스님은 <염문염송집표주>를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고 싶어한다. 한문해설서로 9400개 한문 주석이 있는데 선학공부를 하는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난관에 부닥쳐 있다. 그래도 스님은 낙담하지 않고 허허 웃는다. “이 모두가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일인데 좋은 인연이 와 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천안=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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