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주지 스님들이 승열바라문”

위대한 선지식 아무리 많다 해도
불자 곁에 머물고 있는 선지식이
내가 내려놓아야 할 ‘아상’ 잘 알아 

선재가 보살의 실천행을 하기 위해 휴사우바이에게 자비행, 비목구사선인에게서 지혜의 안목을 배웠다. 이제 법왕주선지식인 승열바라문을 만나 불퇴전의 력(力)바라밀을 갖춤으로써 바라밀수행자, 원력보살이 탄생한다. 원력보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의지와 실천이라 선재가 승열에게 테스트를 겪으며 단단한 보살수행자로 변모해간다.

선재가 비목구사선인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지혜광명을 성취하고 난 뒤, 중생을 보면 그들의 희망이며 꿈인 소원과 지도방법까지 한 눈에 알아보는 능력이 생겨나 선재는 중생에게는 둘도 없는 희망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이사나마을에 이르러 승열바라문을 만난 선재는 깜짝 놀랐다. 그는 고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고 사방에 불무더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속에 높고 가파른 칼산이 있는데 승열은 그 산을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노닐고 있었다. 선재는 의아하지만 가르침을 구하자 승열은 “자네가 이 칼산위에서 몸을 불구덩이로 던지면 그 답을 얻으리라”고 했다.

선재는 기가 막혔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청정한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고, 청정한 가르침 받기도 어렵고 바른 생활하기도 어려운데, 지금 이 사람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은 마(魔)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내 신심을 시험하는 걸까? 머릿속이 혼란해져 이별을 생각할 때에 허공에서 십 천의 범천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선재를 달랬다. 

“그런 생각 하지마라! 승열은 너를 법의 세계로 이끌어 광명을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도 이 승열을 만나 신통한 힘으로 고행함을 보이면서 우리들이 신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인자함이 가득한 존재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 보리심인 줄을 알았고 덕분에 항상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늘 들으며 마음에 집착을 여의었단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마군들, 자재천왕, 화락천왕, 도솔천왕, 천자와 천녀들, 삼십삼천와 용왕, 야차왕 건달바왕 아수라왕을 비롯한 8부신중왕들이 다 나와서 바라문이 불에 뛰어들라고 한 것은 너에게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설득하자 선재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얼른 승열바라문에게 절하고 칼산에 올라 불구덩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자 공중으로 뜬 몸이 중간쯤 이르자 보살의 잘 머무는 삼매를 얻었고, 몸이 불꽃에 닿자 보살의 고요하고 즐거운 신통삼매를 얻게 되었다.

선재는 이 황홀한 기쁨의 순간에도 칼산과 불구덩이에 몸이 닿을 때 왜 이렇게 신선하며 편안하고 행복했을까? 참으로 궁금했노라 하자 승열바라문은 큰 공덕불꽃으로써 능히 중생들의 견해 때문에 생기는 어리석음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며, 또한 이 바퀴해탈문을 얻으면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 생기는데 금강장, 나라연과 같은 불굴의 마음이 생겨나 여러 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서원을 세우니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 했다. 선재는 보살의 적정신통삼매와 무진륜해탈을 얻어 법왕자주를 배우고 다음 선지식인 사자분신성의 자행동녀를 소개받고 떠난다.

선종의 화두집인 임제종의 <벽암록> 16측 공안에 “승(僧)이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학인은 ‘줄()’하고 스승은 ‘탁(啄)’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줄탁동시(啄同時)다. 마치 어미 닭과 병아리처럼 스승과 제자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쪼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어미닭인 스승의 노력만으로 제자가 대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병아리인 제자가 자신에게만 이로운 쪽으로 생각하는 견해와 사고방식인 아상(我相)을 스스로 깨려는 노력이 있을 때 스승은 그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고난이라는 장애 속에서 불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스스로 고집과 아상을 꺾고 따라와 줄 때 비로소 항상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승열바라문은 불자 곁에 항상 머물고 있는 주지 스님들이다. 위대한 선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나와 인연 있는 선지식이 내가 내려놓아야 할 아상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481호/2019년4월20일자]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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